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노벨에 연애 시뮬레이션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어딘가의 멘트가 생각나네요. 스토리=퀘스트 위주로만 진행되거나 아예 스토라라인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최근 모바일 RPG 트렌드가 대세를 이뤄 몰입감 있는 스토리 하나 찾기가 힘든 와중에 이렇게 흔치 않은 장르의 스토리게임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갑습니다.
인디게임팀 '블랜비'가 개발한 인터랙티브 비주얼 노벨 '가짜 하트'입니다. 3월 25일 스팀에 얼리 액세스로 출시됐습니다. 이번 버전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우선 지원한다네요.
시작부터 정해진 결말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지켜보게 만든다.
퀭하게 피폐해진 여자아이가 그려진 대표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가짜 하트란 타이틀과 대표 이미지 덕에 이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을 아주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죠.
하지만 게임의 시작은 그런 우려와 달리 비교적 잔잔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제이드와 사라의 티키타카가 반겨준다.
늙은 동화 작가 '제이드'와 귀염둥이 손녀 '사라'의 이야기가 타이틀 컷의 이미지와 섞여 아슬아슬한 불안함 속에서 펼쳐집니다. 혹시나 이제라도, 저제라도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죠. 중간중간 던져 주는 "어? 저게 뭐지?" 싶은 떡밥들도 그런 분위기 몰이에 한몫합니다.
반전의 이미지를 먼저 던져주고, 잔잔하고 따사로운 BGM 뒤에 숨어 숨죽이고 반전을 기다리게 하는 세련된 연출의 묘미가 느껴집니다.
중간중간 비추는 으스스한 컷들이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이 노신사, 즉, 생각 많고 점잖은 할아버지이고, 그 케미의 대상이 초등학생 손녀란 점에서 아무래도 연령층에 따라 쉬이 감정이입하기가 힘든 이야기일 거란 생각도 들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도 느껴지거든요.
다행히 1회차에 만나볼 수 있는 '사라'의 사랑스러움은 그 벽을 허물기에 충분해 보이긴 합니다. '제이드' 역시 난 나중에 손녀랑 저렇게 놀아줄 수 있을까 싶은 완벽한 할아버지죠.
이야기에 빠져들고 나면 둘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게임의 기본은 비주얼노벨입니다. 한없이 잔잔한 BGM과 어쩐지 차가운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일러스트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공책 한 켠에 써 내려간 듯한 질감 위로 한 줄씩 읊어주는 Noto 계통의 내레이션이 백미입니다. 가짜하트는 이미지에 기댄 여성향 혹은 남성향의 연애 시뮬레이션이 아닌 만큼 이미지의 화려함보다는 슥슥 그린 종이 만화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표현력, 그리고 맛있는 글감, 유려한 문장이 몰입을 더하죠.
비주얼노벨에 빠지면 섭섭한 대사 선택지와 이에 따른 분기 이벤트 요소도, 요즘 서브컬처에서는 자주 보인다지만 뭔가 이 세계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원더랜드 톡'까지 (물론 그 자체가 떡밥이지만), 그러다 중간중간, 일종의 퍼즐 요소처럼 직접 마우스를 움직여 작은 미션들을 수행하게끔 했습니다.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단순히 책을 읽는 느낌을 떠나 세계관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미니게임조차 수상하게 느껴진다.
이 게임은 예정된 반전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영리한 구성을 통해 진부할 수 있는 흐름을 탈피했습니다. 이러한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후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겪게 한다면 그 자체로써 이미 성공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전체적인 틀, 즉, 이야기가 진행되는 무대의 분량적인 부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초반 플레이 후에 돌아보면 생각보다 앨범이 많이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또한, 아직은 그렇게 많은 분량의 챕터가 준비되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추가되는 챕터를 한 장씩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도 수차례 반복해서 말해주듯이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가면서도 혹시 모를 마지막 순간을 위해 여러 번의 '선택'을 해야 하는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 가짜 하트 영상
서비스 블랜비
플랫폼 스팀
장르 인터랙티브 비주얼노벨
출시일 2023년 03월 25일 얼리 억세스
게임특징
- 리뷰가 감상문처럼 쓰인 것은 그런 코드를 자극하기 때문.
[김규리 tete0727@naver.com] /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