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힘과 싸우는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
태초부터 인간은 거대한 것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잡아먹는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 집채만 한 몸집을 가진 미노타우르스,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1000년 묵은 이무기 등 인간을 잡아먹거나 공격하는 거대한 괴물이나 거인에 대한 얘기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편으로는 거대한 것의 두려움을 넘어 이를 동경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당시 과학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구조물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고대의 피라미드, 콜로세움, 만리장성부터 현대의 러쉬모어 마운틴, 브라질 예수상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뜬금없이 인간과 거대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 소개할 두 게임의 주제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코&완다와거상 리마스터링HD컬렉션(이하 이코&완다) 입니다. '이코' 와 '완다와거상' 두 게임은 이미 2002년, 2005년에 플레이스테이션2를 통해 발매되어 둘 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게임입니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플랫폼, 서정적인 스토리, 동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형제 게임으로 분류되고 있는데요.
이번에 나온 이코&완다는 두 게임을 HD 화질로 리마스터링하여 플레이스테이션3로 재발매된 게임입니다.
두 게임은 각각 거대한 성, 거대한 거인이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두 소년은 성의 수많은 함정을 피해 탈출해야 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거인의 온몸을 돌아다니며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거대한 적과 싸워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소녀를 위해서입니다.
2000년대 초반 수많은 콘솔 소년들을 소녀의 늪에 빠뜨려 버린 두 게임을 살펴보겠습니다.
◆ 소년은 소녀를 지킨다. 이코(ICO)
이코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뿔이 난,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소년 이코는 신관에게 끌려 안개의 성에 봉인됩니다. 친구 토토가 준 증표 '광휘의 서' 덕분에 봉인에서 벗어난 이코는 거대한 새장에 갇힌 신비의 소녀 요르다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코는 수많은 마물들과 마신의 후계자 여왕에게서 요르다를 지키며 살아 있는 미로이자 요새인 안개의 성을 탈출하려 합니다.
함정과 적을 돌파하여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은 페르시아의 왕자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이코를 조종해서 달리고, 뛰고, 구르면서 안개의 성을 탈출해야 하는 것은 여타 액션 어드벤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코는 게임 초반에 만난 요르다라는 소녀와 함께 성을 탈출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뛰고, 구르고, 달려야 하는 액션 어드벤처에서 '훅~' 불면 날아갈 것처럼 보이는 절대 가련 소녀와 함께 한다는 겁니다. 요르다는 특정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신체적인 능력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멀리 뛰지도 못하고,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으며 이코가 없을 때 마물을 만나면 반항조차 못하고 납치되어 버리는 순정 소녀이지요.
요르다의 최대 특징은 주인공의 손을 잡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겁니다. 즉 이코가 손을 잡고 끌어줘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는 건데요. 이는 기존 액션 어드벤처 장르와 차별성을 가지는 동시에 수많은 소년 게이머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게 됩니다.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서의 이코는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액션 어드벤처 장르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함정과 퍼즐 요소가 핵심인데 이 부분의 밸런스가 절묘해서 몰입도가 높은 편입니다. 퍼즐 요소는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아 적당한 사고력으로 일정 시간 생각을 하면 대부분 풀어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성에 걸맞는 웅장한 음악과 게임을 진행하면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스토리 역시 게임을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 역활을 해줍니다.
◆ 소년은 소녀를 살리려 한다. 완다와 거상
완다와 거상은 이코로부터 약 4년이 흐른 2005년에 발매되었습니다.
이코의 정식 후속작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세계관 분위기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코는 소녀와 함께 성을 탈출하는 내용의 액션 어드벤처였던 것에 비해 완다와 거상은 거대한 거상들과 1:1 전투를 통해 하나씩 쓰러뜨리는 보스전 느낌의 액션 게임입니다.
주인공 완다는 이미 죽어버린 소녀, 모노를 부활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모노를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되돌린다는 도르민을 부활시켜야 하는데 도르민은 16개의 존재로 분리되어 각각의 거상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즉 소년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16개의 거상을 쓰러뜨려야 하는 거지요.
완다에 비해 작게는 수배~ 큰 경우에는 수백 배 이상 커다란 거상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인 게임으로 모든 거상은 몸 곳곳에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투의 기본은 약점을 찾고, 약점까지 기어오르고, 약점을 공격하는 기본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점의 위치가 모두 제각각인데다가 특정상황을 만들어야 갈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퍼즐적 요소가 강한 게임이지요.
워낙 독특한 게임방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약점찾기라는 퍼즐 요소가 강해서 게임에 입문하기가 제법 어려운 게임입니다. 크게 성공했던 이코의 후속작이고 꽤나 높은 게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코보다 판매량이 적은 이유가 바로 난이도 때문이었지요.
매달리고 기어오르는 것이 중요한 게임인데 악력 게이지라는 게 있어서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악력 게이지가 떨어지면 그대로 추락해서 처음부터 다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게임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등반과 추락을 반복하다가 게임오버 당하기 일쑤지요. 게임 좀 했다고 자부하는 골수 게이머들도 공략이 없이 엔딩을 보기가 꽤나 어려운 게임이지만 퍼즐형 게임의 특성상 일단 공략법을 알면 큰 무리 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 명작도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순 없나?
확실히 이코&완다와 거상은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고 재발매 될 정도로 명작 게임입니다.
이코는 10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에서 재발매 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HD리마스터링을 했다곤 하지만 1세대 전 콘솔의 그래픽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게임을 처음 접할 때는 그래픽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이코를 모르던 유저들의 구매의욕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게임 자체는 워낙 명작이라 일단 몰입이 되면 게임의 그래픽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지만 두 게임 모두 입문이 쉽지만은 않은 게임이라 신규 게이머가 적응하기에는 제법 어려운 편입니다. 이는 모든 HD리마스터링 게임이 가진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합니다.
또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될 당시에는 완벽한 한글화를 거쳐서 발매된 것에 비해 이번 버전은 한글화 없이 영문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두 게임 모두 대사가 많지 않고 액션 중심의 게임이라 게임을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글과 비한글은 게임의 몰입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치명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콘솔 시장에 한글화된 게임이 거의 없던 불모지 시절에 완벽 한글화되어 발매된 바 있던 게임들이 정작 한글화 시장이 커져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는 비한글화로 발매되어 버리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코&완다와 거상은 게임을 경험해보지 못한 게이머보다 이전에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그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 게이머를 위한 게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았던 게이머라면 굳이 구매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게임이지요. 단 반대의 경우라면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과거의 명작을 HD 화질로 리마스터까지 되어 발매된 고마운 게임이기도 합니다.
<결국, 과거 게이머의 팬심을 자극하는 게임이라는 소리>
◆ 과거 팬으로서 마지막 한마디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본 게임의 광팬이었고 두 게임 모두 여러번 엔딩을 본 바 있습니다. 엔딩을 본지 몇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아~ 이런 곳도 있었지^^" "아~ 이런 녀석이 있었지..." 라는 기억이 날 정도인데요. 저처럼 과거에 밤을 새가며 게임을 플레이했던 게이머가 있다면 강력 추천하고 싶은 소프트입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간결하면서도 몰입감 있는 스토리.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거대한 맵과 적들, 웅장한 음악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게이머라면 다시 한번 금단의 땅으로 발을 딛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배향훈 기자 tesse@chosun.com] [ga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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