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디아블로 IP(지적 재산권) 최신작 '디아블로4'가 오늘 얼리 액세스를 시작했다. 디아블로3로부터 11년, 확장팩 기준으로도 9년이 지나 발매된 정식 넘버링 타이틀이다. 그야말로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 지나고 등장한 셈.
사실 디아블로4는 어깨에 참 많은 것을 얹고 출시됐다고 볼 수 있다. 정식 넘버링 기준 모든 작품이 명작의 반열에 올라간 바로 그 '디아블로'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이라는 점, '님폰없?'으로 대표되는 '디아블로 이모탈'의 강렬했던 이슈가 지나고 다시 나오는 디아블로 시리즈라는 점, 그리고 최근 '블리자드의 찬란했던 시절이 꺼지고 있다'라는 평단의 평사를 반전시킬 소방수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점 등등 참 많은 것을 지고 있는 게임이다.
11년 전 '블리자드의 게임은 무조건 명작이다'라는 인식과 함께 전폭적인 기대를 받았던 전작과 사뭇 다른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핵앤슬래시의 창조자이자 최고봉이라는 타이틀을 25년째 지키고 있는 시리즈의 최신작이 가지는 기대감은 여전히 묵직하다.
게임조선은 여러 사정에 의해 게임 전문지에 제공되는 사전빌드를 제공받지 못해 오늘이 처음 플레이가 가능했다. 아직 4시간 남짓의 플레이 시간으로 짧은 경험이지만 나름대로 강렬했던 체험기로 남긴다.
다시 시작되는 성역의 악몽
◆ 이모탈과는 다른 정통 시리즈의 향기
그렇다. 이모탈은 틀림없이 디아블로 기반의 게임이었지만, 실제 플레이해 보면 플랫폼, 그래픽, 플레이 방식 등 여러 곳에서 뭔가 독특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틀림없이 디아블로인데 뭔가 디아블로랑 동떨어진 느낌, 이를 기시감이라 불러야 할지 데자뷰라 불러야 할지 애매한 감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디아블로4는 플레이를 시작한 순간 모 짜먹는 위장약에서 본 이미지처럼 익숙하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어온다. 성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거우면서도 짙게 깔린 어둠, 어딜 봐도 멀쩡한 것은 하나도 없이 불쾌감을 끌어내는 배경, 인간/동물/악마를 막론하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시체들과 응당 신체 내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여러 부속품들이 모든 기능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있는 그 모습들은 우리가 익히 봐왔던 그 모습들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은 PC라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보다 크고 디테일하게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딱 느껴지는 디아블로 특유의 분위기
그래픽 분위기는 얼핏 보면 11년전 디아블로3와 비슷해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캐릭터의 기본 크기나 배경의 디테일이 오밀조밀 상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얼핏 봤을 때 디아블로3와 거의 다르지 않게 보였던 이 그래픽이 더 디아블로라는 느낌이 들어 반가운 수준.
이는 인게임, 인게임 이벤트, 시네마틱 이벤트를 막론하고 모두 최상급 수준. 이 역시 디아블로3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실제 비교해 보면 꽤 많은 부분이 발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디아블로3의 시네마틱 이벤트가 당대 비교군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한 것. 현재에 와서 그래픽 시장이 상향 평준화된 상태라 디아블로3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충분히 최상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어찌 보면 디아블로3와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힘을 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하지만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3와 비슷한듯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 발전이 보인다
◆ 흠잡을 곳이 거의 없는 한글화
블리자드의 한글화는 완벽하기로 유명하다. 외래어나 음역을 최대한 배제하고, 한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완역된 번역과 함께 한국어 음성까지 꼭 넣는 것이 특징. 이는 20년 가까이 이어져내려오고 있는 블리자드의 고집이고, 아직도 이를 넘어서는 한글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이는 디아블로4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자막은 뜻 전달이 자연스럽고, 모든 음성은 한국어로 녹음됐다. 비록 플레이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음성과 자막 모두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제목에 굳이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시네마틱 이벤트에서 캐릭터의 입모양과 음성의 싱크가 맞지 않는 것이 약간 아쉬웠기 때문이다.
음성도 자막도 완벽한 완역
청각 장애인을 위한 상황 묘사도 제공된다
◆ 월드맵의 등장. 정체성을 지키며 등장한 탐험의 재미
지금까지 디아블로4가 기존 디아블로라는 IP의 정체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 의미는 이제부터 설명한 월드맵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고로 탐험 시스템이라는 것은 방대한 지역과 자유로운 탐험이 필수. 이는 메인 스토리 말고도 여러 샛길에 배치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재밋거리를 줄 수 있다는 선기능과 의미 없는 분량 늘리기로 시간만 허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악기능이 항상 공존했다. 모든 개발사는 선기능만을 강조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게임들이 소위 망겜과 갓겜의 냉정한 평가를 받았고, 이 명암은 유감스럽게도 '암'쪽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시스템 특성상 게임의 뚜껑이 열기 전까지 재미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꽤 많은 불안감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디아블로4의 탐험 시스템은 합격점을 줘도 충분했다. 디아블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텀험이라는 꽤 높은 난이도의 시스템을 잘 녹여냈다.
스토리 진행에 따라 탐험할 수 있는 구역이 넓어진다
디아블로4는 기본적으로 흩어진 지역의 파편을 스토리나 시스템 선택에 의해 순서대로, 혹은 랜덤으로 플레이하는 방식이었다. 디아블로4는 그런 파편화된 지역들을 하나의 월드로 묶어 거대한 성역을 플레이하게 변경됐다. 플레이어는 릴리트를 무찌른다는 아주 큰 줄기의 메인 스토리 속에서 제법 자유롭게 성역을 탐험할 수 있다. 성역의 빠른 평화를 위해 한 눈 팔지 메인 스토리만 빠르게 클리어할 수도 있고, 눈 앞에 보이는 던전을 못 본척하지 않고 들어가도 된다. 한 명을 구하는 것이 만인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는 NPC의 사사로운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다.
디아블로의 특성상 게이머는 늦건 빠르건 반드시 '무한 파밍'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파밍의 재미는 짜릿하지만 긴 시간 동안 반복적인 플레이를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은 또 늦건 빠르건 '지루함'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탐험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이 영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나름대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한층 높아졌다
◆ 최적화 OK, 서버는 속단 금물
최적화와 서버 안정화. 게임을 판단함에 있어 당연히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게임들이 이 기본적인 요소를 해결하지 않고 출시해 리뷰어들 귀찮게 꼭 체크해야만 하는 영역이 돼버린 감이 있다. 디아블로3 출시일에 있었던 끔찍한 서버 문제를 생각해 보면 디아블로4 역시 이 부문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참고로 본 리뷰는 PC버전을 기준으로 했음을 미리 알린다.
일단 최적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 게임 시작부터 본 리뷰를 위해 잠시 멈추게 된 시점까지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프레임 드롭이나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만큼 로딩이 길거나 버벅거리는 현상 역시 없었다. 인게임 화면에서 인게임 이벤트, 혹은 시네마틱 이벤트로 넘어가는 구간도 위화감없이 깔끔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게임 자체의 최적화 부분은 흠잡을 데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서버 문제, 일명 '핑'으로 대표되는 버벅거림이나 튕김 현상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 게임은 '항상' '불편함 없이' 오롯이 집중하며 플레이할 수 있었다. 단, 서버 문제의 경우 현재 일부 인원만 접속할 수 있는 얼리 액세스 상태인 것을 감안하면 속단하긴 이르다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봤을 때 믿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버는 속단하기 이르지만 최적화는 만족스럽다
◆ 국밥집에서 먹는 특곱배기 국밥
게임계에서 후속작으로 나오는 모든 게임들은 해당 IP 고유의 재미를 기대한다. 25년째 유지되고 있는 디아블로는 그 고유의 재미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게임이다. 이는 멀리 볼 것도 없이 '디아블로 이모탈'이 공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크고 작은 논란거리가 증거라 볼 수 있다.
디아블로4 역시 여러 정보가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이 부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개발진은 이를 해명하고자 꽤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속칭 '님폰없? 사태', '짜잔~'사태', '오버워치2 PVE 삭제 사태'를 거치며 블리자드의 말은 어느정도 걸러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긴 것이 이 의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은 나름 할 말이 많지만 체험기와 성격이 다르니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자.
블리자드는 최근 몇 년간 여러 사태를 통해 유저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이 사실
이제 결론을 얘기하자면 기자에게 있어 디아블로4는 '국밥이 먹고 싶어 들어간 국밥집에서 먹게 된 따뜻한 특곱배기 국밥'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릇에 기대했던 국물과 밥이 나왔고, 한 술 떠보니 기대했던 익숙한 맛이다. 주인장 얘기로는 이번 국밥은 수육 종류를 바꿔봤다고 하는데 기존 국밥의 맛과 잘 어우러지면서 포만감을 채워줬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주인장이 갑자기 마라탕을 내오면서 이게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최신 유행이라며 맛알못 취급하지도 않았고, 쌀국수를 내놓고 이것이 진정한 국밥이라고 우기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맛보고 싶었던 국밥이 조금 더 맛있는 수육과 함께 담겨 나와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비록 그에 걸맞는 가격을 가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체험기를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성역에 들어가보자
[배향훈 기자 tesse@chosun.com ]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