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편집자 주]
많은 사람들이 '현대 사회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 그렸던 미래 세계에서 '하늘을 나는 무공해 전기 자동차', '완전 자동화된 가사노동', '우주로 가는 수학여행'처럼 어느 정도 실현은 가능하지만, 상용화가 될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한 것들이 대다수고 그나마 '한 손안에 들어오는 컴퓨터'가 스마트폰의 형태로 우리 생활권에 들어와 있는 상태이며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서서히 그 저변을 넓히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아직 기술 발전의 수준이 상상력을 뛰어넘었다고 보기에는 힘든 상황에 있다.
그래도 딥러닝이라는 선결 조건이 붙긴 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학습한 끝에 내로라 하는 프로 바둑기사들을 꺾은 '알파고'의 등장 이래, 많은 사람들은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두고 '특이점은 온다'는 상용구를 쓰며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언젠가 AI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고 대체할 거란 이야기들을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좋은 인공지능을 게임과 관련하여 쓸데없이 퀄리티가 높은, 아주 잉여스러운 작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뜌땨는 <붕괴:스타레일>의 등장인물이자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인 '블랙 스완'과 그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만든 밈이자 AI 노래이다.
사실 노래의 기반이 된 원본 이미지 아이콘은 <소울워커>의 '스댕라(스텔라 유니벨)', <함대 콜렉션>의 '고수가 될거야(후부키)', <승리의 여신:니케>의 '도로롱(도로시)'의 특징이 모두 합쳐진 궁극의 혼종이라는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AI 노래 뜌땨송은 앞서 설명한 기원과는 상관 없이 블랙 스완이 작품 내에서 보여준 면모들이 허당스럽고 모자라 보인다는 특징만을 살린 노래이기 때문에 굳이 모든 내력을 파악하지 않더라도 스타레일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블랙 스완이 밈의 주인공이 된 원인은 처음 공개될 당시의 이미지와 실제 행적의 괴리에서 기인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주인공 3인방 중 하나인 'March.7th'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떡밥과 미스터리한 점술가의 모습 그리고 메인 스토리 3장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건 내막을 먼저 파악하고 손을 쓰고 있는 듯한 언행을 보여주며 신비로 가득찬 중심 인물이라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진행할 수록 은근히 아는 게 적거나 빗나간 분석을 내놓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많이 노출하며 그 체면을 많이 구겨먹었으니 이렇게 놀려먹기 좋은 소재를 두고 게이머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으니 AI의 힘을 빌려 댕청미를 한껏 살린 뜌땨 소재의 노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전에 공전의 히트를 쳤던 밈인 '몰?루'와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는데 실제 '몰?루'의 주인공인 아로나는 극 중에서 사실상 모르는 게 없는 인물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이 '몰?루'를 연발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 하찮은, 소위 말하는 '갭 모에'를 자극하고 있다는 게 포인트였던 만큼 유아퇴행한 것처럼 '우으...뜌땨'를 연발하는 블랙 스완의 모습 또한 어느 정도 그 인기가 예견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 알고 있거나 주인공이 직접 알아내라는 뉘앙스를 풍기긴 하는데, 실제론 진짜 모르는 상황이 더 많다(...)
앉중손은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주인공인 '루크 설리번'의 사기적인 성능을 꼬집기 위해 제작된 노래다. 대부분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주인공 그리고 라이벌 캐릭터의 인기는 게임의 흥행과 꽤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성능을 준수하게 뽑아내고, 초보자가 쉽게 익히고 적응할 수 있게끔 플레이 스타일을 모난 곳 없이 평이하게 전천후 대응이 가능한 육각형으로 설정하기 마련이지만 루크의 경우는 그 육각형이 지나치게 컸다.
앉중손의 흥행 배경에는 캡콤의 성공적인 시스템 변혁이 있다. 스파 6는 입력해야하는 버튼 수를 줄이고 원버튼 또는 또는 단방향 추가 입력만으로 필살기를 구사할 수 있는 모던 컨트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이전보다 커맨드 기술을 매우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 복잡한 조작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당연히 플레이어들이 조작에 할애할 리소스가 줄어든 만큼 기본기 싸움의 중요도가 자연스레 올라가게 됐고 그 과정에서 루크의 기본기 성능이 심각하게 강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이 기본기의 성능을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노래에서도 이미 다 알려주는 사실이지만 버튼을 누르면 공격 판정이 발생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판정 범위가 넓은 한편 판정이 남아있는 시간도 길며, 뻗은 팔이나 다리를 거둬들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딜레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니 상대의 역습 또한 쉽게 대비할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일단 승룡권을 지르고 보는 막장 운영의 켄이나 기술의 변칙성 때문에 상대의 짜증을 불러오는 디제이만큼 혐오 스택이 쌓인 것은 아니지만 루크 설리번은 정직하게 기본기 싸움을 해도 어지간하면 이득을 보는 부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영법이나 연습이 필요한 전자들에 비하면 당하는 입장에서의 억울함(?)이 비교적 진하게 녹아 있어 흥행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지금은 시즌 2 패치로 너프를 받아 예전보다는 약해진 상태다. 워낙 노래가 좋으니 '앉중손'을 즐기는 건 괜찮지만 루크 혐오는 이만 멈추도록 하자.
이렇게 루크 유저 평균이 선량합니다. 아님 말고
'정상화'는 <메이플스토리>의 현임 디렉터 '김창섭'의 행보와 관련하여 이용자들의 뒤틀린 애증이 반영된 밈이자 AI 노래 시리즈다. 본래 메이플스토리가 던전앤파이터, 로스트아크와 같이 국산 액션 RPG를 삼분하고 있는 트로이카의 한 갈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 책임자인 김창섭은 부임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와 공과가 모조리 기록될 만큼 이용자들의 관심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이슈인 '리부트 월드 vs 일반 월드'와 관련한 업데이트 방향성 때문에 이용자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밈으로 자리잡게 됐다.
사실 제대로 파고들면 굉장히 많은 노래가 나왔지만 대체로 방향성은 한쪽으로 치중되어 있다. 리부트 월드 이용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업데이트된 것을 진심으로 게임이 '정상화'됐다고 생각하는 일반 월드의 일부 악질 이용자들을 비꼬는 동시에 제작진의 부실한 콘텐츠 업데이트와 편향적인 밸런싱을 지적하고 있는 '모두까기'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반 월드의 일부 악질 이용자들은 이 밈과 노래가 자신들을 비꼬는 노래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함께 즐기고 있다가 제작자들이 조금 더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노래를 출시하자 뒤늦게 태세를 전환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김창섭 디렉터에게 찍힌 '정상화의 신'이라는 키워드는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정작 디렉터 본인은 '정상화'라는 키워드를 자신이 먼저 말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관측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김창섭 디렉터가 직접 이 노래에 대한 언급을 했고 그 방향성이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현재는 조롱이나 비판 자학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아직 그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향후 업데이트와 그 결과가 잘 나와서 함께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직접 한곡 부르겠다고 했으니 AI노래가 아닌 라이브를 원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도하도록 하자.
속보) 김창섭 디렉터 보컬 레슨 등록
실제로 4개의 짧은 어절만으로도 그럴듯한 노래가 뚝딱 나온다
위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AI가 뛰어난 퀄리티의 노래를 제작하는 데 있어 밈의 배경과 인지도 그리고 노래를 제작하는 사람의 센스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AI가 제작한 노래는 장르와 가사 그리고 변조와 방향성 등 의외로 미리 지정하고 손을 써둘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 시리즈처럼 이를 단순히 텍스트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흥겨운 한곡의 노래로 제작하는 것이 전달력과 재미 그리고 파급력에서 훨씬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AI 노래는 밈의 최첨단을 달리는 필수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신이 게임 그 자체를 잘 아는 겜잘알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노래 제작에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혹시 또 아는가? 게임이 흥하는데 큰 이바지를 하여 공식 앰버서더가 되거나 작사/작곡의 재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