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니콘에 있어 다소 불운한 한 해였다. 니콘은 최고급 DSLR 카메라인 D4와 D800을 제외한 전 모델을 세대교체하고 미러리스 카메라 브랜드 '니콘1(Nikon 1)'의 신제품도 3종이나 내놓았다. 하지만 니콘1 신제품은 소니가 휘어잡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다 지난해부터 슬슬 불거지기 시작했던 'D600 셔터막 갈림 현상(일명 갈갈이 현상)'은 니콘의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사실 인기 있는 DSLR 카메라 대부분은 한두 번씩 품질이나 결함 논란이 있었지만, D600 셔터막 갈림 현상은 소비자들이 집단 행동에 나설 정도로 파장이 컸다. 결국 니콘 측이 소비자 대표와 대담을 나누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그럼에도 기자는 니콘을 성토하는 소비자의 메일을 아직도 받고 있다)
니콘이 2013년의 마지막 타자로 선보인 Df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DSLR카메라다. 올해 초 니콘 측 담당자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니콘의 96년 역사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언급하며, 소비자들에게 니콘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니콘이 갈고 닦은 DSLR 기반에 과거의 향수를 눌러담은 Df야말로 그 담당자의 바람에 가장 가까운 제품이 아닌가 싶다.
니콘 Df는 이제껏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자랑했던 신기술 대신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친근함을 내세웠다. 제조사의 의도와는 무관하지만 한동안 논란에 시달렸던 유명인사가 공백기를 가지면서 쉬어가는 의미로 내놓는 수필집 같은 느낌이 든다.
Df는 니콘이 과거에 내놓았던 필름 SLR 카메라 'FM' 시리즈를 닮았다. DSLR 카메라로 세대교체된 이후에도 니콘 FM 카메라를 놓지 못하며 니콘이 FM을 닮은 DSLR 카메라를 내주기를 기대하던 사용자가 많았다. 과거의 아날로그 카메라 형태의 디자인을 적용한 미러리스 카메라는 많았지만, DSLR 카메라로는 처음이다.
오른손에 잡히는 그립부와 뒷면의 큼직한 화면을 제외하면 영락없이 FM의 디지털 버전이다. 다만 DSLR 카메라 중에서도 덩치가 큰 풀프레임 규격을 적용하다 보니 크고 둔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풀프레임 DSLR 카메라 중에서는 작고 가벼운 편이다.
니콘은 DSLR용 렌즈로 FX와 DX라는 두 가지 렌즈 규격을 보유하고 있다. DX는 풀프레임보다 작은 APS-C 센서 규격에 대응하기 때문에 작고 가볍지만 FX는 풀프레임에 대응하는 규격이라 대부분 크고 무겁다.
크고 무거운 렌즈를 카메라에 물려 사용하려면 카메라의 그립감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DSLR 카메라용 세로그립을 별도로 구매해 끼우는 사용자가 많다. 반면 Df는 그립부가 니콘 DSLR카메라 중 작고 얇은 편인 데다 전용 세로그립도 없다. 크고 무거운 렌즈를 물리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니콘은 Df를 출시하면서 50mm F1.8G 렌즈를 스페셜 버전으로 손질해 내놓았다. 이 스페셜 렌즈는 크기나 화질이 기존 50mm 렌즈와 같지만 Df에 맞춰 디자인을 새로 했다. 실제로 Df에 여러 렌즈를 결합해 봤지만 50mm 스페셜 렌즈만큼 Df에 잘 어울리는 렌즈는 없었다. 작고 무게도 가벼운 편이라 Df의 취약한 그립감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다.
Df는 기존 니콘 DSLR 카메라와 조작 방식이 약간 다르다. 감도와 셔터 속도, 노출 조절용 다이얼이 상단에 달렸다. 이러한 조작 방식은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에 쓰이던 방식이다. 후지필름과 라이카의 경우 클래식풍 디자인의 고급 기종을 출시하면서 이 방식을 적용했다.
모드 다이얼은 오른쪽 구석에 가장 작은 크기로 달렸다. 촬영 모드를 변경하려면 다이얼을 들어서 돌려야 한다. 이러한 방식도 아날로그 카메라에서 가져온 것이다.
감도, 셔터 속도, 노출 조절을 제외하면 나머지 조작 방식은 기존 니콘 DSLR 카메라와 같다. 따라서 Df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상단 액정 표시창이 작아서 설정 기능을 바꿀 때마다 뒷면의 큰 화면을 켜야 했다. DF는 배터리 용량도 작아서 전원 소모 시간이 빠른 편이다.
Df는 동영상 촬영 기능이 없다. 니콘이 사진에 집중한다는 콘셉트를 정함에 따라 의도적으로 뺀 것이다. DSLR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을 즐기는 소비자라면 실망할 만한 부분이다.
Df에 50mm 스페셜 렌즈를 물린 채 한나절 동안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보급형 DSLR 카메라에 번들 렌즈 하나 물린 것처럼 작고 가벼워 오랫동안 들고 다녀도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이 정도 크기와 무게에 멋진 디자인과 풀프레임 규격을 담았다는 것은 카메라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Df와 50mm 스페셜 렌즈 조합은 뛰어나다. 단초점 렌즈답게 촘촘한 디테일 표현이 일품이고, 중앙부 뿐 아니라 주변부 화질 저하도 거의 느낄 수 없다. 색감이 맑고 선명하며 그라데이션이 매우 부드럽다. 특히 은색 등 광택 컬러를 얼룩 없이 깔끔하게 표현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Df의 가격은 바디 기준으로 328만원, 50mm 스페셜 렌즈를 포함하면 358만원이다. 5년 전이라면 모를까, 2013년에 동영상을 찍을 수 없는 풀프레임 카메라를 300만원 넘게 주고 사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이 정도 가격이면 차라리 저렴한 풀프레임 카메라에 좋은 렌즈 몇 개를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포지션도 애매하다. Df는 세로그립을 달 수 없고 배터리 사용시간이 짧아 전문가가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초보자나 입문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도 아니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돈 많은 마니아나 중동 갑부 정도가 Df의 가장 적합한 타겟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금색이 추가된다면 중국 부호들에게도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된다. 니콘은 낭만과 감성을 Df의 장점으로 삼고 싶었겠지만, Df의 자비 없는 가격에는 낭만이나 감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 구매지수: 80/100
Good: 매력적인 디자인과 화질. 예산만 넉넉하다면 구매할 만하다
Bad: 300만원짜리 카메라에 동영상 기능이 없다. 2013년도 카메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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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조선 정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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