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지우고 스크린샷만 덜렁 있으면 그 회사 직원도 무슨 게임인지 분간 못 해, 게임스타트 버튼 누르자마자 나오는 첫 화면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개보다 유료 상품 판매 팝업창이 더 크게 떠, 게임성보다 과금 유도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임들이 많다 보니 어떤 게임을 어떻게 리뷰를 해도 '믿고 거릅니다', '기자 미쳤냐', '입금 완료' 등의 댓글만 달리는 마당에 비슷한 신작은 계속 나오고 게임 기자가 안 쓸 수는 없고 그냥 속 편하게 써보는 리뷰.
이 게임은 떡잎부터 기대를 타고났었다.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스토리텔링을 위한 연출 모두 강점으로 두루 인정받았다. 거기다가 2019년 한 해에 걸쳐 여러 차례의 CBT를 통해 담금질을 해왔다.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캐릭터를 수집하고 강화하고, 스테이지에 반복해서 입장하는 일반적인 캐릭터 수집형 RPG와 달리 흔히 보기 힘들었던 산뜻한 콘텐츠를 중심에 뒀기 때문. 그것이 재미있고 아니고, 성공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분명 그 부분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색다른 시도는 좋았다. 문제는 편의성과 접근성이었다. 자동 전투, 자동 이동 등 모바일 게임이 갖는 편의성은 흔히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바가 크다. 전투 결과에 대한 변수가 적고 반복 플레이가 잦은 캐릭터 RPG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모바일게임 임에도 여러 차례 CBT를 진행한 것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을 터다.
남다른 게임을 여럿 선보인 바 있는 '라인게임즈'와 개발사 '우주'가 준비한 신작, '엑소스 히어로즈' 얘기다. 이 리뷰 코너에서만 세 번째 다루는 애증의 작품임을 밝힌다.
이 게임의 최고 장점은 연출력이다. 전작 '엑소스사가'에서부터 계승, 발전시킨 세계관을 품어 매력적인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냈고, 풀 3D로 일러스트를 이질감 없이 구현해냈다. 또한, 이를 화려한 연출력으로 포장해서 보여준다.
주인공과 히로인이 일차원적이지 않은 성격의 인물들인 만큼 마치 판타지 배경의 라이트노벨 같은 느낌의 스토리텔링도 계속 플레이하게 되는 장점이 되어준다.
제온과 아이리스의 페이트코어 스킬, 이인합격 = 게임조선 촬영
바라카 스킬 연출 = 게임조선 촬영
캐릭터 수집형 RPG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캐릭터 입수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유료 재화 뽑기 형식이 맞으며 뽑기 시도 시 마일리지가 일정량 쌓일 때마다 동료 확정 영입권을 준다. 마일리지 보상은 총 6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일종의 제작 시스템인 '창조의 문'을 통해 이미 보유한 영웅을 넣어 같은 등급, 혹은 상위 등급의 영웅으로 확정 교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다수의 운명(5성) 등급 영웅의 입수가 이곳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반적인 뽑기로는 얻을 수 없고 '창조의 문'에서 캐릭터 합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최상위 등급, 일명 '히든 캐릭터', '진-운명' 등급의 영웅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급 논란이 생겼다. 그런데 그건 뭐 따지고 보면 게임 특성이니까. 이것보다 창조의 문 들어갈 때마다 컷신 뜨는 거, 그거 스킵도 안되고 그게 더 열받는다.
월드맵 모험과 이벤트 외에 활용한 방치형 콘텐츠도 존재 = 게임조선 촬영
또한, '월드맵'을 활용한 모험의 재미를 살렸다는 점은 기존 모바일 RPG에서 적극 시도되지 않았던 부분으로 가장 큰 차별화 요소다. 옛 JRPG 식으로 구성된 월드맵을 플레이어가 직접 돌아다니며 다른 모험가를 만나거나 도적을 쫓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 드래곤을 피해 도망가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벤트를 겪어가면서 소소한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월드맵에서 인카운트하여 예기치 않은 전투를 겪다 보면 진짜 옛 감성의 RPG를 즐기는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월드맵에서 이따금 겪게 되는 드래곤의 습격 = 게임조선 촬영
다만 화려한 외견에 비해 콘텐츠 면면은 불편한 점이 많다. 그리고 아쉽게도 불편함들은 전부 엑소스 히어로즈가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 것들에서 기인한다. 이전까지는 CBT 단계라 테스트 결과에 따라 수정의 여지가 있어 톤 다운을 많이 했었는데 정식 출시를 한 마당이니 가열차게 몇 마디 해야겠다.
도대체 왜 이 '비공정 호출 연출'을 버리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주로 '월드맵'을 돌아다니며 퀘스트를 진행하게 된다.
1. 영웅 편성이나 가방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공정 화면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2. 비공정 메뉴를 누르면 먼저 월드맵 UI가 사라지는 효과가 생기고
3. 월드맵 바깥에서부터 비공정이 날아오는 연출이 발생한다.
4. 그리고 잠시 후 화면 우측 상단에 스킵 버튼이 생성된다.
5. 이 상태에서 스킵을 한 번 더 눌러줘야만 화면이 넘어간다.
비공정에서 할 수 있는 메뉴만 봐도 얼마나 자주 호출하게 될 지 알 수 있을 것 = 게임조선 촬영
가방 누르면 화면이 홰까닥 넘어가도 그 짧은 로딩이 조금이라도 긴 것 같으면 '로딩이 길다', '로딩이 잦다'라며 거슬리기 마련. 인벤토리를 확인하고 싶을 뿐인데, 영웅 강화를 하거나, 팀 편성을 바꾸고 싶을 뿐인데 비공정이 밖에서부터 날아오는 연출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알고 눌러도 열받는데 별 목적 없이 이것저것 보다가 실수로 누르면 손가락 쥐어뜯고 싶어짐.
주인공 일행이 비공정을 타고 대륙을 누비며 모험을 떠난다는 콘셉트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의미라면 애초에 월드맵에서 비공정을 타고 날아다니면 될 것을 왜 정작 주인공들은 왜 비공정을 놔두고 뽈뽈뽈 스테이지나 콘텐츠 찾아 걸어 다니고 정작 비공정은 메뉴 호출을 해야만 그때야 날아와서 주인공 일행을 태우고, 유저 속을 태우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이 게임은 '비공정에서만' 열어볼 수 있는 메뉴 외에도 '마을에서만' 열어볼 수 있는 메뉴가 따로 있어서 별거 아닌 정보 하나 확인하려고 주구장창 비공정을 호출해야 하는 것 외에도 툭하면 퀘스트 진행하던 곳을 떠나 대륙 횡단을 통해 마을로 직접 뛰어가야 한다. 심지어 마을에서 비공정으로 바로 갈 수도 없어서 마을에서 영웅 정보 좀 볼라치면 '마을에서 월드맵 클릭 -> (로딩) -> 월드맵에서 비공정 클릭 -> (로딩) -> 비공정 이동'이 답답한 이동을 반복해야 한다. 물론 역순도 마찬가지.
비공정 노이로제 걸릴 지경 = 게임조선 촬영
마을에서 시작하게 되는 일일 퀘스트는 어차피 소일거리 내용으로 주면서 굳이 월드맵 가서 하나 깨고, 마을 와서 완료하고, 또 월드맵 가서 하나 깨고 마을 와서 완료하고 하나씩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왔다갔다 하게 만든 것도 이해가 가지 않더라.
그나마 '성소'로 일컬어지는, 장비나 경험치, 각종 재료를 얻기 위한 서브 콘텐츠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 해당 장소로 뛰어가고, 날아가고 하는 것은 (사실 이마저도 없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무리 많아봐야 하루에 몇 번 가지 않으니까 스트레스가 덜 하다. 이 정도는 이해하고자 하면 월드맵 활용의 일환으로, 고전 감성의 '맛'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상시 들려야 하는 메인 메뉴로 비공정 호출 연출 감상을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CBT 때 가장 격렬한 피드백이 이루어진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반영이 되지 않았기에 길게 길게 하는 말. 그나마 국가 이동은 비공정에서 즉시 할 수 있도록 변경됐더라. CBT 에서는 비공정에서 국가 이동하면 다시 월드맵으로 나가서 일일히 이동했었는데.
지난 CBT에 혜성같이 등장해 엑소스 히어로즈의 졸음 유발 전투 씬에 '전략' 요소를 집어넣은 '브레이크' 시스템도 위에서 불거진 문제 탓에 짜증을 유발한다.
우선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자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 '수호석'을 속성에 맞춰 공격하면 하나씩 파괴되고, 모두 파괴될 경우 상대가 일정 턴 동안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되고 추가 피해를 받는 그야말로 엑소스 히어로즈 전투의 핵심 시스템이다.
전투를 진행함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브레이크 시스템 = 게임조선 촬영
특히, 수호석은 같은 캐릭터라 하더라도 습득 시 랜덤하게 결정되므로 PvE는 물론 PvP에서조차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단순 전투력과 정해진 스킬 구성 외 실제 전투를 경험해 본 플레이어일수록 더 전략적으로,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이 자체로써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스테이지 미션으로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게임은 스테이지에 진입할 때 팀 편성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즉, 브레이크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팀 편성을 매번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공정 호출을 반복해야 하므로 앞서 문단을 통째로 투덜거렸던 그 깊은 빡침을 유발한다. 하다못해 비공정을 못 빼겠으면 스테이지 진입 전에 팀 편성을 가능하게 하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스테이지 미션에 특정 영웅을 편성해서 깨라고 했다가 그다음에 브레이크 없이 깨라든지 하는 미션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마구 섞여 나와서 수시로 팀을 변경해야 하는 탓에 들락날락 '우헤헤- 자꾸 비공정 보내니까 열받지? 메렁~' 하고 놀려대는 것 같으니까 제발 미션 좀 적당히 걸었으면 좋겠다.
스테이지 미션과 비공정 호출이 겹쳐 엄청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 게임조선 촬영
비공정과 스테이지 미션 두 가지가 합쳐져서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동선을 보여주냐면 '스테이지 진입 -> 진입하고 보니 미션 캐릭터가 있거나 브레이크 속성이 있음 -> 나가서 비공정 호출 -> 팀 편성 -> 다시 스테이지 진입 -> 스테이지 깨고 다음 스테이지에 갔더니 바로 팀 편성 바꿔야 하는 다른 미션 뙇!' 이게 반복된다.
좋다. 잘 만든 게임이고, 화려하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칭찬할 만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이상하게 게임만 하면 짜증 날 일이 많다. 캐릭터 수집형 RPG가 사실 캐릭터 예쁘고 예쁜 캐릭터가 멋지게 활약하고, 성우들 목소리와 성격 매칭 잘됐고, 연기 잘하고 스토리도 매력적인데 사실 문제일 것이 뭐가 있을까? 출시 하루 만에 인기 순위 1위도 거머쥐고, 매출 순위도 높게 찍혔더라.
그런데 문제를 굳이 만들어 붙였다. 워낙 다른 게임에는 쉬이 볼 수 없는 기능들이라 월드맵 자랑하고, 비공정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진짜 적당히 좀 했으면. 게임하면서 좋은 기분 다 망친다. 하다하다 월드맵에 용 짜식이 불 쏘고 도망가는 것도 짜증난다. 기자가 트집 잡을라고 하는 말 아니고 정말 카페 건의사항 가도 다 똑같은 말 하고 있다. 1월에 썼던 리뷰에도 똑같은 말 있다.
마지막으로 비공정 버튼을 눌러버린 기자의 심정을 담은 한 컷 = 게임조선 촬영
Point.
1. 올해 나온 수작 중에서도 화려함으로는 트집 잡힐 일 없을 것
2. 그저 그런 모바일 RPG 탈피를 위한 여러 참신한 시도가 엿보인다.
3. 브레이크 시스템을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스테이지 미션 짜증 난다.
4. 용이 와서 불쏘고 가는 것도 한두번이지 자꾸 그러니까 짜증 난다.
5. 비공정 슬슬슬 날아오는 거 짜증 나고 늦게 뜨는 스킵도 짜증 난다.
6. 조합 중시형 캐릭터 RPG 가 스테이지 입장 전에 팀 편성도 없고 짜증 난다 .
7. 개발자도 비공정 연출 꼭 보게 하고 퇴근시켜야 없애줄 듯
◆ 엑소스 히어로즈 플레이 영상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