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시리즈가 디아블로 4 오픈 베타 테스트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넘버링 타이틀만 따지면 전작인 디아블로 3 본편 출시 후 11년, 확장팩인 '디아블로3: 영혼을 거두는 자' 출시 후 9년 만이다. 아직 오픈 베타 테스트 단계인 만큼 첫 지역만 체험할 수 있고 일부 시스템도 잠겨있지만, 게임 속 세계 구성과 캐릭터 성장, 장비 수집, 탐험 요소 등 게임의 뼈대는 이번 테스트를 통해 대부분 보여준 느낌이다.
디아블로 4의 개발 소식이 공개되고 오픈 베타를 진행하는 지금까지 개발진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디아블로'와 '디아블로 2'에서 보여준 어두운 분위기다. 전작에 비해 가볍고 밝은 기조로 비판받은 디아블로 3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인 디아블로와 디아블로 2의 어둡고 잔인한 면모를 디아블로 4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의의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디아블로와 디아블로 2의 향수에 젖은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충분했다.
일단 어두워지긴 했다. 어둡게 보이려는 강박증이 느껴질 정도로 눈이 닿는 모든 곳의 명도를 확 줄였다. 물론 잔인함도 넣었다. 첫 시네마틱 영상부터 동물의 내장이 덜 마른 핏빛으로 번들거리고 이후 당도하는 마을에는 인간이었던 것의 조각들이 나뒹군다. 적어도 초반 분위기만큼은 가볍고 밝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확실히 힘을 쓴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 생성 창도 캐릭터들이 어두컴컴한 밤에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디아블로 2에 가깝게 변했다.
이번 베타 테스트에 공개된 지역은 일단 어둡긴 했다 = 게임조선 촬영
영상 맛집 블리자드 답게 영상 완성도는 높은 편 = 게임조선 촬영
직업 구성도 구도도 색감도 디아블로 2를 연상케 한다 = 게임조선 촬영
그 외 거의 모든 부분에서 디아블로 3를 그대로 답습했다. 우선 전투 시스템. 게이머는 마우스 좌클릭과 우클릭, 숫자키 1번부터 4번까지 총 6개 조작 버튼에 스킬을 올려두고 전투를 하게 된다. 스킬 구성도 처음 사용하는 스킬은 대부분 자원을 소모하지 않거나 생성하는 주 기술이며, 이후 자원을 소모하는 핵심 스킬들과 생존을 위한 방어 스킬, 궁극기, 핵심 패시브 스킬 등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전투 템포 역시 초반부터 마나 물약을 마시며 스킬을 난사하는 디아블로 2가 아니라 주 기술과 나머지 자원 소모 기술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는 디아블로 3에 가깝다.
스킬은 유형에 따라 단계별로 나누어져 있으며, 일정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야 다음 단계가 열린다. 또한 액티브 스킬은 하위 스킬 두 개로 강화할 수 있으며, 마지막 하위 스킬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지는 잠긴다. 스킬은 언제 어디서나 골드를 지불하고 초기화할 수 있다.
액티브 스킬은 한 스킬을 두 번 강화하는 방식 = 게임조선 촬영
주 기술과 자원 소모 기술을 번갈아 쓰는 방식은 디아블로 3와 똑같다 = 게임조선 촬영
장비 파밍 역시 디아블로 3의 전설 위주 파밍을 채택했다. 전설 장비에는 강력한 능력이 부여되어 이를 통해 캐릭터나 스킬을 강화하는 식이다. 전설 아이템의 특수 능력은 비술사 NPC에게 위상 추출을 통해 '위상'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 위상 아이템을 다른 아이템에 부여해 전설 능력을 계승할 수도 있다. 장비 전설 능력은 퀘스트나 던전 보상을 통해 영구적으로 얻을 수도 있다. 전작 카나이의 함의 전설 능력 추출 기능을 떠오르게 하는 방식이다.
전설 파밍은 주요 던전과 일정 시간마다 등장하는 필드 보스 몬스터를 통해 획득할 수 있다. 특히 필드 보스 처치 시 전설 장비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어 짧은 시간 동안 고효율 파밍이 가능하다.
이번 핵심 파밍 아이템은 역시 전설 장비 = 게임조선 촬영
전설 장비는 추출 후 다른 장비에 부여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디아블로 넘버링 타이틀에선 새롭게 시도한 필드 보스 = 게임조선 촬영
이처럼 디아블로 4는 '디아블로 이모탈'과 마찬가지로 디아블로 3를 디아블로 시리즈의 초석으로 삼아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곳곳에 드러나있다. 하지만 출시 전 오픈 베타인만큼 아직 손봐야 할 숙제가 많이 보였다.
가장 먼저 오픈 월드와 이에 관련된 콘텐츠 들이다. 디아블로 4는 일부 던전을 제외하면 지역 이동에 로딩이 필요 없는 심리스 방식을 채택했다. 여러 지역을 하나로 이어놓은 만큼 굉장히 광활한 세계가 구현됐다. 문제는 이 오픈 월드를 이용하는 방식이 지루함과 귀찮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명망'과 '릴리트의 제단'은 시즌제를 채택해온 디아블로 시리즈의 특징을 제대로 갉아먹는 콘텐츠다. 명망은 한 지역의 퀘스트나 던전을 완료하면 쌓이는 수치로 일정 이상 획득 시 기술 포인트와 물약 충전, 정복자 포인트 등 캐릭터 성능에 직접 영향을 주는 보상을 지급한다. 릴리트의 제단은 맵 곳곳에 놓여있는 오브젝트로 캐릭터에게 추가 능력치를 제공한다.
이걸 매 시즌 수백 개 모으라고? = 게임조선 촬영
귀찮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보상 = 게임조선 촬영
명망과 릴리트의 제단은 오픈 월드 게임에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수집형 콘텐츠다. 하지만 디아블로 시리즈는 약 3개월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어 게임 진행도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시즌은 모든 유저가 공평하게 0부터 시작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만큼 초기화를 하지 않으면 공평함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초기화를 하면 매 시즌마다 유저들은 수십, 수백개의 퀘스트와 던전, 릴리트의 제단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명망과 릴리트의 제단 보상을 무시하기엔 이들의 보상이 캐릭터 육성의 핵심인 스킬 포인트와 능력치에 직접 영향을 줘서 육성 속도에 차이를 유발한다.
채집과 제작도 문제다. 디아블로 4에선 맵 곳곳에 놓여있는 채집물에서 재료를 획득해 포션을 제작하거나 장비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채집물은 마우스 포인터를 올려놓기 전까진 잘 보이지 않고, 하나하나 클릭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귀찮게 느껴진다. 그거 하나 클릭이 뭐 그리 귀찮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것을 앞으로 수백 번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귀찮으면 잡보석이나 잡전설은 파밍조차 하지 않았던 성역의 용사들에게 채집 콘텐츠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잘 보이지도 않고 채집하기도 귀찮은 재료들 = 게임조선 촬영
UI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디아블로 4의 스킬 트리는 디아블로 2와 마찬가지로 세로형으로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모양이 좌우로 분산되어 있고, 각 스킬 묶음은 방사형으로 퍼져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특히 액티브 스킬 사이에 있는 패시브 스킬들은 액티브 스킬의 하위 스킬 수준으로 표시되어 있어 베타 테스트 내내 존재 자체를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스킬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디아블로 3의 스킬과 룬 시스템을 세로로 늘려놓은 것에 불과한데 룬 시스템에 비해 선택지의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난잡한 UI 때문에 더 알아보기 힘든 기이한 형상이 일어나고 있다.
NPC 배치도 반드시 수정돼야 할 부분이다. 이번 베타 테스트에서 공개된 '부서진 봉우리'는 대도시 '키요바샤드'와 여러 마을로 구성됐다. 각 마을은 대장간 같은 기본 NPC는 마련됐지만, 앞서 말한 전설 능력 추출 같은 주요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선 모든 NPC가 밀집된 대도시를 방문해야 한다. 그런데 이 NPC들이 사방에 퍼져있어 파밍 후 정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문제는 디아블로 3에서도 발생했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업데이트를 통해 NPC를 밀집시켰다. 전작에서 잘 수정한 개선점을 고려하지 않고 NPC를 배치해 유저들의 불편함을 초래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장기적으론 파밍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새로운 파밍 콘텐츠로 추가된 필드 보스 '아샤바'는 패턴은 단순하고, 체력은 많아서 적정 레벨 유저끼리 도전하면 체력만 많은 샌드백이 될 때가 많았다. 전설 장비를 많이 받을 수 있어 매번 참석하지만, 매번 숙제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렙 수준의 필드 보스도 비슷한 레벨 디자인을 보여준다면 디아블로 3의 균열 콘텐츠처럼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유형에 따라 분류했던 디아블로 2와 디아블로 3에 비해 난잡하게 변했다 = 게임조선 촬영
반복 파밍이 핵심인 게임에 NPC를 사방에 퍼뜨리다니 = 게임조선 촬영
이번 오픈 베타 테스트는 디아블로 4의 방향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을 두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디아블로 3와 달리 같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진 디아블로 3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더 강했다. 물론 오픈 월드나 채집, 제작, 장비 강화 등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긴 했지만, 장비 습득과 캐릭터 육성은 새로운 것이 없었고, UX는 퇴보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유사한 시스템을 가진 디아블로 3나 디아블로 이모탈을 해본 유저들이라면 오래 할수록 디아블로 3나 디아블로 이모탈의 새로운 지역 업데이트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이번 플레이가 오픈 베타 테스트임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앞으로 바꿔나갈 기회는 남아있다. 하지만 3달 후에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새로운 수면제 이상의 평가를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