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콘셉트의 비주얼 노벨은 이제는 꽤나 익숙한 장르가 됐다. 피처폰 시절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검은방'시리즈나 실제 재판을 콘셉트로 한 캡콤의 '역전재판', 그 이외에도 단간론파나 회색도시 등 수많은 추리 어드벤처 게임이 출시하면서 국내에도 이제는 나름 마니아층이 탄탄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장르 게임 역시 현대 사회가 발전할수록 등장하는 신문물 덕분에 사건은 더욱 치밀하게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덕분에 제한된 공간에서도 바깥과의 연락이 쉬워졌으며, 위치 추적 기능이나 카메라 기능을 통해 이제는 전문가가 아닌 등장인물도 손쉽게 변수를 창출해버린다. 녹음기나 CCTV는 물론 드론이나 SNS 등 다양한 '오브젝트'가 추가되면서 현실성을 추구할수록 정교한 시나리오를 요구하게 된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성공적으로 펀딩하고 출시한 올바른 사례 = 게임조선 촬영
그런 면에서 팀 테트라포드가 지난 2022년 펀딩을 통해 출시한 '스테퍼 케이스:초능력 추리 어드벤처(이하 스테퍼 케이스)는 상당히 영리한 추리 어드벤처다. 800%를 넘기며 성공적으로 펀딩을 마무리한 팀 테트라포드는 올 3월 스팀과 스토브를 통해 출시했다. 최종 케이스 5를 제외한 4개 케이스를 포함했으며, 1, 2 케이스는 데모 버전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스팀에서는 최근 평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을 받고 있으며, 스토브에서도 높은 추천수를 받으며 호평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테퍼 케이스는 단순 현대 문물을 피하기 위해 196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추리 게임과는 차별화된 '초능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덕분에 추리하는 과정에서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요구한다. 판타지적 요소를 베이스로 깔고 간만큼 다른 추리 게임과는 분위기나 추리기법 자체가 다르게 게임이 진행되는 점 역시 특징이다.
두 개의 단서를 교차로 두고 키워드를 선택해 단서를 조합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대표적으로 탐문과 증거 수집/검증의 과정이 있다. 주인공인 노트릭 케이스가 포함된 '마나사건 전담반'에는 상대의 심장박동을 체크할 수 있는 '테나'와 흔적이 생긴 장소와 시간을 추측할 수 있는 '브리안', 사물에 접촉해 과거를 읽을 수 있는 '레드핀즈'가 참여한다. 이들의 초능력을 통해 기존 추리형 게임에서 보이던 '감식'과는 차별화된 증거를 플레이어에게 제시한다.
대신 진행 자체는 보다 단순한 편이다. 장소를 선택해 왔다 갔다 하며, 여러 사람에게 청취를 받는 여타 추리 게임과 다르게 일방향으로 진행된다. 단, 단서를 조합해서 제시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단서도 단순히 증거물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증거물품에서 정확히 제시해야 할 부분을 선택해야 한다. 대화 기록이라면 해당 대화 중 어떤 부분이 증거인지를 정확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
각 케이스 별로 사건의 본질을 간파하는 헥사 추리가 존재한다. = 게임조선 촬영
또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갈 때 등장하는 헥사 추리도 스테퍼 케이스만의 독특한 요소다. 6개의 증거 물품에서 각각 키워드를 1개씩 선택해 핵심 키워드를 발견하는 이 시스템은 사건의 흐름을 한 번에 정리하는 동시에 플레이어가 단순히 스크립트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것이 아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체크해 준다.
단서 제출이나 헥사 추리에 의한 게임오버는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시도할 수 있지만,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순서에 맞춰 단서 제출을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기 때문에 꼼꼼하게 읽고 추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이해를 하지 못해 막힌 부분에서도 별다른 힌트가 없어 최대한 여러 경우를 눌러봐야 하는데 선택지가 상당히 많아 애를 먹을 수 있다. 대신 단서 제출 미스로 인한 게임오버는 없어 안심이 된다.
캐릭터별 개성이 확실한 편 = 게임조선 촬영
한편, 스테퍼 케이스는 인물의 특징을 약간 과장되면서도 개성 있게 표현해냈다. 주인공 노트릭을 포함한 4인방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티키타카의 재미가 상당한 편이다. 특히, 마냥 순할 것만 같은 인상의 노트릭 케이스가 현실적이고 독설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 이런 게임에서 으레 보이는 고구마 전개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덕분에 각각의 사건 케이스도 시원시원하게 스토리 진행이 되는 편이다. 각 케이스별로 독자적인 스토리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분기가 존재해 서브 엔딩도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점 역시 타 게임과 차별화된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초능력이 관여를 하고 있는 세계관인 만큼 허를 찌르는 스토리 전개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다른 케이스도 당연히 반전의 연속이지만, 현재 최종 케이스인 '겨우살이'의 경우 충격적인 스토리 전개 덕분에 다음 케이스 5를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제작진의 완급조절은 굉장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현재는 케이스 4 겨우살이가 끝이다. = 게임조선 촬영
사실 스테퍼 케이스는 무언가 특출나게 뛰어난 게임, 엄청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변주를 준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한 비주얼 노벨형 장르에 단서를 이용해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장르는 비교적 흔한 콘셉트의 게임이 됐다.
그러한 와중에도 초능력이라는 독특한 요소를 잘 녹여내고, 추리 게임 특유의 긴장감과 반전 요소를 잘 녹여낸 것이 플러스가 됐다. 또한, 앞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세계관과 그 분위기가 잘 녹아든 게임 BGM 역시 높은 퀄리티로 게임의 흐름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 특히, 케이스 4 헥사 추리에서의 BGM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편. 오는 4월 30일 팀 테트라포드는 케이스 5를 통해 스테퍼 케이스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최종 케이스가 업데이트되기 전 스테퍼 케이스를 미리 맛보고 최종장을 기다리는 것은 어떨까?
스테퍼 케이스는 스팀과 스토브를 통해 구매 및 플레이할 수 있다. 구매에 앞서 데모 버전을 통해 일부 케이스를 미리 체험해볼 수도 있다.
4월 30일 공개 예정인 마지막 케이스 = 게임조선 촬영
[이정규 기자 rahkhan@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