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는 뛰어난 게임성과 '한 턴만 더'를 외치게 하는 엄청난 몰입감으로 PC게이머들에게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게임으로 불린다.
흔히 문명과 같은 게임을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라 부르는데 사실 이런 류의 게임을 칭하는 말로 '4X'라는 말이 있다. 4X란 탐험(eXplore)과 확장(eXpand), 개척(eXploit), 섬멸(eXterminate)의 줄임말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공상과학)게임 '마스터오브오리온'에서 최초로 사용한 단어다. 이후 4X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 게임들은 대부분 우주를 배경으로 했고 마스터오브오리온은 이 장르의 기원으로 불렸다.
그리고 2016년 4X의 아버지 마스터오브오리온이 '월드오브탱크'로 유명한 밀리터리게임 명가 워게이밍을 통해 23년 만에 재탄생했다.
지난 26일 스팀(Steam)을 통해 한글화 출시된 이 게임은 기존 도트 그래픽을 풀 3D로 바꿔 광활한 우주 세계관을 잘 표현했으며 원작의 전략성을 현세대에 맞게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직 정식 출시가 아닌 얼리엑세스(사전출시) 버전이라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직접 플레이해 본 게임은 턴제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충분히 환호할 만큼 뛰어난 게임성과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 뛰어난 우주 세계관 표현, 완성도와 몰입도 발군
마스터오브오리온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뛰어난 세계관 표현이다. 최근 출시된 시드마이어의 '비욘드어스'가 행성 하나에 초점을 뒀다면 마스터오브오리온은 그보다 더 넓은 '항성계'를 기반으로 한 범우주적인 게임이라는 것.
플레이어는 총 9개의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해 은하계 최고의 종족이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기존 시뮬레이션 게임의 '타일' 대신 '왜곡점'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우주를 여행하는 느낌을 훨씬 극대화했다. 왜곡점은 일종의 우주선 항로 및 궤도로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크고 작은 행성과 항성계를 돌아다니며 개척 활동과 전투를 펼치게 된다.
타일 개념이 없다 보니 전체 지도를 봐도 영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전초 기지'라는 구조물을 짓지 않으면 다른 종족이 자유롭게 아군 지역을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우주라는 공간적 특징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 마스터오브오리온은 우주 공간을 가장 잘 표현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또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GNN 뉴스'라는 일종의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이 역시 마스터오브오리온의 백미다.
GNN 뉴스는 특정 종족이 행성을 많이 차지하거나 새로운 과학기술을 발견하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유저는 경쟁 종족의 발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수명이 지난 항성계의 폭발을 예고해주기도 하며 고대 문명 '오리온'의 출현과 해적의 습격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밖에 헐리우드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멋진 배경음악(BGM)과 종족의 개성을 잘 표현한 음성 더빙, 행성을 차지할 때 등장하는 시네마틱 영상 등은 게임의 완성도와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 완성도 높은 이벤트와 시네마틱 영상은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 커스터마이징이 돋보이는 전투, 전략성은 글쎄
게임에는 모든 종족을 처치하는 '군사 승리'와 투표를 통해 최고 통치자가 되는 '외교 승리', 과학 기술을 가장 빨리 발전시키는 '과학 승리',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경제 승리', 4개 항목을 모두 합산한 총점으로 계산한 '종합 점수' 총 5개의 승리 조건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종족 혹은 외계 생명체들과의 전투는 필수적이고 그만큼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함선 커스터마이징이 인상적인데 일반적인 '정찰선'부터 '순양함'과 '구축함', '전함' 등 전투 우주선까지 모든 우주선의 외형과 무기, 파츠 등을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핵탄두를 많이 탑재해 한 번에 많은 대미지를 줄 것인지 아니면 레이저포로 지속적인 공격을 할 것인지, 추가 방어막을 씌울 것인지 갑판의 성능을 높일 것인지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어려운 상대도 쉽게 처치할 수 있다.
▲ 무기와 갑판 등 함선 커스터마이징은 꽤 인상적이다.
이렇게 구성한 함선으로 플레이어는 상대 함선 혹은 행성 수비군과 전투를 펼치게 된다. 전투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이동할 위치나 공격할 적을 타겟팅하는 것은 물론 최소/최대 사거리를 지정해 범위에 들어온 적을 자동으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함선에 장착된 무기를 직접 선택해 공격할 수 없다는 것과 종류에 비해 실제 전투 화면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공격이 이뤄진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운석과 같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상대 함선에 접근하려는 함선의 특성 때문에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전은 거의 불가능했다.
▲ 전략적인 움직임이 가능하지만 컨트롤에 비해 AI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 마스터오브오리온의 참 재미는 내정과 외교
전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사실 마스터오브오리온의 진정한 묘미는 '내정'과 '외교'에 있다.
내정은 크게 '연구'와 '생산', '인구' 세 가지로 나뉘는데 과학 기술을 빨리 올려 과학 승리를 목표로 한다면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좋고 함선이나 행성 주변의 시설물을 빨리 건설하고 싶다면 생산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인구에 집중하면 행성의 노동력이 높아져 연구와 생산에 더 많은 인원을 배당할 수 있고 세금 수익도 늘어나게 되지만 유지 보수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 행성의 환경에 따라 내정 방향을 달리 해야 하는데 물과 산소가 풍부한 지구형 행성에서는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 초기에 빌드를 올리기 좋지만 환경 오염과 세금을 신경을 써야 하며 가스형 행성은 초기에는 사람이 살기 부적합하거나 많은 광물과 특수 자원이 있어 자원 수급처로 사용하기 좋다.
이렇듯 플레이어는 승리 목표를 위해 발전할 방향과 행성을 환경을 고려해 전략적인 내정을 펼쳐야 하며 이를 통해 4X 게임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행성 관리와 과학 기술 연구는 게임의 가장 핵심적인 재미 요소다.
외교 시스템에서는 종족별 성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스터오브오리온에 등장하는 9개의 종족은 고유의 성향과 특성이 있고 이는 외교를 통해 잘 반영돼 있다.
'불라시'와 '샤크라' 같은 호전적인 종족들은 대부분 협정보다는 전투를 중시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전쟁을 걸어오기도 하며 우호적인 관계라고 해도 의장 선출에 투표권을 행사하거나 식민지 확장을 멈추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반대로 '인간'이나 '사일론' 같은 평화적인 종족들은 먼저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이상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우호적인 관계일 때는 동맹이나 지도 공유, 물자 교환 등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플레이어는 성가신 종족을 동맹을 통해 대신 처리하거나 두 종족을 이간질해 어부지리를 얻는 등 다양한 이득을 취할 수 있어 승리 목표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 종족별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외교에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 우주판 문명 가능성 충분, 긴장감과 콘텐츠 부족 아쉬워
아직 많은 시간을 플레이해보진 못했지만 마스터오브오리온은 왜 이 게임이 4X 장르의 아버지로 불리는지를 알게 해준 수작이었다. 뛰어난 세계관을 통한 몰입도와 종족 및 행성을 고려한 전략적인 내정과 외교, 전투 등은 '한 턴만 더'를 외치게 만드는 문명 시리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하지만 마스터오브오리온이 문명 시리즈만큼 인기를 끌거나 혹은 그 이상을 바라보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긴장감'이 적다는 것은 게임의 가장 큰 단점으로 작용하는데 이유는 게임이 너무 플레이어가 의도하고 예상한 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즉 게임의 변수로 작용하는 특정 이벤트나 관련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
▲ 게임 도중 발생하는 이벤트는 수도 적을 뿐더러 너무 뻔해 예측하기 쉽다.
사실 기자는 게임에서 갑자기 블랙홀이 등장해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던가 우주선이 갑자기 통제 불능이 돼 궤도를 이탈하는 등의 다이나믹한 이벤트를 기대했다.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이벤트는 자원 이나 함선 획득, 연구 발견 등 몇 가지 패턴으로 정해져있으며 가장 큰 이벤트라 할 수 있는 행성 폭발도 GNN 뉴스를 통해 미리 짐작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또 초반에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종족별 성향도 게임을 진행할수록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호전적인 종족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고 평화적인 종족은 성향에 반하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 문명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패왕 간디'와 같은 의외성을 게임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 종족별 성향과 특징은 이 게임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얼리엑세스(사전출시) 버전이라 콘텐츠와 일부 시스템이 빠져있기 때문에 마스터오브오리온이 확실하게 어떤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몇 가지 개선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추후 정식 버전과 업데이트로 개선점을 고쳐간다면 마스터오브오리온은 충분히 문명 시리즈만큼의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게임이다.
평소 전략 시뮬레이션게임과 SF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번 기회에 마스터오브오리온을 꼭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이동준 기자 rebelle@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