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앤 화이트`는 `파퓰러스`로부터 시작된 '신게임'의 계보를 잇는 게임으로, 게이머가 신적인 존재가 되어 땅따먹기 식으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간단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게이머가 일종의 전지 전능한 마법사와 같은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선과 악의 공존
게이머를 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 외에 `블랙 앤 화이트`에서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목과 같이 신의 존재가 어떤 특징적인 선과 악의 구별이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이머가 처음 신의 자리에 올라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야말로 백지 상태로 게임을 하게 된다.
이것은 `블랙 앤 화이트`가 의도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가 신이 되어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선과 악의 갈래에 놓이게 되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 앤 화이트`는 게이머가 의도하는 데로 세계가 변화하게 된다. 사랑으로 부족민을 대하고 선하게 게임을 이끌어 간다면, 신전도 화사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또한 게임에 등장하는 게이머의 손 또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게이머가 악행을 일삼고 무력과 폭력으로 부족민을 다스린다면 신전도 날카롭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갖게 되며, 게이머의 손 또한 검은 빛을 띠게 된다.
이렇듯 게이머는 `블랙 앤 화이트`를 플레이 하는 동안 스스로의 길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게임이 의도하는 바이고, 실제로 `블랙 앤 화이트`를 두 세번 플레이 해본 바로는 궁극의 악에 이르는 길이 더 짜임새 있고 매력적인 플레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플레이어의 분신, 크리쳐
`블랙 앤 화이트`의 매력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 크리쳐를 기르는 재미일 것이다. 크리쳐는 게이머, 즉 신과 부족민의 중계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튜토리얼과 같은 작은 퀘스트를 해결하고 나면 자신이 키울 크리쳐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처음에는 소와 원숭이 그리고 호랑이 세 크리쳐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소는 기본적으로 온순한 성심 가지고 있고, 원숭이는 지능이 뛰어나며, 호랑이는 기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면 되는데, 초기 특성의 설정치는 게임을 진행하는 데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므로, 특별히 신경 쓸 것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크리쳐를 고르고 나면, 이 때부터 `블랙 앤 화이트`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크리쳐에게 먹고 자는 것부터, 부족민들을 돕기 위해 일하는 것. 그리고 전투 등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가르치듯 크리쳐를 키우게 된다. 물론 `블랙 앤 화이트`를 클리어 하는데 있어 크리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크리쳐를 혼자 아무렇게나 살아가게 내버려두고 게이머가 직접 모든 일을 처리하며 게임을 진행해도 엔딩을 보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블랙 앤 화이트`의 재미를 한껏 누리기 위해서는 크리쳐를 정말 잘 키워야 한다. 일단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선한 신이 될 것인지 악한 신이 될 것인지를 결정한 후 크리쳐를 그 상황에 맞게 키워야 한다. 크리쳐를 키우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배움, 악함, 선함, 이렇게 세개로 나뉘어 있는 개목걸이 같은 로프를 이용해 크리쳐를 길들이면 된다.
크리쳐는 실제 게임플레이 1시간 마다 1 살을 먹는데 3살에서 8살까지 학습능력이 최고조에 이른다. 40살 이상이 지나면 서서히 늙어가는 증세가 보이지만 결코 늙거나 다쳐서 죽는 법은 없다.
크리쳐는 게이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실제로 살아있는 아기가 행동하듯 게이머들 대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면 알아들었다는 표현과 함께 재미있는 제스쳐를 취하고, 배가 고프다, 슬프다 등 실제 아기와 같은 행동들을 한다. 또한 게이머가 무의식 중에 크리쳐를 스쳐 지나 갈 때면 손을 흔들기도 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렇다면 크리쳐는 게이머에게 키우는 재미만을 안겨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크리쳐는 게이머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게이머가 평소에 신경 쓰며 해야 하는 부족민들의 물자와 식량 공급을 크리쳐에게 가르쳐 보라. 크리쳐는 게이머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한번 배운 그런 기술을 계속해서 행하고 다닌다. 덕분에 게이머는 더 큰 일들에 신경을 쏟을 수 있게 된다. 또한 게이머가 사용하는 마법도 가르칠 수가 있다. 식량을 만드는 마법, 번개를 쏘고, 비를 내리고 하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크리쳐 앞에서 행하면 크리쳐는 손가락을 높이 쳐들며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할 것이다.
실제로 크리쳐에게 비오는 마법을 가르친 후 다른 신의 크리쳐와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싸움이 붙은 장소가 우리 진형이 아니라 마법을 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번개 마법이 떨어져 몸에 불이 붙은 적이 있다. 그때 크리쳐는 영악하게도 비오는 마법을 자신의 몸에 행해 불을 꺼버리는 것이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손 하나로 세상을 구원하다
`블랙 앤 화이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인터페이스에 있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손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는 신이라는 이미지에 상당히 부합하는 형태를 가진 것으로, 게임 화면 자체에 여러 가지 마법 아이콘과 기타 게임 컨트롤을 위한 버튼을 나열해 놓았다면, 신과 같은 느낌을 받는 데에는 상당히 애로 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신의 거점인 신전을 만들어 게임 안에 포함되어 있는 신전에 거의 모든 게임 사항을 담아 놓고 있다. 그런 신전 덕분에 일반 게임 화면은 손 이외에 어떤 버튼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법은 신전의 외부에 구모양의 형체로 놓여져 있으며,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게임 설정과 정보들이 각 방에 놓여져 있다.
신전 안의 모습은 TV나 영화의 미래 도서관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고글과 전자 장갑을 끼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정보를 찾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바로 이런 장면이 `블랙 앤 화이트`의 신전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신전에는 세이브와 로드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에도 전체지도, 크리쳐의 각종 상태를 알 수 있는 곳도 있다.
게임 플레이 시의 이동과 시점 전환도 물론 손 하나로 이루어진다. 특이한 것은 마법 캐스팅 시, 손의 움직임을 읽어 낸다는 것이다. 게이머가 마법진을 그리듯 허공에 손을 움직이면 그에 대응하는 마법이 시연 되어 실제 마법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손 하나로 게임 전체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인터페이스이다. 상당히 빠른 게임 진행을 즐기는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같은 느낌을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블랙 앤 화이트`가 게임기용 이식될 것을 대비해 이런 형식의 인터페이스를 고안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유야 뭐건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를 좀더 신과 가깝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새크리파이스, 자이언츠와 같은 게임들은 현재 게임 그래픽의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형태를 보여주었다. `블랙 앤 화이트` 또한 이런 대열에 충분히 들어설만한 화면을 보여준다. 풀3D는 기본, 사과 속의 벌레에서 지구전체의 모습까지 무한에 가까운 줌인/아웃 기능은 게임을 좀더 사실적으로 플레이하고자 하는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기쁨을 안겨줄 것이다.
화려한 마법 효과와 실제와 같은 안개, 그리고 비, 눈오는 날의 표현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각종 마법 시연 시의 잔상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각 부족들의 모습이나, 크리쳐의 모습, 움직임 또한 상당히 부드럽게 표현되고 있어 더욱 애착을 느끼게 한다. 또한 밤낮의 시간 개념이 있어 저녁의 노을이 지는 모습이나, 새벽 동이 틀 때의 주변 환경은 실제와 같이 가슴을 벅차게 할만큼 아름답다.
◆천상의 음악을 듣고 싶다
이전까지 `블랙 앤 화이트`의 괜찮은 점만을 이야기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블랙 앤 화이트`는 흠잡을 곳이 없는 게임이란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블랙 앤 화이트`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배경음악을 지닌다. 상황에 맞게 배경음악을 바꿔주는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선이나 악이나 모두 특이할 만한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이 아니다. 신들이 사는 세상이 그런 것일까? 뭐 그렇다고 악의 상황에 헤비메탈 음악을 깔 수는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더 확실한 배경음악으로 바꿀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경음악은 게이머를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약간의 변화 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된다.
또 하나, `블랙 앤 화이트`에는 신의 음성이 빠져있다. 물론 이것은 게임의 특성상 아주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의 음성을 삽입하고, 음성에 따른 부족민들과 크리쳐의 반응을 넣었다면, 좀더 생동감 넘치는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뢰와 같은 신의 음성. 확실히 새로운 요소가 되지 않을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E3에서 게임이 공개된 후 상당히 많은 게이머들이 `블랙 앤 화이트`를 기다려왔다. 피터 몰리뉴의 게임관이 정점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준 `블랙 앤 화이트`는 확실히 게이머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게임이다. 현재 `블랙 앤 화이트`의 무료 확장팩과 공식 확장팩이 한창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신이 강림을 하게 될까.
[임현우 기자 hyuny@chosun.com]
장르 | 전략시뮬레이션 |
개발 | 라이온 헤드 |
유통 | EA코리아 |
최소사양 | P2-350, 64M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