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색 강한 3D 전략 게임
배틀렐름은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공작왕' '수병위인풍첩' 등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배틀렐름의 시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처음에 나오는 주인공이 겐지(Kenji)다. 겐지는 일본 고전 문학의 최고로 손꼽히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주인공으로, 원래 신분은 황태자였지만 실권을 잃고 신민의 신분으로 강등돼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귀족으로 설정돼 있다. 총 50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이 소설은 일본 고전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꼭 관련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설 '미야모도 무사시' '대망' '다이꼬' 등의 일본 역사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게임은 전체적으로 일색이 강하다. 사무라이들과 요마들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전국시대로 간 공작왕이 부제로 딱 어울릴 듯도 하다. 겐지의 다이어리가 바로 스토리 모드인데 연출력도 상당하다. 3D의 장점인 확대, 축소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게임의 스토리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복잡미묘한 느낌의 자원, 쌀과 물
배틀렐름에서 필자에게 가장 와 닿은 부분은 자원과 병사를 훈련시키는 방식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하자면 이 게임에서는 유닛을 생산하지 않는다. 대신 저절로 만들어진다. 그것도 유닛이 적을 때는 빠르게, 많은 때는 천천히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게이머는 '미스(Myth)'를 플레이할 때처럼 오직 전략만을 생각해서 싸우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게이머가 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유닛의 수와 자원관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게임 상에서 사용되는 자원은 쌀과 물, 단 2가지다. 쌀은 논에서 무제한적으로 거둬들일 수가 있는데 한동안 거둬들이면 더 이상 생산할 수가 없다. 이때 물이 필요하다. 논에 물을 줘서 쌀을 다시 재배해 거둬들이는 것이다. 물의 경우 일꾼을 시켜 계속 길어오면 되지만 물과 쌀의 비율을 얼마만큼 잘 맞춰 주는지가 게임의 핵심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주민들의 수에 따라 물과 쌀의 최고치가 정해지는데 최고치까지 다 채우고 나면 일꾼들은 바닥에 드러눕거나 빈둥빈둥 거리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기존 전략 게임들에서 지루하고 재미없기만 했던 일꾼을 배틀렐름은 가장 재미있게 다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일꾼은 소위 밥통이라고 하는 집을 지어놓으면 저절로 나오므로 유닛이 나올 때마다 재빨리 일을 시켜야 손해보는 일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꾼을 훈련시켜 병사로
그렇다면 병사는 어떻게 생산할까? 다른 게임에서처럼 공장에서 병사들을 푹푹 찍어낼 수는 없다. 방법은 오직 일꾼을 훈련시켜 병사로 만드는 것뿐이다. 병영을 지어놓고 집을 계속 지어 일꾼을 늘리면서 병사로 훈련시켜야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기존 게임들과 달라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일꾼을 병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원 채취 상황에 맞춰 다른 건물에서 훈련을 시키고 병사들 역시 또 다른 건물에서 재훈련을 시키면서 새로운 유닛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생산하는 것에 따라서 보유병력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실시간으로 계속 유닛의 밸런스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게이머의 손을 상당히 바쁘게 한다.
한가지 독특한 점은 게임 내에 말이 등장하는데, 이 야생마를 일꾼들을 이용해 길들이고 그렇게 길들인 말을 유닛들이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일꾼들이 말을 타게 되면 한꺼번에 더 많은 자원을 운반할 수 있고 이동속도도 상당히 빨라진다. 전투 병력 역시 말을 타면 더욱 빨라진 이동속도와 향상된 공격력을 보여준다. 재미난 점은 종족 중 하나인 울프 클랜의 경우엔 말을 타고 다니지 않고 늑대들의 먹이로 준다는 것. 게임의 종족은 드래곤, 서펀트, 로터스, 울프 등 총 4개의 클랜으로 나눠지는데 이처럼 게임은 동물의 활용에까지 클랜별로 조금씩 차이을 두고 있다. 각각의 클랜에는 12개의 유닛과 다양한 건물이 있고 종족간의 밸런스 조절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
▶화려한 동작, 정신 없는 난전
배틀렐름에 등장하는 유닛들의 동작은 상당히 정교하다. 일꾼들이 낫질할 때 풀이 베어지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정도이다. 히어로 급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무공은 무협영화를 보는 듯 하다. 등에서 긴칼을 꺼내 상하좌우로 휘두르고 찌르며 점프해서 내려치는 등 다양한 동작을 보여준다.
큼직큼직한 유닛들은 정신 없는 난전을 펼치기 일쑤인데, 3D에 유닛들의 동작도 상당히 다양해 아군 적군이 섞이면 정신이 없어진다. 더군다나 포메이션도 지원하지 않아 제어가 상당히 힘들다.
인공지능도 꽤 문제다. 배틀렐름의 모든 유닛은 스태미나 게이지를 갖고 있는데 통상의 이동속도에서는 소모되지 않고 달려갈 때만 소모된다. 하지만 이 게임의 인공지능은 주변에 적이 나타나면 병사건 일꾼이건 모조리 그쪽으로 달려가 전투를 벌인다. 스태미나가 떨어졌을 경우에는 상당히 느릿느릿 걸어가서 적을 상대하게 되는데 체력회복을 위해서 유닛을 쉬게 하는 일 같은 것은 상당히 힘들다. 때문에 전투시 세세한 전술을 사용하기가 너무 힘들다. 적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면 적이 유닛들의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피신시켜야만 한다.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을 이런 인공지능은 게임의 재미를 상당히 떨어뜨린다. 결국 비슷한 실력의 게이머들일 경우 게임은 점점 길어지게 되며 인해전술이야말로 배틀렐름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되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그래픽과 음악
각종 3D 효과로 어우러진 그래픽은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제작사는 게임 상에 자연환경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데, 날씨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비가 내리면 적들에게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집의 불도 꺼지며 논에 물을 줄 필요도 없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풀숲을 헤치며 유닛들이 움직이면 이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세심함까지 보여준다. 자유롭지는 않지만 탑뷰 방식이나 비스듬한 45도 각도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광원효과나 물의 표현들도 첫 작품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게임 속 음악은 거의 대부분 일본 전통 음악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세히 들어봐야 할 것은 음향인데 효과음들의 질이 상당히 좋다. 성우들도 상당한 수준이고 말발굽 소리, 칼 부딪치는 소리들도 상당한 수준이다.
시스템, 그래픽 등을 통틀어 대부분이 만족스럽지만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인공지능 때문에 이 게임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스타크래프트가 아직까지 게이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일같이 새로운 전략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게이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얼마나 더 기발하고 재미있는 전략을 찾아내는가... 그것은 바로 게이머들이 풀어줘야 할 숙제인 것이다.
장르 | 전략 시뮬레이션 |
평점 | 4 |
장점 | 새로운 자원 개념. 화려한 3D 그래픽과 그에 걸맞는 게임 시스템 |
단점 | 인공지능이 단조로워 효과적인 전략 구사가 힘들다 |
권장사양 | P3-750, 128 |
제작/유통 | 리퀴드엔터테인먼트/조이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