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10여년 전부터 게임을 했던 사람 중에서 RPG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폴아웃(Fallout) 시리즈를 거쳐봤을 것이다. 그당시 오리진의 크루세이더 등으로 인기 좋았던 쿼터뷰 방식인, 참으로 난해하고도 치밀한 RPG 게임이었던 폴아웃은 엄청나게 많은 영어 텍스트의 양과, 그러한 텍스트의 양이 무색해질 치밀한 설정과 연계로 매니아들의 인기를 모았다.
엄밀히 이야기해, 상당히 진입장벽이 높은 축에 속하기로 손꼽혔던 게임이라 제대로 즐긴 사람은 국내에서 상당히 하드코어 게이머로 불리곤 했다. 게다가 이 게임의 룰 자체가 전통적인 테이블토크 RPG 룰을 모델로 한 것이기에 되려 보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을 PC에 붙잡는 독특한 풍경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폴아웃 1, 2를 만든 블랙아일 스튜디오가 도산하면서 3편은 마치 C&C 3편이 그러했듯 못 나올 것 처럼 인식되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게임 판권을 엘더스크롤 시리즈로 게임 상을 휩쓴 베데스다 스튜디오가 확보하면서 후속작이 어쨌던 간에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Xbox360 버전으로 '폴아웃 3'가 정식 발매되는 경사가 일어났다.
▲ 핵전쟁이 나면 꼭 그럴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게임을 지배한다.
게임은 1편과 2편의 시간대를 이어나가는 형태로 이어진다. 미국의 패권주의과 에너지 고갈이 핵전쟁과 생화학 병기의 남용으로 이어져 처절하게 망가진 지구, 그 중에서도 워싱턴 DC에서 게이머가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살아남아 아버지를 찾는 것이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제작사가 제작사니만큼, 엘더스크롤 시리즈처럼 최종목적인 아버지만 찾고 게임을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게임의 볼륨 자체는 치를 떨었던 그 때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베데스다 스튜디오도 엄연히 상당히 타협된, 팔리는 게임을 잘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에 전작들처럼 컬트 게임으로는 기획하지 않은 모양이다. 원작의 처절한 난해함을 어느 정도 감쇄시킨 대신, 요즘 인기 좋은 FPS 스타일, 영화 연출 방식의 전투와 필드 디자인에 역점을 두었다.
다만 '폴아웃 3'는 한글판이 아닌 영문판이어서 한국어를 주로 쓰거나 한국어만 아는 사람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참으로 많다. 원체 텍스트가 많은 게임인데다, 말 잘못 하거나 알아들으면 없어도 될 사단이 줄을 서는 편이다. 그나마 착한 일은 녹색, 나쁜 일은 빨간색으로 뜨니 망정이지 하는 일 자체의 명확한 성격을 파악하기에 난해한 일이 간간히 있다. '선악'이 보기에는 명확한데 머리속으로는 애매하다.
▲ 모두를 의심하고 적대해야 하는 '디스토피아'가 무대다.
게임의 르네상스, RPG의 황금기였던 시절은 DOS 운영체제 시절이었다. 사실 그 때 그 시절 수준의 컬트적인 게임을 요즘같이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플랫폼 기반 비즈니스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란 참으로 껄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 같다. 적어도 비주얼적으로 재현한 세계관은, 과거에 상상도 못했던 그 모습이다.
콘솔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폴아웃 3'에서 만나볼 수 있는 디스토피아는 화면속에서나 만나는 것이 참으로 다행인 지옥이다. 황폐하기 그지없는 그런 필드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아버지를 찾아, 살아남고자 이런 저런 일들을 계속 해야한다. 여기에 이전 시대의 사악한 유물들과 맞닥들여 싸워 이기기까지 해야 한다.
게임 자체가 콘솔 패키지 게임으로는 상당히 알이 꽉 찬 구성을 지향한다. PC 버전으로는 아쉬움이 남을지 모르나, Xbox360 이라는 하드웨어 자체의 역량을 본다면 갈만큼 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게임 완성도가 높다. 만약이라지만, '바이오 쇼크'나 '로스트 오디세이'처럼 한글 자막만이라도 입혀졌더라면 능히 가보로 간직할 만한 게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 게이머라면 살아 생전에 한 번은 해봐야 하는 게임.
청소년이용불가 / 평점 : 9점(10점 만점)
[기사제공 : 아크로팬 www.acro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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