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에서 큰 전공을 세운 지휘관의 전투 기록으로 남곤 한다. 하지만 군대는 통솔 받는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때로는 통제권을 벗어난 곳에서 펼쳐지는 개개인의 이야기도 분명 존재한다.
인디 게임 개발사 Porta Play의 ‘브로큰 라인즈’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시간과 턴제 방식의 전투가 조화롭게 섞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브로큰 라인즈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목표를 알 수 없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불시착한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아무런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병사들은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미지의 적들과 전투하며 하루하루 구조를 기다리게 된다. 플레이어는 이 8명의 병사들과 함께 전쟁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병사들의 관계를 잘 조율해나가며 지역을 탐사해 가상의 숨겨진 역사를 써나가게 된다.
브로큰 라인즈의 가장 큰 특징은 전투 시스템에 있다. 기본적으론 턴제 시뮬레이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특정 능력치를 통해 선공, 후공으로 한 번씩, 또는 정해진 횟수만큼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 전투가 펼쳐지는 필드도 단순히 정해진 타일이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브로큰 라인즈는 일반적인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이 한 턴 안에 유닛의 행동이 지정한 대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8초 동안 실시간으로 필드 위의 모든 개체가 움직이며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유닛의 행동을 세밀한 초 단위로 지정해 줘야 하며 전투 개시 후 적 유닛이 원래 위치를 이탈해 생각했던 대로 전투가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개인이 모든 경우를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변수를 만들며 더욱 다양하고 고도의 전략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1초 앞, 2초 앞, 3초 앞 등등 매 번 8초 앞을 미리 바라보고 설계해나가야 한다 = 게임조선 촬영
유닛 역할을 할 병사들의 육성 요소도 가지고 있다. 총 8명의 병사들은 각각 자신이 다루는 고유한 특성을 제외하면 전투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유틸리티, 심지어 무기까지 자유자재로 세팅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유닛 역할을 하는 것만 아니라 병사 이전에 한 명의 사람임을 강조하는 듯한 안정도 시스템이 있다. 안정도는 전투 출전을 하거나 전투 중간중간 정비 시간에 생기는 돌발 이벤트를 수행할 때 소모되며 무리하게 전투에 계속 임할 경우 마음의 안정을 떠나 탈영하는 경우가 발생하니 전투 이외에도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심지어 전투 중에 쓰러진 아군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임무를 귀환, 사망한 채로 하루가 끝날 경우 초반 튜토리얼을 지역을 제외하면 게임 내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니 여러모로 실제 지휘관처럼 아군 병사들을 케어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템은 캐릭 간 서로 돌려 쓸 수 있지만 능력은 한 번 설정하면 캐릭터에 귀속되니 주의 = 게임조선 촬영
병사 간의 돌발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특성을 얻을 수도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세계 전쟁 속 미지의 마을이라는 설정답게 대부분의 마을 주민은 플레이어가 보고 해석하기 힘든 언어를 사용한다. 이 마을에서 말이 통하는 상대는 지나칠 정도로 병사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이즈코르 뿐이다. 다만 언어가 달라도 같은 사람답게 서로 약간의 교류를 할 수 있으며 주민의 협조를 구해 알 수 없는 곳에서 앞으로 나갈 방향을 결정짓는다.
전략적인 선택은 단순히 게임 플레이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병사들 간의 돌발 이벤트부터 시작해 하루 단위로 선택할 수 있는 오늘의 탐사(전투) 지역과 전투 중의 선택지가 발생하는데 이는 모두 엔딩의 분기점이 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냐에 따라 병사들이 맞이할 운명이 모두 달라진다.
지나온 발자취에 따라 병사들은 미지의 적의 음모를 저지할 수도, 그저 도피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엔 무사히 게임을 끝마쳤지만 전멸하는 엔딩도 있다.
마을 주민은 이해하기 힘든 언어를 쓴다는 설정답게 플레이어에게 보이는 대사도 문자만 한글이다 = 게임조선 촬영
주민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설정 답게 병사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물물교환해준다 = 게임조선 촬영
기존까지 선택해온 결과에 따라 다양한 멀티엔딩이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종합해보면 브로큰 라인즈는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실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상당히 정교한 수준의 전략을 요구하는 게임이다. 유닛이 실제로 전투를 하는 시간은 8초지만 그것을 준비하는데 고민하는 시간은 수 배가 들어가며 클리어 시간 6분 짜리 전투를 약 30여 분간 플레이하게도 만드는 게임이다.
다만 그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장점이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긴장감이 단조롭지 않게끔 끊임없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현재 브로큰 라인즈는 스토브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다. 선출시된 스팀판은 좋은 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아 불편함이 많았다. 대사를 확인하기 힘들어 작은 영웅들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곤란했던 스팀 버전과 달리 스토브 버전에선 익살스러운 대사와 함께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어 훨씬 집중도가 높아진다. 언제나 전쟁 영웅으로 나서던 타 게임과 달리 암울한 상황과 소시민적 병사들의 모습, 때론 긍정적인 반응까지 한국어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모로 강점이다. 깊이 있으면서 감동적인 스토리를 함께 감상하고 싶다면 브로큰 라인즈에 도전해보자
화끈하게 번역된 정겨운 한국어와 함께 즐겨보자 = 게임조선 촬영
[오승민 수습기자 sans@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