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인들에게 엘엔케이로직코리아(대표 남택원, 이하 엘엔케이)에 대한 말이 나오면 항상 '괴짜 회사'라고 말하곤 한다.
괴짜(=괴상한 짓을 잘하는 사람)라 부르는 이유는 회사의 행보가 일반적인 게임 회사랑은 다르기 때문.
업계를 선도할만한 대작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지만 유행을 쫓아 급급하게 게임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만들고 싶은 게임을 몇 년에 걸쳐 묵묵히 만들고 조용히 내놓을 뿐이다. 크리에이티브(창조적) 사고 방식이 중시되는 게임업계에서 '괴짜'는 남들과 다른 행보로 눈길을 끄는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있어 일상에서 쓰이는 표현 만큼 부정적이진 않다.
◆ 괴짜회사의 괴짜 게임
누군가 기자에게 '엘엔케이 게임은 누구에게나 재미있고 성공 가능성 높은 게임인가?'라고 묻는다면 손사래치며 아니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유행보다 그들만의 독특한 게임으로 승부했다. 변신 시스템을 정면으로 내세운 '붉은보석'이 그랬고 RPG에 슈팅을 접목한 '거울전쟁'이 그랬다.
기자가 생각하는 엘엔케이 게임들은 항상 '비주류'에 가까웠다.
흔히들 게임을 '서브컬처(사회의 지배적 문화가 아닌 주변적 계층의 하위문화)'라고 말하는데 엘엔케이의 게임은 서브컬처중에서도 서브컬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로도스도전기... 명실상부 당대 최강의 IP
'로도스도전기'는 30대 중반~40대 초반에 판타지 좀 아는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알 만큼 유명한 IP(지적재산권)다. 1987년 일본 소설가 미즈노 료의 소설로 1990년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함께 판타지 소설의 양대 산맥이라 불렸다.
지금이야 영화 덕분에 인지도가 뒤바꼈지만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던 로도스도전기의 인지도가 훨씬 높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긴 귀를 가진 엘프'는 로도스도전기의 '디드리트'가 최초였고 '드래곤라자', '세월의 돌'같은 한국형 판타지 소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작품이라고 하면 이 소설이 당시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졌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괴짜와 명작 소설이 만나 탄생한 아저씨 게임
괴짜 회사가 당대 최강의 판타지 IP와 합방해 온라인 게임을 잉태했으니 그게 바로 오늘의 주제인 '로도스도전기온라인' 되시겠다. 3040세대를 겨냥해 출시된 게임은 '역시 엘엔케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게임이었다.
쿼터뷰와 핵앤슬래시 중심의 2D게임. 온라인 게임 태동기를 이끌어간 개국공신이지만 지금은 극히 일부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의 그 게임 말이다. 2004년 와우를 기점으로 RPG 대세는 3D, 퀘스트 중심의 육성, 역할 분담에 의한 레이드 중심으로 흘러갔으니 유행은 애당초 지나간 게임이다.
게임의 주 소비층인 1020세대들은 핵앤슬래시 게임을 즐겨본 적조차 없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 그들이 이 게임에 재미를 느낄 확률도 꽤나 낮다고 볼 수 있다.
이정도면 게임의 방향이 '로도스도전기 소설 혹은 핵앤슬래시 게임을 추억하는 아저씨들만 플레이하세요'라는걸 알 수 있다.
게임은 캐릭터 생성부터 사냥까지 철저히 핵앤슬래시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데 커스터마이징 때문에 몇 시간씩 캐릭터를 생성하거나 복잡한 마을을 뛰어다니며 지리를 익히는 불편함도 없다. 게임시작 버튼을 누른 후 1분이면 캐릭터를 만들고 3분이면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다.
누르는 버튼의 90%가 마우스 왼쪽 버튼인 조작법도 그렇고 스토리에 대한 연관성보다 보상에 치중해 무작정 캐릭터를 부려먹는 다소 황당한 퀘스트도 여전하다. 물론 메인 퀘스트를 통해 원작 소설의 스토리 라인이 들어갔지만 당시 게임들이 그러하듯 비중은 크지 않은 편이다.
◆ 아저씨 관점에서 보면 잘 만든 게임
그럼 핵앤슬래시 게임으로서의 로도스도전기온라인은 어떤 게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3040 아저씨들을 위한 추억의 게임' 관점으로 접근해보면 로도스도전기는 상당히 잘 만든 수작이다. 애초에 엘엔케이도 주타겟은 3040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냥 위주의 성장, 콘트롤보다 레벨과 장비로 강해지는 시스템, 사냥터에서 직접 먹는 득템 등 옛날 게임의 추억이 잘 녹아있다. 그야말로 사냥 노가다로 레벨업하는 재미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거기에 음악, 타격감, 조작감 같은 기본 시스템은 옛 방식을 고수했지만 높아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보다 편리하게 변했다. 즉 빈티지지만 보다 편하고 세련된 '진보한 빈티지'를 표방한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복잡해지는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온라인 게임계에서 모바일로 밀려난 아저씨들을 PC앞에 앉게 하기 충분한 게임이다. 물론 여기에 1020세대에게 어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 할 사람'만'하는 게임. 하지만 그들에게는 재미있을 게임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태어난지도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동안 온라인 게임은 장르도 유저층도 처음과 비교 할 수 없게 다양해졌다. 이런 문화는 소위 말하는 '주류'와 '비주류'가 필연적으로 생기는데 이는 문화의 다양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로도스도전기온라인은 딱 그런 게임이다. 한 달 넘게 똑같은 사냥터에 있지만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이 즐거운 게임, 즉석 복권 긁는 마음으로 몬스터를 잡는 게임, 사냥이 지겨울 때 길드 사람들과 하는 시시콜콜한 얘기가 즐거운 게임 말이다.
이런 게임에 추억이 있고 다시 한 번 그 느끼고 싶은 아저씨가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배향훈 기자 tesse@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