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시어(Far Seer)'가 '파이오니어(Pioneer)'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네오위즈의 행보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다.
조용히, 묵묵하게 진행됐던 인디 게임 발굴, 글로벌 시장에의 과감한 도전과 성공 등 이미 네오위즈를 말하는 수식어는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 있을 정도.
네오위즈의 과감한 선택은 이전까지 먼 곳을 내다보는 '선견자'처럼 '가능성 있는 게임을 골라잡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직접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게임 개발사'가 되어 '개척자'로 발돋움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 독보적인 수준으로 성장 거듭한 운영의 질
심도 있는 전략 플레이가 장점으로 독특한 게임성이 인정 받았던 네오위즈의 '브라운더스트' 역시 여느 모바일 게임이 그렇듯이 서비스 장기화에 이르러 많은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네오위즈는 단순히 게임을 흐지부지 방치해두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을 거쳐 남아 있는 유저들을 확실하게 붙들어놓았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들의 음해성 밈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브더갓겜콘'과 같이 게임의 인지도를 널리 알리는 충성도 높은 영업사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브라운더스트는 라이브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고 오프라인 전환이 발표된 상태지만 이용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메인 스토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한편 팬키트 배포를 통해 이용자들에 대한 예의 바른 작별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아이돌리 프라이드'의 경우 동시기 다른 게임사들이 해외 인기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과정에서 운영 미숙 파동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관람 최적화를 위한 '자막 ON/OFF', 1대1 PvP 'W그랑프리', 한국 한정 캐릭터 '[설레는 휴가의 꿈], [너와 함께 새해 첫 일출] 나가세 마나'를 출시하는 등 훨씬 나아진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이용자들이 불만을 품고 게임사로 시위 트럭을 보내는 시류 속에서, 네오위즈는 판교 내에서 처음으로 감사를 표하는 커피 트럭을 받는 기분 좋은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다.
■ 독립독행의 수작을 골라잡는 선구안
지금의 네오위즈를 보는 이용자들의 주된 시선은 S급 인디게임 감별사다.
다른 게임사들도 인디게임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며 자사 플랫폼으로 론칭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네오위즈의 경우에는 인디게임이라면 일단 예외 없이 분별 없이 그냥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한 완성도의 작품을 골라잡는 소위 말하는 '선구안'이 좋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독립독행으로 제작한 대다수의 인디게임이 그렇듯이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작품이란 존재할 수 없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스컬: 더 히어로슬레이어', '산나비'조차 자잘한 단점은 있다.
하지만 플레이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장점들이 이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수준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해당 게임들을 수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타율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 정도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수요와 충성고객층이 확실한 2D 액션과 플랫포머 쪽으로 장르가 편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힐링 어드벤처 작품인 '아카(Aka)'나 퍼즐 중심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인 '안녕 서울: 이태원편'을 론칭하면서 다각화 또한 노리고 있기 때문에 그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라 볼 수 있다.
■ 한발 빠른 그리고 과감한 콘솔 시장 개척
한국은 게임센터(오락실 문화)가 진작 사장세에 들어섰기 때문에 체감형 컨트롤러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리듬 액션 게임이 크게 흥행하기 쉬운 시장이 아니었고 실제로 많은 리듬 액션 게임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라져간 바 있다.
디제이맥스 시리즈로 널리 이름을 알렸던 펜타비전 또한 네오위즈 인수 후 야침차게 내놓은 테크니카 2의 실패로 인해 팀이 해체되고 그렇게 수명이 다한 콘텐츠로 서서히 잊혀져가는 수순을 밟는 듯 싶었으나, 로키 스튜디오로 팀을 재편하고 오히려 거치형 콘솔 게임인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로 되살아나며 반등을 맞이했다.
심지어 이전 시리즈의 모든 곡을 준수한 가성비의 DLC로 전부 만나볼 수 있게 하는 등 팬서비스와 사후지원 또한 충실한 편인데, PC 이식판인 '리스펙트 V'까지 내놓으며 호성적으로 그 개발력을 증명하고 있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게임을 익숙하지 않은 환경인 콘솔 플랫폼에서 멋지게 완성해 낸 이 기획과 결정은 향후 'P의 거짓'과 같은 대작 콘솔 게임 개발력의 기틀이 되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다.
실제로 P의 거짓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게임 완성도와 훌륭한 최적화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정통파 소울라이크 콘솔 게임의 좋은 선례가 됐으며, 기존 작품들의 특장점을 따라 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입문자 친화적인 레벨 디자인과 고유 시스템을 통해 독자노선을 구축, 정식 발매 이후로도 꾸준히 평가가 상승하는 중이다.
■ 앞으로의 네오위즈는?
최근에는 자회사 파우게임즈를 통해 통해 팔콤 영웅전설의 3, 4, 5편을 아우르는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를 내놓은 바 있다. IP 계약 체결 후 1년 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개발 기간 내에서도 캐릭터 중심 서사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의 조화 덕분에 팬덤에서는 완성도 높은 리메이크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 파트너십으로 CDPR 출신 개발자들이 뭉친 신생 기업 '블랭크'를 포함한 전도유망한 게임사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P의 거짓을 개발한 라운드 8 스튜디오는 PC-콘솔을 중심으로 한 신규 IP 발굴과 함께 라이프 시뮬레이션, 서바이벌 액션 어드벤처 신작 과 P의 거짓 DLC를 개발 진행 중에 있다,
물론, 다른 대형 게임사와 비교한다면 신작 개발과 출시 텀이 다소 긴 편이고 정보 공개와 마케팅 측면에서 다소 수비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 신중함 탓에 당장의 변화가 호실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애태우는 면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달리 생각하면 가급적 훌륭한 게임만을 이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엄격하게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는 신중론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그렇게 이용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입소문을 탄 것만으로 충분한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네오위즈의 앞날은 완만하지만 여전히 쾌청한 언덕 위를 오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비록 당장 숨은 좀 차더라도.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