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포머 계통의 액션 게임은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적의 종류와 출현 위치, 패턴을 암기하는 것을 공략의 골자로 한다. 무수히 많이 맞아보고 죽어가며 이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며 필자와 같은 일반적인 게이머는 대부분 수월한 클리어를 위해 일련의 설계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면에 A, B, C라는 적이 있다면 A는 공격력이 높은 대신 유리 같은 몸을 지녔으니 선수를 쳐서 제압하고 B라는 빠르지만 머리가 나쁘고 돌진밖에 못 한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낙사 시키며 C라는 적은 튼튼하지만 느리다는 점을 이용해서 점프 등의 액션으로 교전 없이 그냥 넘어가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만약 '적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대면했을 때 우리가 압도적인 피지컬과 재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인물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게임이 이번에 소개할 작품 '카타나 제로'다.
주인공은 의문의 인물로부터 의뢰를 받아 암살 임무를 진행한다. 각 임무는 여러 개의 면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러한 면의 도입부가 세이브 포인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게임은 플랫포머임에도 불구하고 잔기, 체력 게이지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가 사망하면 세이브 포인트에 해당하는 각 면의 최초 지점으로 돌아간다. 게임 오버 대신 자신의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대사와 함께 게임을 재시작할 수 있으며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 말끔하게 모든 적을 해치우거나 속여서 넘어가기 전까지 일련의 과정은 반복된다.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주인공이 복용한 마약 '크로노스'의 효과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의 신에 해당하는 크로노스(Chronos)의 이름에서 유래했듯 이 마약은 시간축에 간섭하여 미래 예지가 가능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면과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하기까지 이뤄지는 시행착오는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기 때문에 스테이지의 초입에서 임무가 아닌 계획을 시작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 특징
면을 클리어하면 자신이 어떤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했는지를 CCTV 영상으로 다시 보여주며 회상하듯 이야기한다
전투 방식은 타이틀명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 일본도로 적을 베고 썰어버리는 게 주가 된다. 복잡한 커맨드 기술이나 숨겨진 오의 같은것은 없으며 마우스를 둔 커서 방향으로 짧게 돌진 하여 베는 것이 전부다.
한 번 공격한 뒤에는 다시 공격하기 전까지 약간의 재사용 대기시간까지 있으며 적에게 공격이 막히면 게이지를 회복하기 까지 재공격을 할 수 없다는 나사 빠진 성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중반부터 등장하는 대다수의 적은 총포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한없이 불리한 조건을 던져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플레이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등 뒤를 잡는 등 선즉제인을 실행하면 보스급 적을 제외하면 모든 적을 한 방에 참살할 수 있으며 일본도 액션의 정수 중 하나인 탄환 되돌리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컨트롤 여하에 따라 더욱 차진 액션씬을 설계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잠깐동안 적의 공격을 모두 회피하는 구르기나 벽 타기, 각종 도구와 함정을 활용하면 상황과 전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다. 혈혈단신으로 다수의 적에 맞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크로노스의 또 다른 효과인 시간 압축을 활용해 느려진 탄환을 되돌려 적을 처치하는 모습
소란을 피워 적을 유인한 뒤 함정으로 일망타진하는 것도 가능하다
각종 도구를 활용하여 적을 기만하고 단숨에 쓰러뜨린다
주인공은 마약의 투여 여부, 임무의 진행방식, 주변인에 대한 태도 등 선택지에 따라 다양한 상황을 접할 수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스토리는 단방향으로 전개된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맞닥뜨려 사망하더라도 결국엔 크로노스 효과로 예지하고 되돌아와 사망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지를 고르는 데 있어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어 하기 기능을 사용하면 예전과는 다른 선택지를 골라 아직 마주친 적 없는 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으며 게임을 좀 더 쉽게 풀어나갈 수도 있고 더 어렵게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비록 러닝 타임이 길지 않고 스토리의 깊이가 다소 얕긴 하지만 입맛대로 시간을 돌려가며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엔딩은 하나뿐이지만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정보가 나오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를 해야 한다
선택지를 어떻게 골랐느냐에 따라 추가 전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투 이벤트를 회피할 수도 있다
발매와 동시에 적용된 한글화도 일품이다. 청소년 이용불가 딱지를 받은 게임 답게 여과 없는 잔혹한 묘사와 욕설 표현이 스토리 이해와 몰입을 돕고 있으며 오히려 몇몇 부분은 한국 정서에 맞도록 센스 있게 번역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그 밖에도 카타나 제로는 다양한 도전 과제와 해금 요소로 자연스러운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고 있다. 원체 다양한 방법으로 클리어가 가능한데다가 작정하고 크로노스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플레이에 제약을 걸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방영된 아동용 팽이 장난감, 카드 게임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재미있는 선택지
카타나 제로가 표방하고 있는 게임 스타일은 네오 누아르(Neo Noir)다. 개발진의 말마따나 게임 분위기는 시종일관 정신없고 번쩍거리며 잔혹하고 어두운 기조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플랫포머 본연의 모습과 액션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물론, 플랫포머가 현재 인기 장르도 아닐뿐더러 마약을 소재로 한 게임답게 통칭 사이키델릭이라 불리는 다소 기묘한 분위기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종류의 게임을 좋아하여 이미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계속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작정하고 엔딩만 보고 플레이한다면 플랫포머 중에서는 엔딩을 보기 굉장히 쉬운 축에 속하기 때문에 플랫포머 장르를 접할 때 입문용으로도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너한 장르에 취해 사는 언더독 취향의 게이머에게도 플랫포머의 세계에 발을 처음으로 들이는 게이머에게도 카타나 제로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카타나 제로, 스튜디오 51 미션 플레이 영상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