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략 시뮬레이션의 명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9월 1일 '크루세이더 킹즈 3'를 출시했다. 크루세이더 킹즈 3는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유명 시리즈 '크루세이더 킹즈'의 최신작으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용자들은 작품 속에서 특정 시기의 특정 국가, 특정 인물을 조작하게 되지만, 발생하는 사건은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가 많아 훨씬 자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1066년 잉글랜드의 운명'에서 노르웨이의 왕 '하랄 하르드라다'를 플레이할 경우 역사대로 온 유럽 대륙을 뛰어다닐 수 있지만, 반대로 내정에 힘쓰는 현자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역사 속 군웅뿐만 아니라 변방의 소영주까지 수많은 인물을 선택할 수 있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중세 영주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다. 이 끝없는 자유도야말로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가 16년 넘게 사랑받은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크루세이더 킹즈 3는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만큼 전작과 비교는 피할 수 없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UI. 한쪽으로 치우쳐 난잡했던 전작과 다르게 위치 배분은 물론 디자인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가시성을 높였다. 한글 폰트 역시 높은 점수를 줄만한 부분. 번역 상태가 좋다고 하기 어렵지만,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서체 덕분에 수월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 시대의 주인공격인 영주 및 군주들이 등장 = 게임조선 촬영
동시대 다른 문화권의 인물도 선택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플레이 방식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다. 군웅 중에 한 명을 고르고, 캐릭터의 능력을 이용해 영지를 발전시켜 가문을 부흥으로 이끄는 것. 중간중간 캐릭터의 인생은 물론 역사를 뒤바꿀 선택지가 등장해 몰입도를 높인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전쟁 명분과 작위, 영토 권역 등 낯선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 하는 이용자에겐 마냥 쉽지만은 않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는 이러한 부분을 튜토리얼 보강으로 보충했다. 튜토리얼에선 캐릭터 개인의 육성뿐만 아니라 가문의 방향성, 국가의 운영법까지 게임 전반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설명 중 특정 단어에 툴팁을 마련해 이해를 도왔다. 게임 방식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튜토리얼만으로 모든 걸 알긴 힘들지만, 적어도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기초적인 핵심은 전부 짚어주고 있다.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다양한 질문이 등장한다 = 게임조선 촬영
국가와 문화권의 존망이 걸린 선택을 해야될 때도 온다 = 게임조선 촬영
이용자가 조작하는 캐릭터는 수많은 군웅 중 한 명이지만, 꼭 많은 권력을 지닌 것만은 아니다. 더 높은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자신의 봉신이 되거나 병에 걸려 하루아침에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들에게서 살아남고, 그 위에 서기 위해 모함, 납치, 교살 같은 모략은 물론 위에서 등장한 수많은 선택지와 결단으로 자신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능동적으로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법은 바로 '인생관'이다. 캐릭터의 인생관을 정하는 것은 전작 크루세이더 킹즈 2와 마찬가지지만, 특성을 세분화해 더 폭넓은 플레이를 지원한다. 외교, 전투, 관리, 계책, 학습으로 나누어진 인생관은 다시 세 가지 초점과 여러 특성으로 갈라지는데 같은 전투 인생관이라도 전략가를 선택해 정복 군주가 되거나 감독관을 선택해 철권통치에 힘쓰는 식의 운영이 가능하다.
수많은 봉신을 다스리기 위해선 끊임없이 육성에 매진해야 한다 = 게임조선 촬영
외교, 전투, 관리, 계책, 학습 중 하나를 선택해 인생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캐릭터 육성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면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막상 옆 나라, 옆 봉신에 대한 선전포고가 활성화되지 않아 전쟁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크루세이더 킹즈의 전쟁 시스템은 '명분'이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은 가문원이나 봉신 중에 일정 지역의 계승권을 가진 경우, 혹은 이교도나 침략자에 대해서 성립하는 요소다. 대주교를 이용해 영지 명분을 위조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재화 지출이 발생하며, 운이 나쁠 경우 신뢰와 신앙이 감소하고, 대상의 분노를 살 수도 있다. 교황에게 작위를 구입하거나 이벤트를 이용해 명분을 얻는 방법도 있으므로 상황에 맞춰 사용하면 되겠다.
명분이 충분하다면 선전포고 후 본격적인 전쟁에 뛰어들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봉신들로부터 군사를 징집하거나 용병을 고용해 자신의 군대를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 이 군대를 이끌고 회전에서 적 병력을 분쇄하거나 공성에 돌입해 승리 점수를 버는 식으로 전쟁을 운용하게 된다.
전투는 자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황을 잘 읽고 병력 운용만 잘하면 된다 = 게임조선 촬영
공성전은 도시 발전도와 주변 병력에 따라 저항도가 달라진다 = 게임조선 촬영
전쟁 결과는 대체로 공성전 승리로 판가름나지만, 가끔 상대 왕이나 영주가 잡혀 끝나기도 한다 = 게임조선 촬영
영토가 늘어났다면 이젠 내실을 다질 차례다. 각 영지는 전초 기지, 저습지 농장, 병영 등 다양한 시설을 지어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권역에 따라 백작령이나 소왕국, 제국 등 행정 구역을 묶어 따로 통치할 수도 있다. 많은 지역은 그만큼 많은 관리를 요구하지만, 건물과 봉신이 제공하는 편의도 상당하기 때문에 언제나 상황에 맞는 심시티를 염두에 둬야 한다.
종교와 문화는 한 나라의 발전은 물론 다른 나라와의 외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타 종교 및 문화권과 마찰은 게임 내내 끊이지 않기 때문에 같은 종교, 같은 문화는 성장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권력이 충분할 땐 발전을 옭아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땐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화를 퍼뜨리거나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 견제하는 식으로 다른 군웅들을 견제할 수 있다.
획득한 영지를 잘 다스려야 후대가 편안하다 = 게임조선 촬영
조작 캐릭터뿐만 아니라 집안과 종교, 문화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해야 살아남는다 = 게임조선 촬영
8년 만에 등장한 크루세이더 킹즈 3는 세 편의 시리즈 작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납치와 궁병의 높은 활용도가 게임의 몰입을 해친다는 의견도 있지만, 깔끔한 UI와 쾌적한 시스템,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까지 모든 면에서 전작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명분과 계승, 권역 등 이 게임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인 중세 유럽의 관습과 법을 초보자도 알기 쉽게 번역해 많은 초보자, 특히 한국 이용자들이 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사후 지원을 다수의 DLC로 보충했던 개발사의 행보 덕분에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작품 입문을 권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크루세이더 킹즈 3만큼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중세 시뮬레이션 게임의 입문적으로 추천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