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리뷰를 쓴다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다. 단순한 소개에 그치는 프리뷰와 달리 하나의 작품을 평가해야만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알게 모르게 게임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스토리를 중시하는 롤플레잉게임이나 어드벤처게임은 이러한 스포일러(Spoiler) 행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물며 '제로~붉은 나비'와 같은 공포게임의 리뷰라면 더더욱 조심스럽게 된다. 결말을 미리 알아버려 공포영화의 재미를 상실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게임의 스토리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게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고요한 공포-타 게임과의 차별성
전작 '제로'에서도 그랬지만 '제로~붉은 나비'는 참으로 고요하다. '바이오해저드'나 '사일런트힐'과 달리 플레이어 캐릭터는 뛰지를 못한다. 느릿느릿하게 진행되는 템포 속에서 플레이어는 더욱 공포를 느끼게 된다. 흑백톤이 가미된 배경 묘사 역시 순간적인 변화를 통한 공포 속으로 플레이어를 발가벗겨 내던지는 역할을 한다.
총이나 칼이 아닌 사진기가 적에 대항하는 도구라는 점도 그렇다. 적이 정해진 위치까지 도달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한다. 1인칭 시점에서 달려드는 귀신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각(死角)의 공포…. 플레이어는 스플래터가 아닌 심리적인 공포를 맛보게 된다.
'귀신에게 홀리기 쉬운 언니'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해져 오는 공포도 신선하다. 전작에서 호평을 받았던 요소들을 계승·발전시켜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신한다?
타이틀 화면에서 아무 입력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고 있으면 이 게임의 대략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흘러나온다. 마을의 평온을 위한 의식의 제물로 바쳐지는 두 명의 자매, 그리고 주인공과 언니를 오버랩시키며 이 둘의 앞에 놓여진 운명을 짐작케 해준다. 부제인 '붉은 나비'의 의미도 포함해서….
일반적인 공포게임의 엔딩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후속작을 예고하는 듯한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는데 반해 '제로~붉은 나비'는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결말을 채택, 공포게임으로서 최선이자 최악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공포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여운과 으스스함을 남겨주지만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씻어낼 수 없는 찜찜함을 남겨준다는 얘기다. 물론 진정한 엔딩이 하나 더 마련되어져 있긴 한데 이 또한 다른 게임에 비해 결코 해피엔딩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내용이다.
초반과는 달리 막판에 연달아 몰려드는 전투로 인해 오히려 게임의 공포가 반감되는 등 템포 조절에 실패한 곳도 일부 눈에 띄지만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신하는' 엔딩만으로도 필자는 이 게임을 올 여름을 대표할 공포게임의 반열에 올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04.07.09)
[이용혁 기자 leey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