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스팀덱 환경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본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드피쉬의 '아토믹 하트'는 여러모로 이래셔널 게임즈의 '바이오쇼크'를 연상케 하는 게임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지역들은 과학이 비대칭으로 발전한 도시인 '랩처'와 공중을 떠다니는 '컬럼비아'를 합친 듯한 모습이며, 마치 이상향처럼 묘사된다. 주인공 '세르게이 네차예프'는 바이오쇼크의 주인공 '잭'처럼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지배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그들의 의도를 알게 된다. 바이오쇼크 시리즈 전반에 걸쳐 제기되는 엘리트주의와 전체주의, 극단주의에 대한 문제의식도 아토믹 하트의 각종 텍스트에 담겨있다.
이처럼 아토믹 아트의 제작진은 게임 내내 바이오쇼크의 영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게이머가 게임이 출시되기 전부터 게임을 '바이오쇼크 소비에트'나 '소비에트쇼크'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서 소비에트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엘리트 중심의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룩한 소련, 아토믹 하트의 무대다 = 게임조선 촬영
게임의 배경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즉 '소련'이다. 그리고 이 소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련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점령하며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고, 로봇공학과 재료공학, 생명공학 등이 비대하게 발전한 국가다. 하늘엔 거대한 도시들이 떠있고, 빠르고 튼튼한 로봇들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으며, 인간은 집단 신경망을 통한 지식 공유가 가능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20세기 말을 배경으로 삼지만, 과학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미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아토믹 하트에서 드러난 소련은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 체제는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다만 몇몇은 더 평등하다'는 모순 역시 그대로 목도할 수 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룩된 유토피아와 그 뒤에 숨겨진 체제의 모순, 그리고 이를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국가인 소련에 빗대어 보여주면서 게이머는 보다 깊게 아토믹 하트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시대는 도시와 과학단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 = 게임조선 촬영
하지만 체재의 병폐는 현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 게임조선 촬영
공상과학, SF라는 장르 측면에서도 아토믹 하트는 매력이 넘치는 게임이다. 자동차인 줄 알았더니 비행 로봇이 와서 차체를 번쩍 들어 공중으로 나르는 장면, 이상적인 자연 풍경과 지역을 잇는 자기부상 열차가 다니는 공중 도시들, 20세기 디자인으로 제작된 최첨단 로봇 등 20세기 사람들이 상상하던 21세기를 그림으로 그려낸듯한 단어 그대로의 '공상과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내 콘텐츠로도 구현됐다. 유저는 오른손에 장착된 장갑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아이템을 습득하거나 적들에게 전기와 불, 얼음을 내뿜어 공격할 수있으며, 심지어 '염력'을 이용해 주변 적을 공중에 띄울 수도 있다. 마치 마법 같은 부분이지만, 만능 물체 '폴리머'와 '자기장', '핵반응' 등 잘 발달된 '과학'이라는 말로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공상과학을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고속 자기부상 열차는 20세기 상상하던 미래 그 자체였다 = 게임조선 촬영
제트 엔진 오두막은 상상에 없었지만, 열광하지 않을 게이머는 없겠지 = 게임조선 촬영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짓기 어려운 법 = 게임조선 촬영
게이머는 이런 공상과학을 활용해 게임을 풀어나가야 한다. 곳곳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재료를 사용해 무기와 소모품을 만들거나 업그레이드하고, 신경폴리머로 장갑을 강화해 주인공의 신체와 기술을 연마해 나간다. 무기와 소모품의 도면은 연구소를 탐사하며 얻으며, 제작과 성장에 필요한 재료는 적을 처치하거나 오브젝트에서 획득할 수 있다.
전투와 탐사로 획득한 아이템, 혹은 제작한 아이템은 분해로 일부 재료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주인공 강화에 사용한 신경폴리머도 초기화를 통해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제작과 성장 투자에 대한 부담은 적은 편이다.
자판기에서 에너지 기관총을 만드는 쾌감이란 = 게임조선 촬영
설정뿐만 아니라 직접 마법 같은 과학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 = 게임조선 촬영
매력적인 세계관을 재료로 아토믹 하트라는 큰 그림은 잘 구상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소 서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아토믹 하트는 내러티브의 대부분을 주인공 왼손에 착용한 장갑 '찰스'와 대화로 풀어내고 있다. 그외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세계관과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설정은 찰스와 대화로 드러난다. 문제는 전투할 때나 퍼즐을 풀 때도 중요한 정보에 대해 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를 자막으로 보는 게이머는 전투나 퍼즐에 몰두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음성으로 들을 때도 정보량이 많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은 UI에서도 드러난다. 아토믹 아트에선 굉장히 작은 폰트와 간결한 아이콘으로 정보를 나타내는데 이를 대화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작아서 읽기 힘든 것은 물론 대사량 자체가 많아서 정보를 정리하기 힘들 때가 부지기수다.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도 전달 방식이 너무 투박한 탓에 주의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게 되고 만다.
가뜩이나 바쁜데 자꾸 중요한거 말할래? = 게임조선 촬영
보기도 힘든데 고봉밥을 자주 준다 = 게임조선 촬영
황량한 오픈필드도 아쉬운 부분이다. 아토믹 하트의 세계는 심리스 월드로 구현되어 대부분의 장소를 로딩 없이 갈 수 있지만,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다. 이동하는 구간은 굉장히 넓은데 그곳을 채우는 것은 전투 외엔 없고, 그 전투조차 유저가 의도하면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투 레벨도 심하게 단순하다. 따로 떨어져 있는 적과 싸우거나 감시 카메라에 걸려서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식이다. 그런데 어떤 지역으로 가든 캐릭터가 얼마나 강해지든 전투 패턴이 반복되고, 등장하는 적 구조도 똑같아 전투의 재미도 성장의 재미도 점차 떨어진다. 스토리 진행과 캐릭터 성장에 따른 레벨 스케일링이 고려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문제는 선형적인 내러티브와 비선형적인 필드 디자인이 충돌하면서 생긴 것이다. 많은 오픈월드 게임은 이러한 문제를 서브 퀘스트와 컬렉션 등을 통해 보완하고 있지만, 아토믹 하트는 이런 보완 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에 지루하고 황폐한 세계가 탄생한 것이다. 로봇이 모든 인간을 말살한 상황이긴 하지만, 게임 내에선 죽은 사람과 잠시나마 이야기라도 할 수 있고, 외부와 연락도 가능한 만큼 이런 요소를 조금 더 활용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파밍 좀 하면 굳이 새 무기가 없어도 될 정도라 탐험이 크게 매력적이진 않다 = 게임조선 촬영
아토믹 하트는 그동안 출시된 SF 게임의 장점을 계승해 자신만의 특색을 입힌 작품이다. 특히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룩해 전성기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론 체제의 한계라는 실제 역사와 똑같은 문제로 곪아가는 소련을 내세운 부분이 인상적이다. 공상과학과 현실성이라는 상극의 요소를 소련이라는 국가를 통해 절묘하게 조합해낸 방식은 이전 SF 게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반면 한계성은 명확했다. 이미 많은 작품을 통해 검증된 소재를 큰 틀에 담는 것은 성공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보완이 필요했다. 지나치게 긴 대사 호흡과 주요 장소와 장소 사이의 간극, 단순한 전투 패턴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소설을 게임으로 단순 이식한 느낌을 받았다. 아토믹 하트는 다행히 소재의 매력으로 이런 한계성을 가릴 수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후 아무리 매력적인 소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존 작품들의 아류작을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이번엔 쌍둥이 때문에 봐드립니다 헤으응 = 게임조선 촬영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