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
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법정 배틀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가장 잔혹한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과정은 최대한 공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하여 승부를 가리지만 결국 승자와 패자가 반드시 갈리고 무승부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정 배틀, 추리 게임 시리즈인 '역전재판'에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변호사의 역할의 캐릭터에 이입하여 게임하기 때문에 상대하는 검사 캐릭터들이 피고인을 인신공격하고, (진짜로)채찍질하며, 이상한 종교를 권유하다가 안넘어오면 폭언을 쏟아내는 등 온갖 부정적인 면모를 자연스레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장을 비틀어서 우리가 그 검사 캐릭터가 된다면 입장은 달라지게 된다. 마치 '미츠루기 레이지'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을 깔보고 비웃는 재수없어 미친아
사실 역전재판 시리즈는 게임적 허용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그 법정 배틀은 굉장히 허술하기 그지 없다. 추리나 논쟁의 로그를 보면 명확한 증거와 정황을 토대로 심도 있고 철두철미한 검증이 이뤄지기 보다는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기,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지르기가 주가 되며 진실은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 우연히 찾을 수 밖에 없어 소위 말하는 도파민 터지는 듯한 '역전'의 즐거움에 모든 것을 몰빵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리즈 초반부 매치업에서 악역은 아니지만 반대되는 입장의 라이벌 캐릭터 '미츠루기 레이지'는 일단 피고인을 믿어주고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플레이어에게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고 귀족주의적인 복식에 깔보는 듯 한 말투 그리고 열받는 표정까지 서브컬쳐에서 흔히 말하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엘리트'의 클리셰로 떡칠한 비호감이었기에 '우츠루기'라는 별명으로 씹히는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잘나신 검사 나리님께서 맹한 반푼이 변호사 '나루호도 류이치'한테 맥을 못추고 연패를 거듭하다 보니 게임 내적으로도 취급이 박해지기 시작했고 동네북으로 등극하며 1편 최종장에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커리어와 함께 인생이 완전히 끝장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루호도의 변호를 통해 누명을 벗으면서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면 벌을 주되 그렇지 않다면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도록 '진실을 찾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미츠루기 레이지는 멋지고 품격 있는 선의의 라이벌로 거듭나게 된다.
법정을 뒤흔들어놓는 브레인과 냉철한 카리스마
재미있게도 서브컬쳐에서는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아군이 된 적, 적이 된 아군 보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적으로 전향한 아군은 손도 못 쓸 정도로 강해지고 원체 강했던 적이 아군이 되면 평상시에 콧노래 부르면서 이길 것도 못이길 정도로 약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거꾸로 '미츠루기 레이지'가 플레이어의 입장에 서는 통칭 '좌츠루기' 상태가 되면 게임 진행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자연스레 나루호도 류이치를 만나기 전의 모습인 '패배를 모르는 천재 검사'의 면모를 거침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좌츠루기로 그를 플레이하면 과거사와 개인의 신변을 조금 더 접할 수 있게 되는데 이름난 변호사인 아버지를 존경하여 '의뢰인을 억울한 죄로부터 구해낸다'는 그의 이념에 따라 초등학생 시절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 학우 '나루호도 류이치'를 변호했던 이력이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의 무죄 판결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범죄를 미워하는 검사가 된 내막을 알게 되면서 많은 플레이어들은 그에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
좌츠루기의 편린을 보여준 학생 시절의 모습
심지어 사회적인 입지와 그리고 법정에서의 중립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어린이용 특수효과 영상 촬영물인 '토노사맨'의 팬임을 숨기고 사는 숨덕의 면모, 나사빠진 패션과 인테리어 센스, 실은 착하지만 좀처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깍쟁이 속성까지 더해진 상태다.
그래서 지금의 미츠루기 레이지는 법정에 서지 않으면 나루호도 못지 않게 얼빠진 인물이지만, 법정에 서면 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똑똑하며 신뢰할 수 있는 우군의 이미지가 구축됐다. 실제로 제작사인 캡콤에서 앙케이트만 했다 하면 대부분 1위를 먹고 들어가는 초절정 인기캐릭터가 됐을 정도다.
물론, 그가 1편 이후로 우호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고는 해도 일단은 검사 직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츠루기' 상태에서는 전작들처럼 변호사들의 엉터리 법정배틀에 휘말려서 여전히 패배 스택을 쌓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왼쪽 좌석에 서는 '좌츠루기'가 되면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며 화려한 법정 배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를 폄하하는 여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여자친구 없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알파메일을 찾는다고? 멀리 갈 것 없이 역전재판, 역전검사 세계관의 법정으로 가보자 그 곳에 '미츠루기 레이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맛, 멋진 검사님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