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의 발전에 따라 해상도가 높아지고, 텍스처의 수도 늘어나고 해서 게임 만드는 건 이제 어지간한 중공업 수준의 투자와 계획이 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관련된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버무려지는 것이 과거 특정 인물이 주도하던 시대와는 다르게 풍부해졌다면 풍부해졌고, 복잡하다면 복잡해졌다. 그 결과랄까, 플레이 이전에 게임 자체가 전례없이 난해해졌다.
울펜슈타인의 원작인 1992년작 '울펜슈타인 3D'를 잠시 추억해 보자면, 그건 위아래를 볼 수 없어 그냥 전후좌우만 커버하면 되던 게임이었다. 전후좌우에 나오는 적만 먼저 보고 먼저 쏘면 되던 게임이라 칸막이(?)만 잘 기억해 넘나들면 게임 깨는 건 금방이었다. 그 이후에 나온 '리턴 투 울펜슈타인'이나 멀티플레이의 전설인 '에네미 테리토리' 모두 쏘고 달리다보면 어느덧 살아서 게임은 끝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출시된 '울펜슈타인'은 좀 묘하다. 과거에는 FPS라는 장르 게임에 나치와 오컬트가 양념으로 쓰였다면, 이번에는 그 판도가 정확하게 뒤집어졌다. 다른 세계의 몬스터들과 싸우기 위해 오컬트와 나치가 동원되었달까? 예전처럼 히틀러의 각별한 관심이 느껴지기 보다는 '둠'처럼 '디아블로'류의 무언가 뒤틀린 세상을 바로 잡는 것에 혈안이 된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 게임에 나오는 '독일군'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지금 우리는 한글이 아니라 독일어를 써야 정상.
이제는 롤플레잉도 FPS 게임처럼 쏘고 달리는 세상이다 보니, 장르적으로 과거와 같이 슈팅액션이라고만 하기에는 무언가 부담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랬을까, 게임 인포머는 이 게임을 '판타지 어드벤처'라고 평가했다. 처음 패키지의 밀봉을 뜯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카피 멘트인가 보다 했는데,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 나갈수록 정말 탁월한 평가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평가가 나오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역시 베일(Veil)의 존재가 크다.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대로,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가려진 세상을 벗겨내 까발리는 일종의 '마법'인데, 이걸 통해 맵 자체가 하나의 퍼즐판과 같은 성격을 띄게 된다. 거기다 맵 구성이 나름 분기 흉내를 내면서 옛날 시에라에서 나온 어드벤처처럼 각 파트를 어떻게 플레이하느냐가 달성율에 영향을 주는 등 다소 시스템이 복잡하다.
물론, 적들이나 학살하며 엔딩이나 보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인텔, 금괴 등을 모으느랴 찬장까지 뒤지고 돌아다니는 수고가 취향에 안 맞다면 옛날 스타일로 움직이는 모든 걸 다 부수면서 돌아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마초 스타일의 진행은 게임이 품고 있는 컨텐츠를 못 즐긴다는 점. 싱글플레이에서는 그냥 FPS 스타일의 어드벤처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 이쯤되면 Sci-Fi. 마법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가 알던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다.
싱글플레이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플레이어에게는 장르 융합의 한 사례를, 제작사에게는 높은 퀄리티의 게임을 좀 쉽게(?) 만들어내는 요령을 체득하게 하는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런데 멀티플레이는 무리하게 싱글플레이 요소를 살리려다보니 밸런스를 잃은 그런 경우가 아닌가 그리 여겨진다. 특히 '에네미 테리토리'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그런 인상이 더 강하게 들 것이다.
울펜슈타인은 '에이전트'가 주인공인 게임이다. 그런데 울펜슈타인의 멀티플레이 스타일을 정의해 버린, '에네미 테리토리'를 감안해 본다면, 이 경우는 철저하게 분대형 전투 스타일이라서 싱글플레이와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을 견지한다. 그래서일까, 실행파일조차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가 분리되어 있는데, 이런 철저한 분리가 이번 작품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듯 싶다.
'싱글플레이의 연장' 차원에서 본다면 울펜슈타인의 멀티플레이는 그런 부분을 잘 감안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울펜슈타인' 이라는 이름 자체가 멀티플레이라는 옵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에네미 테리토리'가 연상된다. '원맨쇼는 곧 총알받이가 된다'는 교훈이 머리속에 남아 있는 가운데 싱글플레이의 그 분위기가 재림하는 건 호오비가 갈릴 부분. 그래도, 딱히 옛 기억이 없다면 이런 고민은 없을 것 같다.
▲ 원작은 FPS, 전작도 FPS. 그러나 이제는 '판타지 어드벤처'. ('게임 인포머' 평가가 정답)
청소년이용불가 / 평점 : 8점(10점 만점)
[기사제공 : 아크로팬 www.acro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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