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글화 문제로 말도 많았던 인디 게임 작품 '비홀더 (Beholder)'.
개발사는 비홀더의 한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으나 한글화는 더디게 진행되었고 국내 게이머는 기약없는 약속에 질타를 보낸 바 있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간에 한글화는 이뤄졌고 더욱 많은 게이머가 언어의 압박을 받지 않고 비홀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글화 이후에도 영 좋지 못한 발(?) 번역으로 또다시 질타를 받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모바일 버전으로도 출시되기에 이른다.
조금은 병맛같은 한글 번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홀더의 작품성은 높이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와 독재국가를 풍자함과 동시에 암울한 상황을 개성있게 표현했기에 인디 게임계에서는 길이 남을 명작으로 여겨진다.
필자 또한, 비홀더가 모바일 출시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바로 구입했다. 하지만 언어의 압박으로 인해 단지 스마트폰의 용량만 차지하면서 묵혀만 뒀다.(스토리를 음미하면서 즐겨야하는 게임임에 따라 개발자 의도가 듬뿍 담긴 번역은 필수다! 라고 하소연해보고 싶다.) "PC버전도 한글화가 진행되었으니, 언젠가 모바일 버전도 한글 패치를 해주겠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완전히 잊혀진 게임이 되었다.
한 날은 스마트폰 내에 불필요한 어플을 지우고자 살피다가 잊고 있었던 비홀더 어플리케이션을 발견하게 되었다. 감시카메라 모양을 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어플리케이션의 아이콘. 지금쯤이면 한글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실행시켰다.
"아! 모바일도 한글화가 되었다!"
그렇다. 업데이트 내역을 살펴보니 지난해 11월 21일, 2.4 버전 업데이트를 통해 "Added the Korean Language"를 확인했다. (애플스토어 기준) 무료한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게임이 생긴 것.
지난해 11월, 한글화 업데이트가 진행되었다 = 게임조선 촬영
서론이 너무 길었다. 위에서 밝혔듯이 비홀더는 전체주의와 독재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꼬집는,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또, 게이머의 행동과 결정에 따라 전혀 다른 엔딩을 맞이하게 되며 흘러가듯 만나는 NPC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 좀 더 내용을 스포일러하자면,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거나 독재정권에 맞서는 반정부 단체의 숨은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비홀더의 핵심은 CCTV를 통한 세입자 감시 = 게임조선 촬영
게임의 이야기는 주인공 캐릭터 '칼 스타인'이 허름한 아파트의 관리인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해당 아파트의 세입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국가로부터 하달받게 되는데, 국가는 원활한 감시를 위해 칼 스타인에게 수면 억제제를 주입했다고 설명한다. 덕분에 칼 스타인은 다른 사람 (가족 및 세입자)들과는 다르게 잠을 자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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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건물 관리자로써 세입자를 감시하는 임무를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 = 게임조선 촬영
주인공은 건물 관리자로써 세입자를 감시하는 임무를 정부로부터 받게 된다 = 게임조선 촬영
비홀더의 암울한 분위기는 게임 시작부터 등장하는데, 칼 스타인 이전의 건물 관리자가 정부 경찰에 끌려가서 고문 당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칼 스타인이 세입자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을 경우에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침체된 분위기는 캐릭터와 배경, 폰트 등의 표현에서도 묘사되어 있다. 캐릭터는 흑백으로만 표현되어 있어 전혀 표정을 확인할 수 없으며 힘없는 발걸음을 가졌다. 또, 게임의 주무대인 D등급 아파트 뒤는 뿌연 스모그로 가득하다.
이전 건물 관리자가 고문 당하는 모습은 곧, 칼 스타인의 미래일 수도 있다 = 게임조선 촬영
그리고 점차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암울한 현실을 소소한 스토리로 경험하게 된다. 칼 스타인, 즉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든지, 선량한 이웃 주민이 정부 경찰에게 끌려가기도 한다. 또, 세입자에게 얽힌 말 못할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을 겪는다.
이웃사촌을 고발해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게임의 진행은 단순하다. 세입자가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잠시 떠났거나 아파트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세탁기 또는 부엌을 이용하는 등 집을 비웠을 때 그들 집의 문을 따고 들어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행동을 감시하면 된다. 또, 세입자의 소지품을 몰래 뒤져서 그들의 취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독재 정부가 규정한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전화기를 통해 부처에 보고하면 된다.
문을 따고 들어가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세입자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 게임조선 촬영
이외에도 세입자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것도 가능하며, 게이머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세입자의 집에 정부가 금지한 물품을 고의로 가져다 놓고 고발할 수도 있다. 물론, 세입자의 불법 행위를 묵인할 수도 있으며 묵인의 대가로 협박해 큰 돈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게이머는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칼 스타인의 행위 하나 하나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직접 플레이해본 후 엔딩이 되어서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칼 스타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엔딩도 존재 = 게임조선 촬영
독재 정권과 전체주의의 탄압 및 부조리에 대항해 선량한 국민들의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독재 정권으로부터 제공받는 권력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면서 가정의 가장으로써 의무를 다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게임 플레이 내 행동과 결정이 점차 쌓여 엔딩으로 보여지게 되므로 작품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명확하다.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발번역'. 진행에 있어서 스토리 몰입이 매우 중요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멘트로 분위기를 된통 깨버린다. 더욱이 PC버전에서 논란이 되었던 번역을 모바일 버전에도 픽스없이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것은 질타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개발을 하는 인디 게임사의 작품인 만큼 약간의 까방권은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본 작품의 개발사인 'Warm Lamp Games'가 열악한 환경을 가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추측일 뿐...)
아들에게 존댓말하는 아빠, 아빠에게 반말하는 아들의 흔한(?) 대화 = 게임조선 촬영
'빅 브라더'와 '디스토피아'. 중학생 때 처음 접했던 용어였다. 그 당시에는 이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결코 흥미롭지도 않았다. 막연히 흘려 들었던 딱딱한 개념이다. 만약 그 때 이 게임으로 빅 브라더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 게임의 연령 등급은 구글 스토어 기준 '만 17세 이상', 애플 스토어 기준 '만 12세 이상')
단지 오락성으로만 평가받기 쉬운 게임이라는 문화 콘텐츠에,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큰 의미를 담아냈기에 비홀더라는 작품의 가치는 높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 및 상황 표현은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화려한 액션성과 아름다운 그래픽은 없다. 하지만 진중한 이야기와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진 인디 게임 작품 '비홀더'다.
작품성과 재미를 함께 갖춘 모바일 게임을 찾고 있다면, 꼭 해당 작품을 즐겨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