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스팀덱으로 플레이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국의 작가 조앤 롤링이 집필한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명실상부 2000년대 최고의 인기 소설 중 하나였다. 평범했던 소년 해리 포터가 마법 세계의 일원이 되고, 개성 넘치는 친구들과 주변 인물을 만나 성장하며 펼치는 모험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소설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매료시킨 마법 세계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 뒤 '신비한 동물사전'이라는 외전 시리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난 11일 출시된 '호그와트 레거시'는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처럼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 설정을 활용한 오픈 월드 게임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인물인 알버스 덤블도어보다 더 이전 시대,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블랙이 호그와트 교장을 맡은 19세기를 게임의 배경으로 삼아 소설이나 영화에 나왔던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앞서 말한 블랙이나 위즐리, 곤트 등 익숙한 가문의 인물들이 나와 조금 다르지만 익숙한 호그와트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임은 주인공이 호그와트 5학년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방학 동안 엘리자 피그 교수에게 마법을 배운 주인공은 호그와트를 향하던 도중에 고대 마법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를 조사하며 학교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큰 줄거리다. 그리고 게이머는 이 큰 줄거리를 따라가며 소설과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기숙사를 배정 받고, 수업을 들으며 새 마법을 배우고, 친구들과 호그스미드를 방문하거나 크고 작은 모험을 하며 호그와트 생활을 즐기게 된다.
호그와트 중도 입학을 하게 된 주인공 = 게임조선 촬영
고대 마법이라는 큰 사건에 휘말리며 마법 세계에 합류한다 = 게임조선 촬영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기숙사 배정! = 게임조선 촬영
친구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즐기며 사건을 찾아가는 원작 주인공들과 비슷한 구도를 보여준다 = 게임조선 촬영
해리 포터라는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임인 만큼 게임과 원작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호그와트 레거시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게임이다.
우선 연출에 사용된 설정들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으로 게임의 첫 장면, 호그와트 등교가 이를 잘 나타낸다.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은 가장 유명한 교통 수단인 호그와트 급행열차 대신 말 없는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 호그와트로 향한다. 그리고 도중에 용의 습격을 받고 동행자가 죽는데 그 순간 마차를 끄는 세스트럴이 나타난다. 세스트럴은 사람이 죽는 순간을 인식한 경험이 있을 때 눈에 보이는데 이 설정을 살려 동행자의 죽음을 세스트럴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문인 곤트 가문도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곤트 가문은 해리 포터의 숙적인 볼드모트의 가문인데 이 게임에서도 곤트 가문은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는 잔인한 가문으로 등장한다. 이례적으로 어둠의 마법을 경계하는 오미니스 곤트라는 학생이 등장하지만, 그 역시 어둠의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리자르 슬리데린의 흔적을 쫓는 퀘스트에 중심 인물로 활약한다.
이처럼 원작의 설정이 직접 드러난 부분도 있지만, 대사나 성격, 사물 등에 간접적인 형태로 게이머의 상상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마틸다 위즐리는 호그와트 교감을 맡고 있어 위즐리 가문의 명성을 증명하지만, 그의 조카인 개리스 위즐리는 대범하고 장난기 많은 학생으로 등장해 프레드와 조지 쌍둥이 위즐리를 생각나게 만든다. 또 마법 동물 수업의 호윈 교수는 마법 동물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반대 성향을 보여준 루비우스 해그리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등 가볍든 깊든 원작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친숙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가득하다.
원작에선 초상화로 나왔던 블랙 교수도 등장 = 게임조선 촬영
가끔 이렇게 이름값 안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 게임조선 촬영
와, 넌 진짜 위즐리구나! 탄성이 나오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전임 교수의 100년 후 후임 돌려까기 기술 = 게임조선 촬영
오픈 월드라는 장르 측면에서 보면 자유도를 내세운 오픈 월드 게임들보단 단계적으로 성장하며 길을 찾는 매트로배니아 계열의 횡스크롤 탐사 게임에 더 가까운 인상을 줬다. 게임의 세계는 호그와트와 그 주변 마을로 구성됐으며, 이 모든 공간은 대부분 별도의 로딩 없이 다닐 수 있는 심리스 공간으로 구현됐다. 필요의 방이나 일부 던전처럼 로딩 후 진입하는 별도 공간을 제외하면 오픈 월드에 부합되는 세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공간 이동 측면에선 자유도가 보장되지만, 그 속의 콘텐츠를 해결하기 위해선 퀘스트 라인을 따라가며 새로운 마법과 콘텐츠를 해금해야 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매트로배니아 계열의 게임에서 연속 점프를 얻어 더 높은 지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문 너머로 가거나 퍼즐을 풀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없어도 호그와트와 주변 지역을 충분히 다닐 순 있지만, 놓친 보물 상자나 재료를 얻기 위해 다시 가야 하는 귀찮음이 반복되면 결국 자연스럽게 퀘스트를 하며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오픈 월드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인 자유도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이머에겐 호그와트 레거시의 세상은 꽤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뿐이고, 제한적인 상호작용조차 퀘스트를 하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귀찮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그 주변 마을, 그것도 세로로 길어서 오픈 월드치곤 작다는 느낌이 드는 세계 = 게임조선 촬영
다른 오픈 월드에선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던 도둑질도 마법을 배워야 비로소 시도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결국 몇 번 하다보면 모험보다 퀘스트를 우선하게 된다 = 게임조선 촬영
대신 전투 부분은 지금까지 나왔던 해리 포터 작품들 중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을 제공한다.
전투는 일반 공격과 방어 마법인 프로테고, 반격 마법으로 등장하는 스투페파이, 그리고 각종 마법 주문의 조합으로 진행된다. 적들은 특정 공격에 약점을 가지고 있거나 방어막을 둘러 특정 마법 외엔 경직조차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 상황에 따라 마법을 조합하며 적을 공략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원작에선 물건을 가져오는 소환 주문 아씨오가 적들을 당기고, 보라색 보호막을 깨뜨리는 적극인 공격 주문이 됐으며, 해리 포터의 대표 마법인 엑스펠리아르무스는 적의 무기를 떨어뜨려 무방비 상태로 만들거나 붉은 보호막을 해제시켜 후속 공격에 노출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해 엑스펠리아르무스로 적의 방어막을 부수고 아씨오로 당겨 콤보를 이어가거나 절벽으로 떨어뜨려 처치하는 등 매번 색다른 전투를 체험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마법 효과를 이어가며 시너지를 찾는 것도 전투의 묘미. 레비오소로 적을 띄운 뒤 디센도로 떨어뜨려 강력한 피해를 입히거나 엑시펠리아르무스로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들고 그 무기를 고대 마법으로 던져 적을 무력화 시키는 등 다양한 마법 조합이 가능하다. 이런 마법 조합은 레벨업할 때마다 투자 가능한 재능으로 부가 효과를 붙여 더 강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용서받지 못할 저주로 상성을 무시한 시원한 전투도 가능. 어둠의 마법 재능에 투자하면 크루시오로 광역 저주를 남길 수 있고, 아바다 케다브라로 저주에 걸린 적을 한 번에 살해할 수 있어 볼드모트 이상의 사악한 전투를 벌일 수 있다. 혹은 후플푸프 콘셉트에 몰입해 마법 식물로 적을 깨물거나 구름을 소환해 벼락을 치게 만드는 등 밋밋했던 원작에선 맛볼 수 없는 다양한 전투가 가능하다.
전투의 기본은 공격과 방어, 반격 = 게임조선 촬영
주문을 강화하며 새로운 콤보와 조합을 완성시킬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학생인데 뭘... 쓸 수 있다고요? = 게임조선 촬영
심지어 그걸 광역으로 쓸 수 있다고? = 게임조선 촬영
이얏호! = 게임조선 촬영
커스터마이징과 수집 요소는 오픈 월드 게임을 표방하는 만큼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캐릭터 외형은 얼굴 생김새 정도, 그것도 세부 조정은 거의 할 수 없고 부위별로 여러 유형을 조합해 만드는 식이라 조금 부족하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나타내기엔 큰 어려움이 없다.
마법사와 마녀의 짝이라고 할 수 있는 지팡이는 길이와 나무 재질, 모양, 심의 종류까지 캐릭터의 얼굴만큼 여러 선택지가 주어진다. 연동 기능을 지원하는 해리포터 팬클럽 사이트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만들었다면 그 지팡이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외형을 바꿀 수 있다.
옷차림은 게임 내 수집 요소와 DLC로 바꿀 수 있다. 기본 장비 위에 그동안 모았던 장비나 수집 보상, DLC 상품의 외형을 덧씌워 옷차림을 바꾸는 식이다. 뾰족 모자에 망토를 두른 고전적인 마법사 외형부터 가면을 쓴 사악한 마법사,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까지 독특한 외형을 제공해 다양한 옷차림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해리 포터 일행이 아지트로 사용하던 필요의 방은 하우징 요소로 사용된다. 게이머는 이곳에 마법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며 재료를 얻고, 이를 통해 마법약과 강화 재료를 만들어 캐릭터를 육성시킬 수 있다. 이런 도구가 필요 없다면 캐릭터 콘셉트에 맞춰 나만의 온실이나 동물원을 만들며 노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최근 게임치곤 외형 선택지가 좀 적은 편 = 게임조선 촬영
딱총나무 지팡이부터 나만의 지팡이까지 의외로 세세한 조정이 가능하다 = 게임조선 촬영
콘셉트에 심취하게 해줄 다양한 코스튬 = 게임조선 촬영
필드에서 수집하거나 키운 재료는 모험에 필요한 아이템으로 제작 = 게임조선 촬영
제작도 필요 없으면 해리 포터처럼 나만의 아지트로 활용 = 게임조선 촬영
팬 게임과 오픈 월드 장르라는 양쪽 측면에선 꽤나 만족스러운 요소들을 보여줬지만, 게임 몰입에 방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PC 최적화 문제다.
PC 버전은 i9에 4080으로 플레이해도 호그스미드를 달릴 때 프레임이 급감하는 경우가 있었고, 일부 구간에선 게임이 멈추는 일도 있었다. 이번 리뷰에선 사용한 스팀덱은 공식 호환성이 기본 그래픽을 원활히 실행하는 '완벽 호환'으로 표기되지만, 실제론 그래픽 옵션을 최하로 낮추고, 스팀덱 제한을 모두 풀어도 평균 30프레임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문제는 출시 직후 업데이트에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위와 같은 게임 외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호그와트 레거시는 신비한 동물사전 이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한 외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원작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호그와트 레거시만의 특정이 드러나는 연출, 오픈 월드 게임의 특징인 자유로운 이동, 다양한 수집 요소까지 팬과 일반 게이머 양쪽에게 즐길 거리를 주려는 제작진의 시도가 곳곳에서 엿보였다. 특히 퍼즐 풀이를 중심으로 탐험에 초점을 둔 과거 해리 포터 게임과 달리 매번 색다른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 하나 만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다. 해리 포터 팬들은 연초부터 큰 선물을 얻은 것 같다.
차라리 20프레임 유지가 되면 모를까 프레임이 널뛰면 정상적인 플레이가 힘들었다 = 게임조선 촬영
기술적 문제를 제외하면 팬 게임과 오픈 월드 장르 양쪽에서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 = 게임조선 촬영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