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보는 건지 영화를 플레이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임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영화가 게임으로,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모습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니드포스피드' '툼레이더' 등 게임과 영화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점차 늘면서 두 장르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지는 분위기다.
언제가 그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수준에 이른다면 게임과 영화를 융합한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지난 20일 국내 상륙한 플레이스테이션4 신작 '디오더: 1886'은 이 같은 망상에 확신과 기대를 심어줬다.
◆ 영화 못지 않은 비주얼
'디오더: 1886'은 플레이스테이션(PS) 진영의 대표 타이틀인 '갓오브워' 시리즈를 개발한 레디앳던의 신작으로 출시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신작을 접한 이용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수준 높은 그래픽을 보고 엄지를 치켜세운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나친 컷신으로 인해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실제로 비주얼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적이고 세밀한 시각적 연출은 여느 영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특히 비중 높은 컷신과 레터박스(화면 상하에 2개의 검은 띠가 생기는 것),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 등 영화적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게임 내 가득했다. 개발사가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게임을 만든 것처럼 여겨졌다.
수려한 영상미로 그려진 게임 속 세계는 잠시 현실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19세기 영국 런던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탓이다. 또한 배경을 이루는 수많은 건물과 거리, 각종 오브젝트들은 시각적 생동감을 더했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영화 못지 않은 세심함도 엿볼 수 있다. 길바닥에 고인 물과 액자 속 그림, 가판대 위에 진열된 과일 등 그냥 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조차도 세밀하게 표현됐다. 개발자의 손길이 게임 곳곳에 닿아 있었다.
◆ 속편 제작 위한 노림수?
디오더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살인마 '잭 더 리퍼', '늑대인간(라이칸)' 등 다양한 소재를 혼합하고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게임은 일각에서 스토리가 지루하고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고전 장르의 컨벤션(익숙한 요소들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영화방식)을 끌어와 버무리는 식으로 영화적 요소를 한껏 살렸다. 또한 친숙한 세계관으로 채워진 스토리 라인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용 이해를 수월케 했다.
하지만 불완전한 끝맺음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게임 초·중반 주인공 갈라하드 경에 불어닥치는 시련과 배신을 당하는 과정은 잘 묘사됐으나 복수로 귀결되는 후반부는 마감에 쫓긴 기자마냥 서둘러 매듭짓는 모습이었다.
◆ 게임플레이 보다 보는 재미에 치중
보는 재미에 너무 치중한 탓일까. 디오더는 정작 플레이하는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길고 자주 등장하는 컷신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무릇 게임플레이 중간에 등장하는 컷신은 빠르게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디오더의 컷신은 건너뛰기가 불가능해 울며 겨자먹기로 끝까지 감상해야만 했다.
컷신이 나오는 동안 잠깐 한눈을 파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QTE(Quick Time Event) 시스템이 언제 가동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QTE는 타이밍에 맞춰 특정 버튼을 누르는 조작 방식으로 게임 내 극적인 연출과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갖고 있다. 하지만 디오더의 경우 QTE를 지나치게 남발해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게임플레이와 컷신이 자연스럽게 전환돼 몰입감을 방해하지 않았다. 디오더는 게임플레이와 컷신이 거의 흡사해 감탄을 자아냈다.
◆ 스팀펑크와 영웅 영화 매력에 푹 빠져
디오더는 스팀펑크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강추할 만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의 기술력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무기와 장치들이 대거 등장한다. 근대식 권총은 물론 '플라스마 라이플' '로켓 발사기' 등 상상력이 돋보이는 다양한 무기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에디슨에 가려진 비운의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게임 내 무기를 만드는 과학자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교류발전기, 유도전동기 등을 발명해 현대 전력 시스템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테슬라를 만나기 위해 내려간 지하 실험실은 할리우드 영웅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등 영웅 영화는 보통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다양한 무기 및 기술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또한 해당 무기들은 향후 전투에서 영웅들이 위기를 벗어나거나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이용된다.
디오더 역시 주인공 갈라하드 경이 테슬라의 최신 장비를 점검하며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한다.
◆ 영화 아닌 게임이기에 아쉬움 남아
총 플레이타임은 약 6시간으로 그리 길지 않았다. 엔딩과 마주했을 때 '벌써 끝난 거야?'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다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 같은 허무함은 향후 속편을 통해 채워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결론적으로 디오더는 큰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주인공 중심의 철저한 선형적 흐름은 기존 오픈월드 게임과 달리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개발사가 정해놓은 방향대로 움직이면 어느덧 엔딩에 도달한다. 마치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오더는 영화가 아닌 게임이다. 보는 맛은 물론 플레이하는 재미까지 더했다면 보다 완성도 있는 대작 게임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지웅 기자 csage82@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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