* 본 리뷰는 스팀덱 환경에서 플레이 및 촬영 후 작성되었습니다.
기묘한 게임이다.
헥스웍스 스튜디오가 개발한 '로드 오브 더 폴른'은 소울라이크로 불리는 하드코어 ARPG다.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공방을 겨루는 전투, 한 번 죽으면 사라지는 재화,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형 등 프롬 소프트웨어의 대표작 '다크 소울' 시리즈의 특징을 기본 골자로 삼았으며, 그 위에 산 자들의 세계인 '액시엄'과 죽은 자들의 세계 '엄브럴'을 오갈 수 있는 '엄브럴 램프'로 적들의 영혼을 벗겨내고 숨겨진 환경 요소를 이용하는 본작만의 특징을 담았다. 그래서 다크 소울 시리즈를 즐긴 게이머라면 엄브럴 램프라는 특수 능력이 추가된 새로운 다크 소울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 출시 후 열흘 만에 글로벌 판매량 100만 장을 달성했지만 평가는 썩 좋지 않다. 스팀 기준으로 1만 4천 개 가량의 게이머 평가가 올라왔는데 60% 긍정적인 '복합적' 평가를 받고 있다. 악의적이고 지나치게 많은 몬스터 배치, 실망스러운 보스전, 지나치게 높은 사양과 실패한 최적화 등 여러 이유 때문이다. 아직 게임을 해보지 못한 게이머라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100만 장을 팔았지?'
로드 오브 더 폴른의 이야기는 과거 인간들에게 패배한 악신 아디르가 부활의 조짐을 보여주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램프 운반자의 여정을 담았다. 게이머는 선대 램프 운반자에게 우연히 램프를 받아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여정의 끝에 아디르의 부활을 막을 수도, 아디르의 완전한 부활을 이룰 수도, 혹은 완전히 새로운 다른 길을 따를 수도 있다.
게임의 스토리는 게임 시작 시, 그리고 캐릭터 생성 전 등장하는 트레일러 두 편을 제외하면 대부분 NPC들의 대사나 아이템 설명을 통해 유추해야 한다. 흔히 '프롬뇌'라고 부르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내러티브 전개 방식과 유사한 방식을 취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게이머들이 직접 스토리를 유추하는 재미를 만든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스토리 하나에도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단 취향의 문제에 가깝고, 많은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채택하는 방법인 만큼 이 게임도 그러한 문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악신의 귀환과 저지가 스토리의 골자 = 게임조선 촬영
스토리는 NPC의 대사나 아이템 설명으로 풀어내 익숙치 않다면 파악하기 어렵다 = 게임조선 촬영
게이머의 분신인 캐릭터는 초기 9개의 클래스 중 하나를 선택해 만들 수 있다. 클래스의 차이는 시작 능력치와 착용 장비, 소지 아이템 정도로 육성 자체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빛에 충성하는 신성 기사로 시작했어도 아디르의 권능인 지옥불 마법을 다룰 수 있고, 아디르의 부활을 염원하는 화염 광신도로 시작했어도 오리우스의 권능인 신성 마법들을 다룰 수 있다. 물론 다크 소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모든 능력치가 평균 이하에 시작 장비와 아이템도 별로인 하드코어 스타팅 '사형수'도 스타팅 클래스로 선택할 수 있다.
외형 커스터마이징은 얼굴 형태와 헤어스타일, 신체 비율 정도다. 얼굴은 이목구비를 직접 지정할 수 없고 세 가지 얼굴형을 삼각형 그래프 내에서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며, 헤어스타일은 22가지 견본 중 하나를 선택해 머리색을 입히는 방식이다. 신체 역시 남성적, 크게, 마름 세 가지 유형의 삼각형 그래프 내에서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어떤 클래스를 선택해도 육성 자체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외형 커스터마이징도 다크 소울 시리즈와 대동소이 = 게임조선 촬영
맵 구조는 소울라이크를 표방하는 게임 중 가장 매력적이다. 전반적으로 좁고, 복잡하고, 답답한 구조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세이브 포인트와 주요 지점을 연결해 주는 지름길은 물론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두 지역을 이어주는 장치들을 발견하면 로드 오브 더 폴른의 세계를 따로 떨어져 있는 지역들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길 찾기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선형적인 진행을 선호하는 게이머라면 이러한 요소들에 반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이브 포인트면서 다른 지역으로 순간 이동시켜주는 '자취'가 있지만, 자취를 찾아 한 번 발동하기 전까진 작동하지 않고, 순간이동을 사용해도 결국 목적지까진 직접 걸어가야 한다. 소울라이크 중에선 특이하게도 지도가 제공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단서 수준에 가깝다. 길눈이 밝지 못한 게이머라면 자취나 목적지를 찾기도 전에 자리만 계속 맴돌다가 지치거나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다.
길을 찾다 보면 '여기가 이렇게 연결된다고?'라며 놀라게 되는 부분이 많다 = 게임조선 촬영
자취는 주요 지역에 배치되어 있으며, 특수 지형에 묘묙을 심어 임시로 활성화 시킬 수도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지도는 어디까지나 실마리를 제공하는 수준 = 게임조선 촬영
죽음의 세계인 움브랄은 로드 오브 폴른 만의 독특한 콘텐츠다. 게이머는 움브랄 램프를 사용하거나 현실 세계인 액시엄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움브랄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 움브랄에서 죽을 경우 비로소 모든 재화를 잃고 마지막 자취나 묘목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액시엄 세계에선 목숨이 두 개인 것이다. 움브랄 세계에선 자취나 묘묙에서 회복, 혹은 응급 조각상과 상호작용으로 액시엄 세계로 귀환할 수 있다.
움브랄 세계를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탐험이다. 길이 끊어져 있거나 막힌 곳,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퀘스트 해결을 위해 필요한 아이템,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한 낙인 활성화 등 여러 이유로 탐험 중 움브랄 램프를 들어 움브랄 세계를 비춰보거나 직접 움브랄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각 지역의 탐험은 실제 보이는 것에 더해 움브랄 세계까지 더 넓은 영역에 걸쳐 이루어지며, 어떤 이에겐 탐험의 재미, 어떤 이에겐 같은 곳을 또 찾아야 하는 고통을 안겨준다.
움브랄 램프는 공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적의 영혼을 벗겨내 쇠약 피해를 주거나 적에게 무적 효과와 회복 효과 등 이로운 효과를 주는 움브랄 세계의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다. 다만, 이 쇠약 피해는 다른 피해를 입히기 전까진 적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오히려 적이 공격에 성공할 경우 회복해 린다. 움브랄 램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적에게 충분히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적의 움직임을 방해해 낙사시키거나 무적 효과와 회복 효과를 제거하는 것 외엔 장점을 느끼기 어려웠다.
나방이 날아다니거나 길이 끊긴 곳에 사용하면 숨겨진 요소가 드러난다 = 게임조선 촬영
적의 움직임을 막는건 좋지만, 쇠약 피해는 굳이 사용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 게임조선 촬영
일반 몬스터 무적 상태는 납득할 수 있지만, 영지 입구 처럼 보스 몬스터가 무적이 되면 한숨부터 나온다 = 게임조선 촬영
지금까지 살펴본 요소들은 게이머에 따라 취향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앞으로 살펴볼 레벨 디자인 문제는 대부분의 게이머가 공감하기 힘든 요소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게임은 소울라이크를 표방하고 있다. 로드 오브 더 폴른 역시 흔히 소울라이크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적들의 강력한 공격과 정확한 타이밍에 사용하는 방어를 주고받는 전투를 그대로 채용했다. 문제는 몬스터들의 배치는 소울라이크치고 지나치게 악의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원거리 몬스터들의 시야가 지나치게 넓고, 게이머는 공격하기 어려운 곳에 배치되어 있다. 다른 적들과 전투하다 보면 어디선가 날아온 투사체에 맞고 움브랄로 사출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 몬스터를 공격하기 위해 살펴보면 내 캐릭터는 록온조차 할 수 없는 먼 곳에 있거나 직접 공격하기 힘든 높은 곳, 혹은 절벽 건너편에 있다. 출시 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몬스터들의 공격성과 시야를 줄였다곤 하지만, 여전히 시야 밖에서 날아드는 원거리 몬스터들의 공격은 불쾌한 경험을 만든다.
원거리 몬스터들을 느긋하게 공격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 게임의 몬스터들은 모든 지역에 걸쳐 지나치게 많이 등장한다. 게다가 움브랄 세계로 진입하면, 몬스터가 끊임없이 자동으로 소환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최종 보스보다 더 강한 사신이 등장해 게이머의 목숨을 수확한다. 이런 몬스터들이 공격 한 번에 죽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공격해야 죽을 정도로 체력이 많은데 게이머의 캐릭터는 한 번에 죽일 정도로 공격력이 높아 몬스터 인식이 제대로 꼬이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
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거냐? = 게임조선 촬영
이게 소울라이크여 무쌍이여 = 게임조선 촬영
하지만 원거리 몬스터와 몬스터 수는 약과다. 진정한 고통은 악의적인 몬스터 배치에서 나온다.
게임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엄폐물 뒤, 골목 사이, 난간 위엔 항상 몬스터가 있다. 오른쪽에 몬스터가 보여 달려가면 왼쪽 골목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게이머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절벽가를 지나가면 밀치기로 켜켜이 쌓인 상자들을 부수며 게이머를 떨어뜨린다. 물속에 누워있던 몬스터, 석상처럼 서 있던 몬스터, 움브랄 세계에 숨어있던 몬스터, 문 뒤에 대기하는 몬스터까지 게임이 게이머에게 악의를 가지고 달려든다. 심지어 이렇게 숨어있는 몬스터는 록온도 되지 않아 무조건 눈과 귀로 찾아야 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원거리 몬스터와 몬스터 수 문제가 겹치면 이 게임이 복합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된다.
다크 소울 시리즈에 이런 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다크 소울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거인의 묘지 낙사 장면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면 죽어야지'라는 기조가 깔려있어 문제다. 한두 번 당하면 모든 엄폐물과 골목을 조심해 다니기 때문에 급사하는 경우가 줄어들지만, 이 같은 수동적인 플레이는 결국 게임을 지루하게 만든다. 게이머들은 긴장감 넘치는 플레이를 기대하며 소울라이크를 플레이하긴 하지만, 숨쉴 틈 없이 팽팽한 긴장감은 고무줄마저 울게 만들 뿐이다.
엄폐물이 있다=몬스터가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있을까? = 게임조선 촬영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 게임조선 촬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하는 이유를 꼽자면 뛰어난 비주얼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게임이 소울라이크를 표방했지만, 다크 소울 같은 어둡고 피비린내 나면서 신과 영웅, 인간들의 살아 숨쉬는 신화를 표현한 게임은 많지 않다. 그런데 로드 오브 더 폴른은 이런 독특한 분위기를 게임 내내 만족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움브랄 램프에게 두 번째 생을 받아 무덤을 빠져나가면 음침한 잡목림이 반겨준다. 잡목림을 빠져나가 첫 번째 보스와 맞닥뜨리면 웅장한 천상교가 게이머를 내려다본다. 천상교에서 사명을 부여받고 늪지를 지나 불타는 마을을 거쳐 끝없는 어둠이 도사리는 심연을 마주하거나 규율로 무장된 목사관과 비명 소리로 가득한 탑을 제패하고 신성함이 가득한 수녀원에 도달하면서 각 지역의 콘셉트를 잘 살린 디자인과 규조에 감탄하게 된다.
스토리의 핵심인 신호소 보스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살려준다. 핵심 보스에 걸맞은 디자인과 연출, 그리고 그 캐릭터가 왜 보스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낙인을 볼 때마다 '내가 판타지 세계, 신화 속 세계에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신호소 보스의 디자인이 워낙 뛰어나서 설명충으로 전락하는 최종 보스와 어떤 보스를 Ctrl+CV한 최종 보스의 매력이 급감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하겠다.
짜증이 솟구치다가도 멋진 배경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 게임조선 촬영
특히 신호소 보스들의 비주얼은 판타지의 매력을 한껏 살렸다 = 게임조선 촬영
그래서 다크 소울을 좋아하는 게이머는 이 게임이 기묘하게 느껴질 것이다. 분명 그 맛은 나는데 원하는 맛과는 다르고, 다른 게임이니까 맛이 달라야 하는 것은 맞는데 다른 맛이 아니라 잘못된 맛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려면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려운 전투를 해내거나 숨겨진 장소를 찾았을 때 성취감보단 숨겨진 적에게 죽거나 수많은 몬스터에게 도망치게 될 때 불합리함이 더 크게 느껴지니 이게 맞나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 판타지를 내세운 소울라이크는 의외로 적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게이머는 결국 손을 대고 만다. 마치 움브랄 세계에는 앞으로 가는 길이 있기를 기대하며 램프를 비추는 램프 운반자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기묘한 게임이다.
이게 참 기묘한데, 자꾸 하게 된다 = 게임조선 촬영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