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 때 소비자가 가장 많이 따지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가격 대 성능비'다. 가격대 성능비는 사용한 금액에 대한 성능의 비율을 나타내는 말로 줄여서 '가성비'라 불리기도 한다. 흔히 통하는 '가성비가 좋다'는 표현은 가격이 싸면서도 성능이나 품질이 가장 뛰어난 제품을 뜻한다.
가격 대 성능비는 상대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라 무조건 싼 제품과는 다르다. 소비자에 따라서는 20만 원대 넥서스7보다 70~80만 원대 갤럭시 노트의 가격 대 성능비가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가격 대 성능비가 좋다고 평가받는 제품은 가격대가 중저가에 속하면서 성능은 상위급인 제품이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격 대 성능비가 좋다고 무조건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명품 브랜드를 달고 나온 제품은 같은 기능을 가진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인기가 많다. 이러한 제품들은 실속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나 디자인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가격 대 성능비는 최악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IT 기기들을 알아보자.
베오플레이 H6는 B&O(Bang&Olufsen)가 27년 만에 출시한 헤드폰이다. 고가 AV 브랜드로 알려진 B&O 제품답게 가격은 비싸다. 물론 수백만 원대 제품이 주류인 B&O에서 60만 원대라는 가격은 평범한 수준일 수도 있다. 베오플레이 H6의 절반 가격인 30만 원대면 비슷하거나 더 좋은 제품을 고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군더더기가 없고 우아한 디자인과 고급 소재는 '역시 B&O'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아이리버가 만든 고급 휴대용 오디오 브랜드 '아스텔앤컨(Astell&Kern)'은 음악 스튜디오에서 뽑아낸 음질을 그대로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요즘 나오는 디지털 음원은 저가형 오디오에서 MP3 규격으로 재생하는 것을 고려해 원래 음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아스텔앤컨은 철저히 고음질 음원 재생을 고려해 고음질 규격인 MQS를 지원하며 하이파이에 맞춰 설계했다. 60~140만 원대의 비싼 가격대에도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구상에서 휴대전화를 가장 비싸게 팔아먹는 회사는?" 이 질문에 애플이나 삼성전자를 손꼽는 사용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한때 노키아의 자회사이기도 했던 '베르투(Vertu)'다. 비싼 걸로 유명하다 보니 국내에 런칭한 브랜드가 아님에도 베르투를 아는 사용자가 있을 정도다. 올해 초 나온 'Vertu Ti'는 3.7인치 화면과 듀얼(2)코어 프로세서를 단 3G 스마트폰이다. 스펙은 2년 전 나왔던 갤럭시S2보다 못한데 가격은 국내 환율로 1천2백만 원에서 최고 2천만 원까지다.
필름카메라 시절부터 유명했던 라이카(Leica)는 디지털카메라 분야에서도 명품 마케팅을 구사해 왔다. 라이카 말고도 유명한 카메라 브랜드는 많았지만 라이카처럼 살아남은 브랜드는 드물다. 라이카가 현재 출시하는 제품 중 콤팩트 카메라군은 파나소닉의 제품을 약간 손질해 새로 내놓은 것이다. 라이카 D-lux6는 파나소닉 LX7과 거의 비슷하지만 가격은 2배 가량 더 비싸다. 그럼에도 라이카의 브랜드 가치와 특유의 색감으로 마니아 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라이카를 보고 배운 것일까? 중형 카메라 업체인 핫셀블라드(Hasselblad)도 최근 라이카와 같은 방식으로 신제품을 내놓았다. 소니 RX100을 약간 손질한 '스텔라(Stellar)'는 원목으로 만든 그립부와 색상을 제외하면 영락없이 RX100이다. 가격은 200만 원대. 현재 RX100의 가격을 고려하면 3배 이상 더 비싸다.
리뷰조선 정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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