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습니다.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릴 정도로 재밌는 게임도 많지만 괜히 돈만 버린 듯한 아쉬운 게임도 많죠. 어떤 게임이 재밌는 게임이고 어떤 게임이 아쉬운 게임인지 직접 해보기엔 시간도 돈도 부족합니다.주말에 혼자 심심할 때, 친구들과 할 게임을 찾지 못했을 때, 가족들과 함께 게임을 해보고 싶었을 때 어떤 게임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신가요? 게임조선이 해결해 드립니다! 게이머 취향에 맞춘 게임 추천 기획 '겜츄라이'![편집자 주]
이런 분께 추천!: 파밍 게임 좋아하는 게이머
이런 분께 비추!: 반복 사냥을 못참는 게이머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가 개발한 '패스 오브 엑자일 2'가 얼리 액세스로 출시되었습니다. 국내 서비스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카카오게임즈가 맡았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는 11년 만에 돌아온 후속작인 만큼 이번 작품에 대한 핵앤슬래시 게이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스팀 글로벌 서버에선 얼리 액세스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동시 접속자 수 약 58만 명을 기록했고, 평가도 '매우 긍정적'을 받았죠. 개발진도 이 기세를 타고 피드백과 패치 노트를 꾸준히 게재하며 게이머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인기 있는 건 충분히 알겠는데, 도대체 왜 인기 있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수많은 게이머가 패스 오브 엑자일 2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전에 무서운 악마를 때려잡으며 아이템을 모으고, 그 아이템으로 빌드를 만드는 재미가 있거든요. 구르기가 추가되고, 액션이 조금 더 묵직해지긴 했지만, 다크 판타지와 파밍이라는 근본 요소는 그대로 살아있죠.
패스 오브 엑자일 2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감탄한 부분은 역시 아트워크입니다. 다크 판타지 아트워크 교과서가 있다면 여러 페이지를 너끈히 채울만한 풍경이 게임 속에 등장합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축축하고 음산한 강둑을 지나 인기척이 느껴지는 클리어펠 야영지에 도착하면 그 위태로운 분위기에 안심보단 불안이 먼저 떠오릅니다. 불타는 오검 마을과 소름 끼치는 저택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이제 한숨 돌리나 싶더니 다음 장에선 비쩍 마른 노예들이 힘겹게 끌고 다니는 아르듀라 카라반과 함께 황량하고 붉게 물든 사막을 횡단해야 하죠. 모래바람을 뚫고 겨우 사막을 벗어나면 이번엔 제물로 바쳐진 시체들이 여기저기 뒹구는 웃자알 유적이 게이머의 정신을 갉아먹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의 세계를 설명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군요.
스킬 이펙트도 꽤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광원 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덕분에 보는 맛이 있습니다. 화염 스킬은 정말로 불이 난 듯 이글거리고, 번개 스킬은 섬광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반짝입니다. 이외에도 거대한 무기로 땅을 힘껏 내려칠 때 충격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힘껏 당긴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가 적에게 깊숙이 박히는 연출은 전투의 보는 맛을 한껏 살려줍니다.
멋진 아트워크 이후 만나게 되는 전투는 핵앤슬래시 게이머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스킬 몇 개 '딸깍'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전투를 기대했는데 막상 실제로 전투를 해보면 시원하게 공격하는 건 적들이고, 내 캐릭터는 뒹굴다가 누워버리죠. 출시 전 개발진이 "이 게임은 액션슬래시"라고 할 정도로 액션의 중요도가 높으며, 꽤 초반부터 전투에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이런 변화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구르기' 추가입니다. 구르기는 모든 직업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회피 액션인데 무적 판정이 굉장히 관대해서 일단 위험하다 싶을 때 회피를 눌러주면 웬만하면 생존합니다. 게다가 출시 후 업데이트로 구르기 충돌 판정도 작아져 이젠 적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구르기를 열심히 눌러주면 빠져나올 확률도 높아졌습니다.
물론 구르기만 하면 적을 잡을 수 없겠죠? 열심히 구르기를 쓰면서 공격 기회를 엿보다 보면 생각보다 전투 디자인이 잘 짜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구르기를 사용할 정도로 위협적인 몬스터들은 공격할 때 모션이 확실해 게이머가 언제 공격해야 할지, 언제 구르기를 써야할지 정확히 알려주죠. 그래서 몇 번 상대하다 보면 나름 합을 주고 받으며 치열한 전투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게임이 그저 구르기를 쓰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답답한 게임은 아닙니다. 내가 캐릭터를 연구하면 할수록, 스킬과 아이템을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확실히 강해지고, 다른 핵앤슬래시에 가까운 전투를 펼칠 수 있죠. 초반 전투는 구르기와 막기를 자주 사용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기였다면 내 손에 맞는 빌드나 플레이하는 직업의 최적화된 빌드를 만들게 되면 몇 가지 스킬 조합으로 적들을 날려버리는 전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물론 너무 신나서 적들에게 달려들면 '사망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긴 합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의 핵심 시스템인 스킬은 전투의 재미를 한층 더 살려줍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의 캐릭터들은 전투나 퀘스트를 통해 얻은 스킬 젬을 사용해 액티브 스킬과 버프 스킬을 얻습니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내가 고른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의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캐릭터를 만들 때 위치를 선택했더라도 능력치만 만족한다면 소서리스의 '격노의 유령'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모든 액티브 스킬과 버프 스킬을 내 직업이 아닌 다른 직업 스킬로 채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직업은 왜 있는 걸까요? 답은 바로 '패시브 스킬'에 있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에는 얼리 액세스 기준으로 6가지 직업, 직업 당 2가지 전직, 총 12가지 전직이 있습니다. 각 전직은 천 개가 넘는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어 같은 액티브 스킬이라도, 같은 버프 스킬이라도 직업과 전직에 따라 성능이 달라집니다. 앞서 말한 격노의 유령도 화염 마법과 소환 마법 패시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사용했을 때 더 강하고 튼튼한 소환수를 부릴 수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과 버프 스킬은 보조 젬으로 한 번 더 강화됩니다. 투사체 스킬에 투사체 증가 보조 젬을 끼우면 투사체가 늘어나고, 장판형 스킬에 범위 증가 보조 젬을 끼우면 장판이 더 커지는 식이죠. 보조 젬 역시 다른 직업의 효과를 부여할 수 있어 빌드의 폭을 크게 넓혀줍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2는 멋진 아트워크와 묵직한 전투, 무궁무진한 빌드로 핵앤슬래시 팬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게임이 되었습니다. 아직 얼리 액세스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가 처음인 게이머부터 소싯적에 악마 좀 때려잡아본 역전의 용사까지 폭넓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개발진들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하는 점입니다. 필드 전투의 물량전을 감당하기 위해 구르기를 상향하고, 체감 드롭률을 높이기 위해 확률을 보완하고, 탐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순간 이동 요소를 추가하는 등 출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많은 부분을 손보고 있습니다.
액션슬래시를 천명한 패스 오브 엑자일 2는 게임 내외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게이머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즐길 파밍 게임을 찾는다면 패스 오브 엑자일 2는 가장 어울리는 게임이 되어줄 것입니다.
[성수안 기자 naki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