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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프리뷰

25년 경력 액션 게이머를 응애로 만든 '퍼스트 버서커: 카잔' 데모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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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란 모름지기 흥미본위, 돈과 시간을 소비하여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 이것이 필자가 인식하고 있는 게임의 정의(define)이다. 

기준이 명확한 만큼 만족스러운 플레이 체험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직접 조작하는 액션 게임 장르는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지만, 소울 시리즈나 인왕 시리즈처럼 지나치게 어려운 하드코어 액션 게임에 대해서는 만듦새가 좋고 완성도가 높음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굳이 나의 돈과 시간을 들여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쉬이 손을 대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하드코어 액션 장르가 만약 게임 인생의 20년을 넘게 함께 해온 최애 IP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물은 바로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하 카잔)이다.


■ 사나이로 거듭나는 좌절감이 아니라 그냥 좌절감

'록맨 2'로부터 시작된 게임 인생을 되돌아보면 나름 본인 스스로의 액션 게임 짬밥 수준은 상당하다고 자부하고 있는지라 2024년 지스타를 비롯한 각종 외부 행사에서 몇 번 카잔을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으나 체험을 할 때마다 좌절감을 경험했다.

비록 노미스, 노피격, 타임어택을 즐기는 괴수 플레이어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액션 게임을 해도 중간 이상은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숨 쉬듯 'KHAZAN HAS FALLEN'이라는 게임 오버 메시지를 봤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임을 못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작 버튼이나 다름없고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하기 위해 하드코어 액션 RPG와 거리두기를 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고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1월 17일, 카잔의 출시를 약 2개월 앞두고 체험판이 배포됐고 이를 플레이하기로 결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차피 주변에 누구 보는 사람도 없으니 쪽팔릴 일도 없고 이번 기회에 피하기만 했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 플레이는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원작인 던파에서는 톡하면 터질 잡몹 포지션의 병사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원숭이와 박쥐에게 농락당하면서 카잔에서는 지나가다 만나는 그 무엇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행 구간에서는 최대한 쓸데없는 체력 손실을 막기 위해 잠행 상태로 적의 후방을 잡아 브루탈 어택*을 시도하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렇게 몬스터를 먼저 인지하고 천천히 걷다가 지반이 무너져 낙사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맞이하는 등 카잔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딱히 이유 없는 사망'을 마구마구 경험하게 됐다.

  • 브루탈 어택: 전투 중 기력을 전부 소진한 적이나, 상대를 인식하지 못한 대상에게 시도할 수 있는 고위력 특수 공격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할수록 맛있는 전투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투는 재미있다. 정확히는 보스전 구간의 전투 체험인데 어떻게든 보스전까지만 간다면 비교적 빠른 템포로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동시에 패턴의 전조를 찾아내려는 눈치 싸움이 굉장히 즐거웠다.

외부 행사에서 체험할 당시에는 플레이 타임에 제약이 있었지만 이번 체험판에서는 그러한 문제도 없으니 박치기 공룡처럼 실컷 머리를 박을 수 있었고, 특정 공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저스트 회피가 뜨고 어떻게 해야 저스트 가드가 뜨는지를 끈기 있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보스가 플레이어와의 거리나 기력 상황, 먼저 시도한 공격의 클린 히트 여부에 따라 후속 패턴이 연계되는지와 같은 데이터를 착실하게 쌓은 것은 덤이다.

사전 정보가 없다시피 한 수준으로 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투가를 상대했을 땐 속성 상성이나 상태 이상의 개념을 정확하게 숙지하지 못해 당황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꽤 해봤기 때문에 이런 단순 무식한 짐승을 상대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덕분에 돌진을 헛치게 하여 벽에 박고 알아서 대경직에 빠지게 하거나, 대놓고 동작이 큰 텔레폰 펀치를 시도하다가 팔이 땅에 박히고 무방비 상태가 됐을 때 강공격을 때려 박아 기회를 잡는 쪽으로 공략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았고 몇번의 리트라이만으로 수월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 선택의 기로의 끝에서 만난 망령

그렇게 설산 하인마흐의 첫번째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니 지금까지 진행한 수준과 비슷한 일반 난이도로 게임을 진행할 것인지,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쉬움 난이도로 진행할 것인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단순히 체험판을 리뷰하는 입장에서 플레이 타임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소대로 게임을 즐기려고 했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쉬움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겠지만, 해당 시점에서는 일반 난이도 진행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처음에 우려한 만큼 크지는 않다고 잔뜩 자신감에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쉬움 난이도에 적혀있는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이라는 멘트에 긁혀버린 것이 컸다. 쉬움 난이도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이 용납되는 선이 아니었고, 이 선택은 스톰패스 미션 구간 마지막에서 블레이드 팬텀과 장장 2시간의 혈투를 벌이는 단초가 됐다.

스톰패스 구간을 진행하는 부분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지만 블레이드 팬텀은 전에 상대하던 적들과는 달리 크기도 작고 재빠른데다가 무기를 스왑하면서 덤벼오는 탓에 거리감과 템포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대검을 주무기로 정한 이후부터는 회피보다는 저스트 가드 판정과 반격을 통해 체력과 기력을 갉아먹으며 틈이 보이면 차지 강공격을 먹이는 정면승부 방식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게임을 진행하는 꽤나 효과적이었지만 블레이드 팬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스트 가드를 성공해도 바로 경직에 걸리지 않고 주먹과 발을 써서 공세를 멈추지 않거나 경직에 걸린 것을 보고 차지를 시작하면 그림자 형태가 되어 저만치 거리를 벌리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저혈압은 서서히 치료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2시간 가까이 블레이드 팬텀에서만 죽어나가다 보니 이전과 같은 가드 원패턴 전술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형태로 사방 팔방을 뛰어다니며 포커싱과 타이밍을 빼앗아 오는 패턴에는 방향을 맞춰 가드나 쳐내기를 하기 힘드니 회피를 누르기 시작했고, 대치 상태에서 간을 보며 기력을 회복할 기미가 보이면 투지 포인트를 사용하여 창을 던져 훼방을 놓게 됐으며 회복할 타이밍을 잡는 것도 조금씩 능숙해졌다.

그렇게 도르마무와 거래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마냥 수없이 죽어가며 블레이드 팬텀을 꺾은 다음에는 '폐관 수련을 끝낸 이 몸의 실력을 발휘해 볼까'라고 뿌듯해하는 순간 체험판의 볼륨이 끝났다.


■ 총평

하드코어 액션 RPG에 익숙하지 않아 카잔을 접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체험판 플레이를 통해 카잔이라는 게임은 '플레이 체험 측면에서 재미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보스전에서 꽤나 많이 죽은 탓에 라크리마를 쌓는 레벨 노가다의 과정도 동반됐고 클리어하는 순간까지도 모든 패턴을 완벽하게 받아내는 수준의 숙련도가 쌓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반대로 패배하는 과정에서도 '한 대를 더 때리려고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 내지는 '내가 대처를 잘못했다'와 같이 합리적인 수준의 공방이 오갔고 덕분에 패배하는 과정에서 게임 설계가 불쾌하거나 억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초반 미션 몇개 깨고 나서 내리는 결론이기에 정식 출시 이후에도 적용될 평가일지는 미지수지만, 개발진에서 체험판의 분량이 4시간 정도라고 공언했던 만큼 필자는 4시간 가량의 플레이 타임으로 체험판을 전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봤으니 충분히 게이머 평균은 지켰다고 보는 입장이다.

과연 3월에 출시될 카잔의 본편은 어느 정도일까? 만약 체험판 정도의 기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카잔은 돈과 시간을 털어넣고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성취감이 따라와서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 준수한 퀄리티 하드코어 ARPG 입문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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