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게임에서 '혁명'을 다루는 경우는 은근히 많다. 문제는 본 장르를 SF나 판타지로 잡아야 그 프레임이 그나마 흔적이 나타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 블록버스터인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도 광의적인 측면에서 '혁명'을 다룬 것인데, 주인공의 깨달음이나 캐릭터들의 성장과 같은 요소가 그 위에 덧 씌워지면서 '혁명'이 오락꺼리로 다뤄지는 흥행영화로 탈바꿈했다.
아무리 메인스트림에서 테마로 각광받은 바가 많다고는 해도 유명한 영화들이 이러는 것을 보면, '혁명'은 민주국가에서도 대놓고 다루기에는 부담스러운 소재인 듯 싶다. 하기사 기존 체제의 붕괴, 과거에 대한 불용 등 모든 걸 부정하고 새로 시작하는 그 행위와 발상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매일 부딪히는 체제에 불만이 있다면 이보다 매력적인 동인은 없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아이콘인 미국에 거점을 둔 게임 배급사인 THQ가 '레드 팩션 : 게릴라'를 처음 발표할 당시에는 혁신적인 물리엔진이 화제가 되었다. 되려 기술적인 측면에 포커스가 맞춰졌던 것이다. 게다가 3인칭 슈팅과 오픈월드 조합이라는 컨셉이 주된 이슈로 다뤄졌다. 그런데 그렇게 발매된 게임은 황당할 정도로 60~70년대 혁명전사들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기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 상대가 워낙 강력해 제목처럼 '게릴라' 짓을 해야 된다.
20년 전, 10년 전 한국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매우 친숙한 연좌제가 오프닝을 장식한다. 먹고 살아 보겠다고 화성까지 이주해서 먼저 자리 잡은 가족과 함께 뭐 좀 해보려고 했더니만 누명 쓰고 죽을 뻔하는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마치 서부 개척시대 마냥 검거한 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계엄군인 EDF가 스크린 안을 휩쓸고 돌아다닌다.
초면에 총구 들이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혁명대오에 서게 되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장르가 SF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제목을 한국식으로 쓰자면 '빨갱이 : 빨치산'이 되는 게임답게 SF는 무기 시스템과 시놉시스 배경을 설명하는 정도로 위상이 격하되고 난데없는 혁명전사 연대기가 화면을 가득채운다.
주인공 캐릭터를 일단은 하부계층이라 하더라도 '시민'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첫 도입이 어찌보면 생뚱맞게 시작하긴 해도, 어찌보면 반체제로 접어들었던 많은 사람들과 같은 이유, 즉 '누명'과 '연좌'로 설정한 것을 보면 제작진이 꽤 확신을 가지고 시놉시스를 꾸민 듯 하다. 게다가 중반 이후와 엔딩은 해피엔딩으로 흐른다고는 해도, 과정을 관통하는 정서는 마치 '체 게바라' 평전 같다.
▲ '암약'을 하는데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국내에서는 소위 '노가다'나 하고 '캐시질'이나 하는 것이 게임의 본질로 왜곡되어 수용되었지만, 외국에서는 하나의 영상문법으로 게임이 다뤄지는 경향이 이미 오래전에 정착해 다양한 작품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국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출시된 게임이라, 게임의 시스템이나 체계 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싱글플레이 모드의 컨셉이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것이 '레드 팩션 : 게릴라'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류의 시놉시스를 다루게 되면 그 것을 담은 그릇이 영화던 연극이던 게임이던 간에 매우 진중해지면서 이분법적인 접근을 대놓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수용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그런 경향을 매우 강하게 보인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만든 게임이라 그런지 과거에 연연하는 '미련'이랄까, 그런 부분이 없다. 화자가 깔끔하게 연대기를 읊고, 캐릭터는 게임성 그 자체에 충실하다.
시놉시스는 묵직하기 짝이 없을 정도. 무슨 고민이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를 '파이날 판타지' 같은 게임은 사실 상대도 안되는 무게다. 특히나 지금 현재 누리는 삶이 투영된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SF 장르를 잘 살린 다양한 무기 시스템과 물리엔진, 세인츠 로우 시리즈 등 THQ가 소유한 프랜차이즈를 통해 정련된 게임 모드와 컨셉은 '레드 팩션 : 게릴라'의 게임적인, 그리고 문예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킨다.
▲ 미국 사람들의, '혁명'에 대한 통념적인 해석? '체'의 그림자가 매우 짙다.
청소년이용불가 / 평점 : 9점(10점 만점)
[기사제공 : 아크로팬 www.acro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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