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쿠데타(Coup ďÉtat)'라는 용어의 뜻은 위정자 내지는 상급 장교처럼 높은 직위를 가진 이들이 현재 집권 중인 체제를 뒤엎고 전복을 시도함을 의미한다.
쿠데타는 발생할 경우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사회적인 여파가 너무나도 크기에 법적 제도와 장치가 매우 세련된 현대 사회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 취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원래 사람 사는 일이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쿠데타는 일어나고 있으며 기존의 체제를 뒤엎는 개념인 쿠데타가 변형되어 권력을 잡은 소수가 반발하는 다수를 찍어 누르기 위해 체제를 스스로 엎어버리는 '친위 쿠데타'라는 막장스러운 상황도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 인물열전에서 만나볼 사람은 '권력보다 좋은 것은 더 많은 권력'을 주장하며 '친위 쿠데타'를 발발한 인물 '시라누이 카야'다.
보통 서브컬쳐에서 흑막 캐릭터들이 아주아주 좋아하는 그 포즈
시라누이 카야의 소속은 블루아카이브의 배경인 학원도시 키보토스의 행정을 총괄하는 '총학생회'다.
사실 일본 문화에 영향을 받는 서브컬쳐 콘텐츠에서 '학생회(생도회)'의 위상은 기본적으로 괴이할 정도로 높은 편인데,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을 초월한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키보토스를 총괄하는 이들이다 보니 총학생회의 일원이라는 자리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잠재적으로 그 능력이 대단하다는 인증서나 다름 없다.
당연히 총학생회장과 같은 '완벽초인'을 동경한다는 설정이 잡혀있던 카야 입장에서는 그 총학생회장이 미리 안배한 권한대행에 대해 그 능력을 의심하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이나 이유가 없었다.
작중 묘사된 린의 지도력에 의문부호가 붙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정상 총학생회는 능력이 출중한 엘리트 집단이다
오히려 그녀가 메인 빌런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카르바노그의 토끼' 에피소드 초반까지만 해도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던 선생님들 중 일부는 이전에 대립각을 세웠던 학생들이 다 그렇듯이 구제불능의 악역까지는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나름대로의 저의를 가지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실각당한 나나가미 린의 경우 총학생회장이 실종된 상황에서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원칙주의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속내를 알 수 없는 언동을 보였고 색채의 침공 시점에서도 답답한 운영으로 지탄을 받았던 것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때문에 총학생회장과 같이 뛰어난 능력으로 학원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초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카야의 쿠데타에 대해서 '사실 일에 치이는 린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악역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냐', '실눈은 보통 힘을 숨기는 고수들의 속성이니 진짜로 카야가 린보다 나은 행정가일수 있다'라며 반쯤 농담조로 옹호하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다.
거 뒤통수 치기 딱 좋은 날일세
그러나 정작 카르바노그의 토끼 2장에서 밝혀진 그 실체는 권력을 잡기 위해 상황을 만들고 주도하는 최소한의 정치력은 있으나, 행정가로서의 능력은 물론 적절하게 직위에 맞는 사람을 배치하여 부리는 용인술도 0점인 '멍청한데다가 부지런한 상사'에 불과했다.
극중 카야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주변에 둔 것은 세력은 본인처럼 무능하고 무력한데다가 뒤통수를 칠 생각만 가득한 '카이저 코퍼레이션'과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고용했더니 실권을 잡은 즉시 조준점을 그녀에게 돌린 전문 시위꾼 '붉은겨울 용역부'였다.
오히려 SRT 특수학원의 재건이라는 간절한 목표의식과 일곱죄수 '와카모'를 체포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FOX 소대를 등한시하고 약속을 미루며 사기를 꺾는 행동을 보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내치고 가까이 하면 안될 이들을 등용하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재해 피해 및 복구 집계 현황 불투명'이라는 헤드라인이 어떻게 보면 그녀의 무능함을 미리 알려준 복선이었을까
그렇다고 개인의 능력이 그렇게 타령하던 '초인'에 가깝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린을 실각시키면서 권력을 활용하지 않는 중우정치에 매달리는 우매한 지도자는 필요 없음을 설파했으나 정작 카야가 지시한대로 일을 처리하자 키보토스 전체는 막장으로 치닫는 혼돈의 카오스가 됐고, 숫자를 갖은자로 기입하여 예산을 집행하는 자잘한 행정조치마저 실수를 연발하며 다른 총학생회 임원들에게 면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키보토스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공포가 필요하다는 테러 자작극이었고 선을 넘은 행동을 막기 위해 선생과 RABBIT 소대가 개입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된다.
그런데 구속되어 호송되는 과정에서도 초인 타령을 하며 우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초인을 동경했을뿐 진짜 초인이 무엇인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동경이라는 것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기 마련이다.
카르바노그의 토끼 에피소드는 한국 시간으로 2023년 12월 12일에 업데이트됐다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대전의 형태든 입구 막기와 같은 협동의 형태든 원팀으로 움직이는 체제에 불만을 품고 트롤링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그 악영향은 나머지가 암만 열심히 해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은 이미 수도 없이 증명된 사실이다. 실제로 이러한 '쿠데타'의 속성은 극적인 갈등 구조와 서사를 나타내기에 너무 매력적이어서 각종 게임에서 심심찮게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시라누이 카야의 쿠데타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특별할 만한 부분은 없다. 카르바노그의 토끼 에피소드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그저 자기 객관화가 덜 된 얼빠진 멍청이가 치기 어린 떼쓰기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규탄한다 이것저것 보장하라!
하지만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개그와 시리어스를 잘 배합하는 블루 아카이브라는 게임의 특성 덕분에 그녀의 쿠데타가 끝내 실패하는 과정은 꽤나 현실적이면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통쾌함을 더해줬고, 하필이면 해당 에피소드가 한국에 업데이트된 날짜가 2023년 12월 12일이었다던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영화 '서울의 봄'과 엮이면서 '키보토스의 봄'이라는 별명이 붙는 등 게임 외적으로도 호재가 따랐다.
물론, 교정국에 수감된 카야가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아직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확실한 부분이 있다면 카야의 친위 쿠데타는 6시간만에 끝나버린 모 사건과 다르게 그래도 빈집털이에 성공하고 3일 정도는 정권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완성도가 높은 악역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용의주도함 정도는 칭찬해줘도 되지 않을까? 아님 말고!
한잔해, 아름다운 쿠데타 했잖아?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