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지우고 스크린샷만 덜렁 있으면 그 회사 직원도 무슨 게임인지 분간 못 해, 게임스타트 버튼 누르자마자 나오는 첫 화면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개보다 유료 상품 판매 팝업창이 더 크게 떠, 게임성보다 과금 유도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임들이 많다 보니 어떤 게임을 어떻게 리뷰를 해도 '믿고 거릅니다', '기자 미쳤냐', '입금 완료' 등의 댓글만 달리는 마당에 비슷한 신작은 계속 나오고 안 쓸 수는 없고 그냥 속 편하게 써보는 리뷰.
이 게임은 친다. 홈런일지, 안타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알만한 게임 모든 줄기가 모바일 시장을 향하는 이때에 일단 출루는 확실한 IP 게임인 것은 분명하다. 당시 컬트적 인기를 끌었던 원작 랑그릿사 시리즈의 지명도, 그로 인한 캐릭터성도, 완전하게 자리 잡은 턴제 전투, 활용할 만한 사이드 스토리, 호감도 시스템 등 이미 완성된 각 콘텐츠의 퀄리티까지 모바일 게임에 딱 맞아떨어지는 옷을 입고 있으니까. 더구나 SRPG 라는 장르는 상위권에 가끔 이름을 보였다가도 쉽게 김이 빠져 현재 이렇다 할 경쟁 작도 없는 상황이니 안성맞춤.
'랑그릿사' 다. 뒤에 모바일이나 M이 붙지 않는다. 국내 시장 분위기에 눈치 빠른 PM 이 붙었나보다. 이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원작 팬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면 이 게임은 중국 ZLONGGAME 이 개발, 2018년 8월 출시된 '몽환모의전(梦幻模拟战, 랑그릿사 중국명이라는 듯)'을 가져온 것. 그리고 결국 모바일 RPG 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다. 캐릭터에 SSR, SR 같은 등급이 있고, 뽑기 방식을 차용했다. 거기다 디스크도 아닌데 조각 모음 방식. 장비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 피로도가 존재한다. 이런저런 실망할 수 있는 언급을 먼저 했음에도 이 게임은 어쩐지 재미있다. 원작에서 느꼈던 감성을 다시금 느낄 만하다.
또한, 랑그릿사 시리즈 모든 캐릭터를 다 담고 출발하지 않았다. CBT 기준 1~3편 캐릭터들 위주, 그중에서도 2편 캐릭터들의 비중이 높았다. 물 건너에서는 란디우스와 레이첼을 비롯한 4편 캐릭터들이 추가됐다고. 성공작, 실패작, 실험작 여러 작품의 런칭&운영 경험이 많은 '엑스디글로벌'이 국내 서비스를 맡았다.
지난 글에 CBT 리뷰는 버전 밝혀달라고 해서 국내 소규모 테스트 버전 리뷰라는 점 밝힌다. 아, 그리고 시나리오 아군 턴 개시 전 화면 위로 지나가는 유저 코멘터리 자막으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왜 자꾸 스포하냐아아!!!!
랑그릿사 모바일은 익숙하다- 라는 인식이, 재미있다- 혹은 잘 만들었다- 라는 인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아주 잘 된 이식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게임의 영리한 면은 초반부에서도 알 수 있다. 튜토리얼 부분에서부터 5편으로 최종 마감한 시리즈 타이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로 손꼽히는 2편의 등장인물들을 적극 활용해 추억 자극에 힘을 쏟았다. 시작하자마자 제시카가 시리즈 주인공들 나와라! 뚝딱! 보젤이 용 나와라 뚝딱! 하더니 서로 투닥투닥. '루시리스와의 문답'으로 결정되는 주인공 능력치와 클래스, 이름표 '???' 로 등장한 제시카와 보젤을 보며 누구나 아는 척하게 될 듯. 어차피 게임에서도 바로 알려주니까 이건 스포 아님.
등장인물들도 알고 있는 시리즈 전통 = 게임조선 촬영
시리즈 전통. 첫 스테이지부터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나 도주한다. 랑그릿사 시리즈의 스토리라인은 마검 알하자드와 성검 랑그릿사 둘을 두고 벌어지는 음모, 배신, 우정, 사랑, 서스펜스 스릴러 뭐, 너무 당연한 구조라서 스토리라인이 단순하다고 볼 수도 대신 옅어질 이유도 없다. 여주인공 아멜다는 툭- 하면 여신 루시리스 빙의되는데 튜토리얼성 발언만 해서 애들이 '여신님 왔다갔어~?' 긴장감이 없음.
착하고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 여유 있고 장난기 많은 남자 사람 친구, 말괄량이 소꿉친구 속성의 여주인공까지 만나고 나면 대충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된다. 다만, 금세 다른 유닛 뽑아서 쓰다 보니 익숙한 기존 작 주인공들에 비해 모바일 버전 주인공 파티의 임팩트가 적긴 하더라. 모바일 주인공 파티는 최대 SSR 까지 레어도 성장이 가능하게 만든 점으로 어느 정도 커버하려 한 듯.
랑그릿사의 간판, '우루시하라 사토시'의 일러스트를 쓰지 않았다는 얘기에 크게 실망했던 것이 사실 별로 튀지 않았을 정도로 새롭게 그린 일러스트에서 오는 괴리감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성우도 대거 교체됐다고 하는데 성우까지 기억할 정도의 광팬은 아니라서 이 역시도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어차피 하나씩 다 깨나가야 하는 스테이지 구성 방식인데도 월드맵 UI 를 특이하게 배열하여 자유도를 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월드맵 형태로 되어 있는 스테이지 구조 = 게임조선 촬영
전투는 원작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조금 간소화됐다. 볼륨이 줄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먼저 지휘관 개체와 용병 개체로 나뉘었던 원작과 달리 지휘관과 용병 유닛이 하나의 개체로 통합됐다. 피해를 입을 시 용병들이 먼저 피해를 입고, 지휘관이 나중에 피해를 입는 방식. 물론 범위 스킬이나 일부 지휘관 스킬로 지휘관 명치 때리는 것도 가능.
어쨌든 덕분에 전투 맵에서 특유의 바글바글 유닛들은 없어졌다. 또한, 전장의 전체 크기도 작다. 당연히 한판 한판 플레이 타임이 짧아졌다. 다만, 전장 규모가 작아진 대신 한 번에 출격 가능한 개체도 줄어들었다. 대체로 5인. 아, 전체 클래스나 병종 개수에 비해 좀 적다. 모바일 플랫폼을 고려하자면 당연한 결정이기도. 3편에서 보여준 충격과 공포의 3D 파노라마 전투나 리얼 타임 전투 이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길.
속도, 판단력 이런 거 없이 완전 턴제. 타일 단위 이동 후 적에게 근접, 전투가 발발하면 전투 장면으로 넘어가는 구조다. '위험 범위'라 해서 현재 진형상 다음 턴에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범위를 미리 알 수 있는 단축 버튼 기능도 유용. 마나 없다. 액티브 스킬은 쿨타임이 존재하여 강력한 스킬을 연거푸 쏟는 것은 불가능. 턴 짧은 자잘한 스킬은 부담 없이 막 지를 수 있다. 캐릭터마다 패시브 및 액티브, 각종 버프 스킬로 추가 이동, 추가 액션 등 다양한 효과를 갖는다.
우르르 등장하는 용병 유닛 덕에 쓸어 담는 재미가... = 게임조선 촬영
시리즈 고유의 병종 상성도 그대로. 창병은 기병에 강하지만 보병에 약하다. 기병 > 보병 > 창병 > 기병. 비병은 여타 근접 유닛과의 상성은 없지만 궁병에 약하고, 궁병 역시 여타 상성은 없지만 근접 전투 시 보정을 받는다. 그 밖에도 승려와 마물 등 특수 상성이 존재한다.
CBT 라서 리세마라나 캐릭터 생각 안 하고 대충 SR 세팅으로 구성하고 다니다가 운 좋게 SSR 레온 뽑았더니 SSR은 확실히 뭔가 다른건지 시그마무쌍5편 아니, 랑그릿사 5편의 시그마, 람다 수준으로 상당한 무쌍력을 보여주더라. 다만, SSR 쉐리는 인게임 이벤트로 확정 보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봐서 나중에 리세마라 시 이쉐리는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통 20레벨 넘어가면서 난이도가 오른다고 하는데 하루 정도면 20레벨 도달.
가장 큰 장점이라 한다면 원작에서는 NPC 로만 등장했던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여 팀을 꾸릴 수 있다는 것과 자동 전투. 사실 자동 전투 AI 는 역상성에도 들이박고 매지션이 마법 쿨타임이라고 지팡이 들고 기병에 돌격하는 등 AI 가 멍청하기로는 상당히 똥멍청이 수준. 어차피 한정된 전체 스테이지에서 최대한 경험치 효율을 내야 하는 콘솔판도 아니고 아군 피해 정도는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귀찮은 전투를 넘기는 데 충분히 쓸만하다. 모바일에서 친숙한 소탕 기능 역시.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막 기능은 턴 시작 시마다 팝업 되는데 상관없는 잡담이나 스포일러도 있지만 보물 상자 위치나 공략성 글도 있긴 있음. 전투 맵에서 숨겨진 보물 상자 찾기 등 원작 요소를 잊지 않았고 이미 찾은 보물 상자는 다음에 다시 입장했을 때 해당 타일이 이미 파헤처진 상태로 변하는 등 세심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음.
자막 기능으로 보물 상자 위치를 알려주는 착한 사람들 = 게임조선 촬영
메인 스토리 외 가장 반겨 할 만한 콘텐츠는 원작의 시나리오를 체험해볼 수 있는 '시공의 균열' 콘텐츠.다. 왜인지 랑그릿사2 부터 해볼 수 있다. 엘윈과 헤인, 리아나는 물론 레온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단순 클리어 외에 승리 조건과 상관없는 '강적 격파', 'NPC 살리기', '숨겨진 보물 상자 발견' 등 일부 특수 미션을 달성하여 더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기에 수동 전투의 필요성, 여기에 원작 감성을 덩달아 느낄 수 있다.
모바일게임 특성상 플레이어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구조기 때문에 이 달성 미션을 얼마나 더 활용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 다행히 특별 미션은 한 번에 다 만족시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조금 어렵더라도 선택적으로 하나씩 여러 번 플레이해서 하나씩 달성해도 된다. 다만, 시공의 균열 콘텐츠 자체가 원작의 모든 시나리오를 다 가져온 것은 아니라서 원작 팬 성향에 따라 아쉬울 수 있다. 아예 플레이 시간 생각 하지 않고 다수 출격시켜 원작 볼륨으로 즐길 수 있는 도전 모드가 따로 있으면 어땠나 싶었음.
그 밖에도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요일 던전, 경험치 물약 던전, 골드 던전 등 각종 재화나 재료를 수급할 수 있는 서브 콘텐츠가 존재한다. 내용 자체는 뻔하더라도 원작의 숨겨진 시나리오로 활용됐던 초형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소소한 재미. 또한, 협력전 등 실시간 파티 플레이를 골자로 하는 협력 및 경쟁 콘텐츠가 다수 있다고 하는데 CBT 에서는 못해봄.
추억 속 그분들 = 게임조선 촬영
캐릭터 조각 모아서 돌파로 성급이나 레어도(일부 캐릭터 한정)를 올릴 수 있고, 클래스 수행 증명서를 모아 클래스 랭크 업을 시킬 수 있다. 랭크 업시 부가 스킬 획득. 랭크 업을 통해 클래스 마스터 시 상위 병종으로 전직을 할 수 있다. 지휘관이 상위 클래스로 전직할수록 고용할 수 있는 용병의 병종도 상위도 늘어난다. 한번 전직을 선택한 이후에도 룬스톤을 사용해 자유롭게 전직이 가능한 모양. 여기에 총 4피스의 장비 강화도 당연히 존재.
지휘관 뿐만 아니라 병종별로 강화도 따로 있어서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히로인 호감도 시스템은 없지만 캐릭터 친밀도는 있음. 위에서 언급한 서브 콘텐츠가 다 여기 재료에 대응한다고 보면 되겠다.
모바일로 넘어온 것이 반가운 게임인데도 모바일게임식 육성과 캐릭터 뽑기가 갖는 반감이 가장 큰 단점. 캐릭터가 생각보다 적었고, 등급이 매겨져 있으니 더 적게 느껴진다. 그래서 차용한 조각 방식 캐릭터 뽑기와 장비 뽑기가 첫인상을 크게 훼손할 것으로. 목적 별로 여러 덱을 키우는 분위기. 요즘 젊은 꼰대 만큼이나 게임 꼰대가 극심하다던데, 사실 SRPG 의 재미 중 하나가 후반부에 모으고 모아 잘 육성한 캐릭터 우르르 출격시켜서 제대로 부대전 치르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는데 출격 제한이나 맵 구성 등 모바일로 오면서 간소화한 것들 탓에 병종, 전략 다양화가 줄어 원작보다 할거리가 더 많은 데도 왠지 깊이가 더 적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게임 꼰대 기자의 추억투정인가?
하는 김에 넋두리 더 해보자면, 제한된 콘텐츠에서 각종 노가다와 비기를 활용해 여러 형태로 게임을 즐기던 고전 감성에 비추어봤을 때, 이러한 향수 자극 게임이 갖는 원초적 단점처럼 오래 플레이 하다 보면 원작 감성이 갈수록 옅어지고 여타 모바일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복 플레이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딱히 그 지점을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즉, 플랫폼도 다르고, 엔딩 보면 끝나는 콘솔 타이틀도 아니다 보니 결국 한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랑그릿사만의 단점은 아니긴 하다.
CBT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지화, 번역 관련 질문이 많았는데 실제 고민이 많았던 흔적이 보이긴 했다. 친구 일괄추가는 리스트에서 한두 명만 조건 충족이 안돼도 제대로 작동 안 함.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대마법사 제시카의 '슰'픈 한국어 능력. = 게임조선 촬영
CBT 기준으로 과금 요소를 막아놔서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해외 서버 기준 당연히 뽑기, 그리고 캐릭터 스킨 부분이 주, 매일 보상 등의 월 정액 상품과 턴 감기 등의 편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 것 같음. 10연속 뽑기 시 SR 확정 요소 존재. 국내에서도 꾸준한 소과금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라는 이미지메이킹을 하려는 것이 보인다. 원작 팬이거나 SRPG 좋아하면 여러모로 해볼 만함.
Point.
1. 전체적으로 1편 등장인물에 대한 천대가 심한 것 아닌가?
2. 정식 출시 때 어벤져스 엔드게임 안본 분들은 자막 설정 끄시길.
3.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시리즈인지라 이 정도면 차라리 반갑다
4. SRPG 에서 경험치 계산 안 하고 마음 편히 플레이할 수 있다는 장점
5. 출격 인원이 적다. SR, SSR 에 너무 몰려 있음. SSR 자체도 많다.
6. 충실한 원작 감성 구현력에 뽑기, 쓰알 묻었음
◆ 플레이 영상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