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레이싱 게임은 그리 메이저 한 장르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넥슨의 카트라이더 독무대이고, 그 뒤를 이어 닌텐도의 마리오카트, 스마일게이트의 테일즈런너 정도가 대중적인 편이다. 대체로 캐주얼 레이싱, 아케이드성이 강조된 레이싱 게임이 주류를 이루는 편이다.
캐주얼 레이싱이 상승세를 얻는데에는 조작의 이점이 있다. 정통 레이싱과 다르게 해당 플랫폼 기기 만으로 충분히 재미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시뮬레이션 형태의 정통 레이싱 게임의 경우 레이싱휠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조작의 맛을 살릴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레이싱휠이나 페달 등의 컨트롤러에 비해 세밀한 조작이 어렵고, 레이싱 게임 장르가 가지는 재미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평이 많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나의 장르를 위해 레이싱휠과 페달 등을 구매하고 집 안에 설치/보관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 자체가 게임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마이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로지텍이나 트러스트마스터 등의 업체에서 저가형 레이싱휠을 판매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저가형으로 갈 경우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의 차별점 중 하나인 포스피드백의 구현이 되지 않아 붕 뜬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여러모로 고민이 많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모터쇼 중 하나인 FIA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의 공식 게임 'F1 2020'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레이싱 게임에 입문하기 좋은 게임 중 한나다. 레이싱휠이 아닌 패드만으로도 괜찮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임으로 속도감 있는 레이싱과 현실적인 주행, 그리고 이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마이팀 모드까지 지원하며 단순 레이싱을 넘어 포뮬러 원 마니아의 팬심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F1 2020은 지난 7월 PC와 플레이스텡션4, 엑스박스원, 구글 스테디아로 동시 출시했다. 플랫폼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즐길 수 있다. F1은 이전 시리즈까지 패드로 게임을 플레이해도 게임의 재미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평이 많아, 레이싱휠이 없더라도 패드로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대신 F1 2020이 아니더라도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의 경우 키보드로 운용 시 핸들링이 뻣뻣하며, 세밀한 조작 자체가 불가능하기 패드 정도는 구비하는 것을 추천한다.
F1 2020은 공식 게임인 만큼 실제 F1 팀과 각종 상표가 현실적으로 등장하며, 경기 전 인터뷰나 코치, 팀 관리 등의 부가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다. 특히 기본적인 커리어 모드 외에도 2020에 새롭게 추가된 마이팀 모드는 F1의 팀워크 재미를 극대화했다.
커리어 모드는 정통적인 레이싱 모드다. 실제 F1 2020 대회에 참여해 퍼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여러 기업으로부터 스폰을 받으며, 상위권에 진출하는 것이 핵심 플레이다. 여타의 다른 레이싱 게임과 마찬가지로 주행이 핵심인 만큼 기본적인 차체의 성능 차이는 있지만 실력으로 커버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반대로 말하면 뉴비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주행조차도 힘든 것이 F1 시리즈이기도 하다.
코너링을 드리프트로 돌파하는 캐주얼 레이싱과 다르게 속도를 줄이며 코너를 돌파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후진 자체도 난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스피드 런'으로 생각한 레이싱 주행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느릿한 주행이 되기 때문에 F1 자체에 관심이 없는 유저라면 상상한 것과 다른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대신 프랙티스 모드를 통해 최상의 경로와 브레이크 타이밍, 바퀴 관리 등을 반복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 특히, 플래시백 기능을 통해 실수하는 경로에서 반복적으로 되돌려 여러 시도를 하고 자신의 조작 방식에 어울리는 최적의 루트를 뽑아낼 수 있어 게임 내 기능만 제대로 익힌다면 초보자 친화적인 모습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추가로 이번 2020에서 추가된 화면 분할 기능은 말 그대로 스크린을 위아래도 반 토막을 내 2명이 함께 F1 2020을 즐기는 모드다. 당연히 온라인 모드를 통해 전 세계 유저와 함께 플레이할 수도 있지만, 집에 찾아온 친구나 가족과 하나의 컴퓨터/콘솔 기기로 함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캐주얼 레이싱 게임이 아닌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장점이다.
마이팀 모드는 레이싱이 아닌 시뮬레이션 모드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기존의 F1 시리즈는 커리어 모드만이 있어 드라이버로서 활약을 했다면, 2020의 마이팀 모드는 마치 피파온라인의 매니저 모드처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즐기는 고용주 모드다.
실제 F1의 10개 팀을 넘어 11번째 팀의 고용주가 돼 일정을 구성하고 드라이버와 코치, 스폰 기업 등을 연결하며 플레이할 수 있다. 자신이 키운 선수와 함께 우승을 목표로 할 수 있으며,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다른 팀에 간 그 선수를 응징하는 플레이도 가능해 단순 드라이빙으로 우승을 하는 커리어 모드와는 다른 서사적인 재미를 강조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평소 접해볼 수 없었던 레이스카 개발 등 좀 더 다양한 부분에서 색다른 플레이를 즐겨볼 수 있다.
한편, F1 2020은 게임의 시스템적인 부분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악평이 자자했던 꽉 막힌 듯한 엔진 소리가 대폭 개선된 것처럼 사소한 부분부터, 코로나로 취소된 올해 서킷이 그대로 들어간 점까지 여러 부분에서 만족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렇듯 많은 장점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F1 2020이 단점 없는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스터터링이다. 조금만 어긋나도 축이 어그러지며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레이싱 게임임에도 간헐적 끊김이나 프레임 드랍으로 인해 근본적인 조작감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이는 멀티플레이 상황에서 좀 더 심한 편이라 평가를 상당수 깎아먹는 원흉이 되고 있다.
추가로 초반부 언급했지만, 레이싱 게임 자체가 국내에서는 큰 인기가 없는 마이너 장르인 탓인지 코드마스터즈에서도 별다른 한글화 의지가 없어 F1 2020 역시 한글화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레이싱 용어부터 게임 내 다양한 기능, 거기에 더해 인터뷰와 마이팀 모드 등 레이싱 게임치고는 언어 요소가 제법 많은 편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은 국내 한정으로 진입장벽을 높이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고 있다.
레이싱 게임으로서의 기본적인 재미와 마이팀 모드를 통한 장기적인 시뮬레이션 플레이, 분할 기능을 통한 2인 플레이 등 F1 2020은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는 풍성한 볼륨을 자랑한다. 단점 역시 존재하지만, 지속적인 패치를 통해 초반 부정적인 의견을 씻어내 PC 스팀 기준으로는 현재 매우 긍정적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레이싱휠을 통해 좀 더 그럴싸한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패드만으로도 괜찮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임인 만큼 좀 더 현실적인 레이싱 게임에 도전하고 싶다면 F1 2020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추가로 패드만으로 충분히 즐겼다면 레이싱휠로의 업그레이드 또한 도전해 볼 만한 구성이다. 패드로도 충분히 즐길 수는 있지만, 레이싱 게임에 필요한 전용 장비를 구매했을 때 레이싱 게임이 주는 만족도는 여타 시뮬레이션 게임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저가형 모델도 꾸준히 발전하면서 조작감은 물론 포스피드백이 구현되는 등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 레이싱 게임에 대한 접근도나 진입장벽 역시 낮아지고 있다.
[이정규 기자 rahkhan@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