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거의 모두 3D로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전략 시뮬레이션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언제부터 인가 전략 시뮬레이션도 3D로 제작 되었고, 원근감이나 높낮이 개념이 좀더 철저한 가운데, 새로운 전략적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홈월드'와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의 경우 3D 기술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만들기 까다로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3D 전략 시뮬레이션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중 게이머들에게 적극적인 호응을 받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이 시점의 문제인데, 지금까지 2D의 쿼터뷰나 탑뷰에 물들어 있는 게이머들로서는 3D의 자유로운 시점을 컨트롤 하기가 조금 버거웠다는 것이다. 물론 3D는 아주 다양한 시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2D에 친숙한 게이머들은 이런 시점에 혼란을 겪고 있다. 전략 시뮬레이션은 상당히 빠른 진행을 요구 하는데, 이러한 급한 상황에서 시점마저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점의 적절한 변화 또한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유닛의 상관 관계, 지형의 높낮이, 맵의 분석 이외에 또 다른 신경 쓸 꺼리가 생긴것이다.
아직은 전략 시뮬레이션이 2D에서 3D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3D 인터페이스를 내놓는 게임이 게이머들을 3D에 제대로 자리잡게 해줄 것이다. 이제 3D에 걸맞는 좀더 진보된 인터페이스가 필요한 때이다.
얼마전 '그라운드 컨트롤'이란 게임이 발매되었다. 발매전부터 각종 게임 매체와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현재 3D 전략 시뮬레이션으로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을 받고 있다. 이전까지의 3D 전략 시뮬레이션은 2D의 것을 어떻게 하면 3D로 잘 변환해 놓을까에 중심을 맞췄다면, '그라운드 컨트롤'의 경우는 3D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데 힘을 쏟은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2D를 벗어나 이제는 3D에 맞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닳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현재 '그라운드 컨트롤'을 3D 전략 시뮬레이션의 최고라 칭하는데 반박할 게이머는 아마 드물 것이다.
◆턴방식 게임의 묘미
턴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과 리얼 타임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은 각기 다른 장르로 보아도 될 만큼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리얼 타임의 경우는 빠른 게임진행으로 인한 긴장감과 박력, 그리고 액션. 또 하나 게임 내내 밀려오는 초조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턴방식의 경우 앞서 말한 리얼 타임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게임 시간의 제한을 거의 받지 않으므로, 속도에 있어서 상당히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긴장감이나 초조함에서는 다소 리얼 타임보다 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턴방식의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의 경우 이런 말에 상당히 반박을 할 것이다. 턴방식을 제대로 즐기는 게이머들의 경우, 그들은 리얼타임보다 더한 긴장감과 초조함을 느끼게 되어 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듯, 자신의 턴이 끝나고 나면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신의 본진을 뚫고 들어 와도, 그대로 보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게임 진행은 상당히 루즈하다는 것이 사실. 물론 그 사이에 벌어지는 머리 싸움은 턴방식의 경우가 더 치열하다.
앞서 여러 번 이야기 했던 것처럼, 턴방식은 확실한 머리 싸움이다. 컴퓨터와 동등한 입장에서 머리를 쓰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컴퓨터의 인공지능과 1대 1의 대결을 벌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바둑을 두는 것과 같이 상당한 시간을 요구 하기 때문에 일반 게이머들은 이런 시간 속에서 긴장감이나 초조함을 많이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없이 무조건 때리고 부수는 식의 화끈한 액션을 맛보기가 상당히 어렵다.(물론 여기서 '생각없이' 라는 말은 무대뽀식으로 전략없이 게임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리얼 타임 전략 시뮬레이션의 전투와 같이 빠른 유닛 컨트롤로 인한 이점이나, 우연에 의한 전투의 승리는 턴방식의 경우 기대하기 힘들다. 유닛 하나하나에 상당히 공을 들여 컨트롤을 해야하며, 우연이 아닌 스스로 생각해 만들어 내는 치밀한 전략만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준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턴방식의 경우, 유닛별로 경험치(?)와 같은 것을 도입해 롤플레잉적인 요소를 더하고 있다. 유닛 하나하나 공을 들여 전략을 세우는 가운데, 유닛별로 레벨 경험을 추가할 경우, 더욱 유닛에 애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턴방식 게임의 경우 자신의 턴이 지나면 상대의 턴이 끝나는 순간까지 아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개에 둘러 쌓인 곳에 유닛을 멈춰놓고 다음 전략을 짜고 있는 동안 턴을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편이 안개를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발버둥을 쳐바야 자신의 턴이 끝났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없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식의 긴장감과 초조함은 아마 제대로 턴방식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는 리얼 타임의 그것과 전혀 비길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은 게이머들이 이런 턴방식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라운드 컨트롤을 턴 방식으로 만든다면
배틀 아일이란 이 게임은 턴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이다. 3D로 이루어진 턴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는 팬저 제네럴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배틀 아일은 다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상당히 드문 형태인데, 완전한 3D 전략 시뮬레이션에 턴방식을 취하고 있다. 3D의 경우 화려한 그래픽을 이용해 확실한 액션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들이 리얼 타임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배틀 아일은 '그라운드 컨트롤'과 같은 세밀한 3D그래픽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 하고 턴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식의 게임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상당히 보기 힘들다. 왜 배틀 아일은 턴방식으로 제작되엇을까.
배틀 아일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게임이다. 1987년 1편을 필두로 현재 제작되고 있는 배틀 아일이 5편이다. 아마 배틀아일이란 게임을 못들어본 게이머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게이머들은 배틀 아일이란 게임이 조용히 다른 게임들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배틀 아일은 초기 1편때부터 턴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한마디로 팬저 시리즈와 더불어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의 기초를 마련해 왔다고 할 수 있는 게임인 것이다. 물론 상당히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지만 말이다.
◆독특한 아이디어가 빛난다
10여년의 세월 동안 배틀 아일은 게이머들이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성장해왔고, 이번 5편에 이르러서 상당히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3D로 표현된 맵과 유닛들도 상당히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고, 사운드 역시 다른 어떤 게임에도 뒤지지 않는다. 더불어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롤플레잉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투시의 자동 시점변화는 상당히 독특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싸움이 붙을 경우 유닛을 하나의 캐릭터화해 시점을 자동으로 옮겨 전투의 박진감을 더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턴방식의 단점을 어느정도 보완 하려고 상당히 애를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처음 배틀 아일을 접하는 게이머들은 분명히 리얼 타임 전략 시뮬레이션인줄 알고 부대를 묶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그 정도로 배틀 아일은 '그라운드 컨트롤'에 비길 만큼 상당히 괜찮은 그래픽을 보여준다. 또한 '그라운드 컨트롤'의 자랑거리인 거의 무한대의 줌인/아웃 기능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고 있다. 작게는 바닦의 흙부터 크게는 전체 지형을 볼 수 있을 만큼의 확대, 축소가 가능하다. 또한 유닛들의 포격이나, 상대의 포탄 발사 시의 그래픽 효과도 상당히 뛰어나다. 반투명 효과를 사용해 폭발 장면들을 표현하고 있다.
배틀 아일의 가장 독특한 점은 다른 턴방식 게임들과는 달리 한턴의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턴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의 경우 턴수의 제한을 두어 좀더 긴장감 있는 게임 진행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배틀 아일은 좀더 진보된(?)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 턴의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턴 한턴의 운영을 상당히 빨리 진행하게 되어 턴 제한보다 더욱 긴장감 넘치는 게임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어느 게임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아이디어의 독특함에 상당한 점수를 주고 싶다.
◆턴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의 부활을 꿈꾸며
그동안 팬저 시리즈 외에 이렇다 할 턴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배틀 아일이 발매되고 나면 턴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 상당한 호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그래픽과 더불어 정교한 전투 시스템은 매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앞으로 정식 버전이 나올 때 까지 좀더 기다려 보아야 겠지만 현재 데모 버전 만을 플레이 해봐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임현우 기자 hyu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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