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과 동양식을 나누는 것 중에 '공포물'이 하나 있다. 서양은 드라큘라나 좀비와 같은 몬스터가 등장해 피로 화면을 물들이는 것을 전형적인 공포물로 간주하고, 동양은 원한이나 집착 등 심리적인 이유를 죽어서도 못 버리는 영혼의 이야기를 전형적인 공포물로 본다. 어느 것이든 겁나기는 마찬가지나 나름대로 대륙과 대륙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왔다.
'글로벌'이 화두가 된 요즘, 각 대륙을 뛰어넘는 크로스오버 타입의 공포물이 영화나 만화로 나오는 가운데, 게임에서도 이와 관련된 시도가 있었다. 2005년에 나온 'F.E.A.R'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알마 웨이드'라는 한 서린 영혼이 자신을 처연한 신세로 몰아넣은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이 섬뜩하게 다뤄진 이 게임에서는 교묘하게 동양과 서양의 정서가 혼재되어 있어 대호평속에 흥행에 성공했다.
아버지가 딸의 초능력을 군사목적(!)으로 활용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이, 딸이 생존한 상태에서 벌어지면 전형적인 서양식 사이코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딸이 참혹하게 지경에서 사실상 살해당한 이후에 그 원혼이 현실세상을 파탄에 몰아넣어가는 과정은 전통적인 동양의 귀신이야기와 다름없다. 이번에 출시된 'F.E.A.R 2'는 바로 이 전작의 흐름을 되살리는데 역점을 둔 게임이다.
▲ 꼭 피와 살이 튀겨야 겁나게 무서운 게 아니다.
게임에 대한 자세한 설정과 인물 소개는 게임 패키지를 사면 덤으로 오는 '아마캠 테크놀러지 평가보고서'라는 책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본래 텍스트에 누군가 첨언한 듯이 인쇄되어 있어, F.E.A.R 본편의 스토리라인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게임을 진행하기에 앞서 한번 제대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걸 보면, 알마 웨이드에게 죽어가는 게 차라리 속편할 정도.
물론, 죽인다고 죽으면 게임진행이 안된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분투가 게임 내내 계속된다. 다만 과정이 일반적인 게임과는 약간 다르다. 그냥 몬스터나 복제병사라면 총으로 먼저 쏴 죽이면 되겠지만, 그런 '멀쩡한' 적과 별도로 초자연적인 대상들이 게임 중간에 종종 난입한다. 단순히 적과 싸운다기 보다는, 밤에 길다가 귀신 만난 꼴이라 여기서 놀라 굳어 버리면 일단 맷집부터 깍고 시작하게 된다.
혹자는 '연출의 승리'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설정의 승리'라고 본다. 사실 'F.E.A.R' 는 본편이나 2편이나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캐릭터들이 왜 그 짓을 하는지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특히 2편은 게임 자체가 F.E.A.R 본편이 끝난 직후가 아니라 비슷한 시간대에서 시작하는 모양새라 스토리에 대해 게이머가 먼저 알지 않으면 감정이입이 제한된다. 그래서 덤으로 오는 책자를 읽어봐야 한다.
▲ '엘리트 강화장갑'만 있다면 마음이 든든하다. 문제는 여기서 내리면...
게임 플레이는 일반적인 1인칭 슈팅게임(FPS)처럼 총기를 주된 무기로 삼아 적을 원격에서 타격해 섬멸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전작에서도 인기 좋았던 '아마캠 HV 해머헤드'도 나오고, 위력은 별로지만 화면을 채우는 불꽃이 마음에 드는 발저 LM10 화염방사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엘리트 강화장갑'(EPA)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를 돋구는 요소다.
양손에 기관포를 달고 미사일도 쏴주면서 적들을 쓸어 버리는 EPA는 내내 그것을 타고 다닐 수 없음이 아쉬운, 매우 강력한 동반자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하면 먼치킨이 따로 없을텐데, 이걸 타고 다닐 수 있는 외부 공간은 게임플레이에 있어 그리 비중이 높지 않다. 안에서 갇혀서 귀신이랑 숨바꼭질하다가 기분전환하라고 있는 듯한 느낌, 딱 그 정도다.
'F.E.A.R 2'는 'F.E.A.R' 본편이 스핀오프같이 느껴질 정도로 설정이나 연출, 기술적인 측면 모두를 개보수한 흔적이 농후하다. 본편을 굳이 안 해봐도, 번들로 따라오는 책자를 보면 대략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적으로 스토리 텔링을 하는데 연출을 활용한다. 때문에 전작을 해봤다면 익숙한 탓에 공포감은 덜하겠지만, 알마의 한풀이가 여전하다는 건 눈으로 볼 수 있다.
▲ 하이테크 바이올로지컬 귀신이야기(...) 'F.E.A.R 2'
18세이용가 / 평점 : 8점(10점 만점)
[기사제공 : 아크로팬 www.acro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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