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가 개발하고 세가가 유통하는 '토탈 워: 파라오'는 람세스 3세 시기 이집트를 다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토탈 워: 파라오의 배경을 역사에서 살펴보면 개발진들이 왜 이 시기를 선택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이집트 내부로는 제19왕조에서 제20왕조로 넘어가는 시기로 파라오 메르넵타 사후 그의 아들 세티가 즉위했지만 여기에 불만을 품은 세티의 이복 동생 아멘메세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되고, 세티가 급사해 그의 아내 타우스레트가 즉위했지만 람세스 3세의 아버지 세트나크테가 반란에 성공하는 격동의 역사 그 자체다. 이집트 외부로는 바다 민족이 침략해 청동기 문명에 기반한 세력들이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상황. 왕조에서 왕조로, 문명에서 문명으로 세계가 바뀌어가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극복의 서사를 써내려가기에 더할나위 없이 적합한 시대다.
게임 내에선 아멘메세스의 반란이나 세트나크테의 반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다뤄지지 않는 대신 메르넵타 사망 후 정통성이 있는 지도자라면 누구나 파라오를 참칭해 내전이 발생하는 식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구현했다. 적통자인 세티, 반역자 아멘메세스, 제19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타우스레트, 제20왕조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같은 굵직한 인물은 등장하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의 가장 큰 재미인 '만약'이라는 가정을 충분히 살리고, 역사를 모르는 게이머도 즐길 수 있도록 큰 줄기만 남기고 정리한 의도가 엿보인다.
게이머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집트의 람세스, 세티, 타우스레트, 아멘메세스, 가나안의 이르수, 베이, 히타이트의 수필룰리우마, 쿠룬타 총 8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어 세력을 이끌어야 한다. 각 지도자는 고유 병사 및 건물,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신들의 은총을 받고, 선조들의 유산을 잇고, 역사적인 건축물을 세우는 위업을 달성하고, 이집트의 파라오, 혹은 히타이트의 대왕에 오르며 문명을 이끌어야 한다.
이번 게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내정이다. 단순히 건물을 짓고,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NPC 지도자와 협정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과 정치, 위업, 문명의 상태까지 조절할 수 있다. 나의 도시마다 신전과 성소를 세우고 어떤 신에게 더 많은 신앙을 봉헌할 것인지, 이번 솀수 호르 동안엔 어떤 음모에 집중할 것인지, 유산 보너스 조건을 만족 시키기 위해 병력이나 자원을 투자할지, 참칭자로서 내전에 도전해 파라오의 권능을 손에 넣을지 매 턴마다 나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잘 개발된 교단 중심부 정착지는 문명의 기둥으로서 번영을 불러올지, 붕괴를 불러올지 결정한다. 과거 토탈 워 게임들의 내정을 전쟁을 위한 준비 단계로 비약한다면 이번 게임의 내정은 게이머에 따라선 게임의 목적 그 자체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토탈 워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는 어떨까? 전쟁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칼, 창, 도끼, 둔기, 투석, 투창, 활, 전차 등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청동기 병사들의 격돌은 분명 다른 게임에서 느끼기 힘든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 또 지역마다 고용할 수 있는 현지인 부대와 자신이 속한 세력의 세력 부대는 내 지도자의 위치와 적의 병력 구성, 자원 상황 등 상황에 따라 병력을 조합할 수 있도록 전략과 전술의 폭을 넓혀준다. 다만 이 게임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토탈 워 시리즈의 최신작인 만큼 수많은 전작과 비교하게 된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시대와 세력이다. 많은 팬에게 사랑받은 토탈 워 게임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작품의 마크에 사용된 기병이나 화약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토탈 워: 엠파이어나 토탈 워: 나폴레옹처럼 소위 '전투뽕'을 채워주는 사례가 많았다. 많은 게이머가 보병이 버티고, 사격병이 견제하고, 기병이 진영을 붕괴시키는 물고 물리는 전략과 전술 속에서 전투의 재미를 찾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전투 병과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보병, 사격병, 전차병 3가지가 끝이다. 빠른 속도로 적진을 휘젓는 기병이나 거대한 발사체를 날리는 공성병기 등 지금까지 꾸준하게 등장한 병과 없이 전투가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투가 밋밋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동일 병과 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이 디자인과 능력치 조절 정도로 한정됐는데 등장 세력은 3가지에 그쳐 계속 같은 적과 싸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병종 문제의 경우 '토탈 워: 로마'나 '토탈 워: 트로이'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토탈 워: 로마의 경우 로마, 야만인, 그리스, 아프리카, 동방 등 많은 세력으로, 토탈 워: 트로이는 신화 유닛이라는 사후 지원을 통해 차별화를 만들었다. 특히 토탈 워: 트로이는 토탈 워: 파라오와 동시기를 다루고 있어 마찬가지로 전투가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출시 후 아마존 팩션의 기병과 신화 유닛으로 전투에 대한 평가가 조금 더 높아졌다. 토탈 워: 파라오 역시 세력 DLC가 3개 출시될 예정이니 전투의 평가가 바뀔 가능성은 충분히다.
토탈 워: 파라오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선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청동기 시대와 이집트 신왕국을 게임적 허용 내에서 잘 구현한 게임이다. 두 시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기존 토탈 워에서 보여준 시대뽕, 판도뽕, 기병뽕, 화약뽕, 판타지뽕 등 소위 '뽕'으로 불리는 매력을 느끼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신앙과 정치, 외교 등 내정을 통해 '이집트뽕'을 충분히 채워줬다. 마치 서로마처럼 수많은 참칭자를 물리치고 파라오에 등극해 바다 민족을 물리치는 문명의 수호자가 되는 뽕은 기존 토탈 워에서도 충분히 증명한 안정적인 맛의 뽕이었다.
그러나 역시 사가가 아닌 정규 시리즈로 출시된 만큼 규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집트와 히타이트, 가나안 3가지 세력 만으로 이 정도의 뽕을 채울 수 있다면 더 많은 세력이 등장했을 때 만족감은 어느 정도일까? 그렇기에 미케네와 키프로스 등 청동기 시대의 황혼기에 저물어간 많은 문명들이 있었더라면 내정과 전투 한층 다채로운 토탈 워가 되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지울 수 없었다.
토탈 워: 삼국 이후로 출시된 토탈 워: 트로이와 토탈 워: 파라오가 출시되었지만 아직 역사 토탈 워 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엔 다소 부족했다. 역사 토탈 워, 더 나아가 토탈 워 시리즈의 '미래'를 위해 토탈 워: 파라오의 DLC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