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가 어떤 식으로 '드래곤볼'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되새겨본다면, '수호전'이 '환상수호전'이 된 과정은 상대적으로 매우 얌전하게 느껴진다. 아니, 무난하다고 해야할까? 소설을 관통하는 '108성'이라는 명사를 수호하면서 시놉시스를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계속 나름 다르게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를 찍고 시리우스로 간다는 그런 류의 콘텐츠와는 다른 경향이 역력하다.
물론,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는 식의 권선징악적 스토리 구조야 과거 작품과 크게 다를 바 없어 스토리를 이리저리 매우 꼬아놓는 요즘 게임들에 비교해 봤을 때 다소 단순하게 보일 수는 있다. 무협지처럼 이름이나 무공 등의 명사만 바뀌고 그 외에는 그대로인 그런 게임이 아닐까 의심도 가는 걸 피할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뻔함이 이 게임의 매력을 재차 강조시킨다. 왜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게임이 나온 닌텐도DS 플랫폼은 패밀리컴퓨터와 슈퍼패미컴 사이 정도의 하드웨어로 볼 수 있다. 터치 인터페이스가 접목되어 있기는 하나, ARM 코어 성능을 본다면 요즘 나온 거치형 기기와는 비교도 못할 그런 성능이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인 성능 한계가 되려 고맙게 느껴지는 기획이 멋지다. 속된 말로 '노가다'가 옛 '노가다' 그대로다. 밤 새워 즐기던 바로 그런 게임들이 주던 느낌이 그대로 있다.
▲ '캐릭터 콜렉션 노가다(...)'로 정평이 난 바로 그 게임이 '정식발매'되었다.
'환상수호전 : 티어 크라이스'는 병렬세계관을 기초로 악을 물리치는 한 세계의 용사들의 모험을 다룬 게임이다. '수호전' 이름이 들어간 만큼, 108명 콜렉션은 본거지에 비석까지 세워두고 독려하는 게임이다. 소설 처럼 조정과의 싸움 정도로 '한길협회'와의 싸움이 다뤄지며, 그런 한길협회의 폭정에 대해 '못 살겠다 갈아엎자'는 자세로 대하는 주인공 진영의 분위기는 스토리 진행 내내를 이어진다.
내용은 뻔하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본듯한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10년 만에 본듯한 느낌이 강하다. 왜냐하면 요즘 게임들, 너무 복잡해진 탓이다. 10년 전 나름 충격이었던 '파이날 판타지 7'의 삼각관계는 옛 선현들의 추억꺼리가 다 될 정도? 요즘은 커플도 연령대도 다양하게 성격도 다양하게 다 나눠 배치하는 바람에 연파 루트 외우기도 벅차다.
그런데 '환상수호전 : 티어 크라이스'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배제하고, 정의와 우정을 논한다. 그리고 선함과 관용을 제일 앞에 배치시킨다. 단순명쾌. 게임은 그런 구조로 돌아간다. 스토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게임 시스템도 체인 효과가 아주 뚜렷해 헷갈릴 여지가 없다. 조금 해맨다 싶으면 바로 어드바이저가 나타나므로 밤새 게임을 해도 끝이 없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 본래 '일본어'라 알기 어렵던 내용들이 모두 다 '한글'로 나온다.
NDS 플랫폼 답게, '환상수호전 : 티어 크라이스'는 단순하다. 그러나 볼륨은 많다. 또 크다. 숨겨진 캐릭터, 보상 걸리는 캐릭터가 있다보니 108명을 다 모은다는 것 자체도 미션. 그나마도 다 모으면 관리하기도 어렵다. 무슨 인력송출회사마냥 '파견'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지만, 직접 손수 캐릭터를 다 'LV99' 만들겠다 뜻을 세운 사람에게는 탐탁치 않은 방식. 관리에는 손이 매우 많이 가는 게 사실이다.
'환상수호전'처럼 플레이되는 캐릭터가 많은 게임에서 양적으로 방대한 체계 내에서 디테일함을 살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WOW와 非WOW를 나누는 것 처럼, 그냥 버리고 가도 될 것을 굳이 챙기게 만드는 그런 '연출'과 '함정'은 이런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부분에서 이 게임은 하나를 버리고 셋 그 이상을 얻었다.
게임을 진행해보면 느끼겠지만, 싸우는 것 하나 외에는 신경 쓸 부분이 적다. 장비 조합? 장비 제조? 생산? 개발? 연계? 상성?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소위 '레벨빨', '장비빨'로 달리면서 스토리 텔링을 보고 즐기면 될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고전적인 의미의 '일본식 롤플레잉'의 전형을 현세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옛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을 하다 아침해가 뜨는 걸 보게 된다.
▲ 참으로 오랜만에 철야로 할 만한 게임 등장!
12세이용가 / 평점 : 9점(10점 만점)
[기사제공 : 아크로팬 www.acro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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