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내 SK핸드볼경기장에서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이하 VCT)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리그 '퍼시픽'의 2024시즌 2스테이지 결승 진출전이 열렸다.
결승 진출권을 두고 자웅을 겨룬 두팀은 디알엑스(DRX)와 페이퍼 렉스(PRX)였다. 정규 시즌의 플랫폼이 그룹을 알파-오메가 둘로 양분하여 반대편 그룹만 상대하던 방식에서 이전의 통합 리그 형태로 회귀했지만 양 팀은 1스테이지와 같이 1경기 차이로 순위가 바뀔 수 있는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규시즌 4위였던 젠지(GEN)가 Bo3 라운드에서 상대를 전부 엎어버리는 저럭을 발휘하며 파죽지세로 결승에 진출했고 DRX와 PRX 모두 GEN에게 발목을 잡히며 결승전의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게 됐다.
경기 시작 이전 전반적인 지표는 챔피언십 포인트와 별개로 PRX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2강 체제긴 했어도 승점 차이가 상당히 나고 있을 정도로 DRX는 매 라운드마다 경기력에서 요동치는 기복을 보여준 반면 PRX는 모두 스윕이 날 정도로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계진에서 PRX의 결승 진출을 점치는 방향으로 의견이 좁혀졌으며 그나마 시청자 및 AI과 더불어 채민준, 김수현, 정용검 캐스터만이 전장 상황에 따라 DRX의 손을 들어주는 정도였다,
양팀은 '헤이븐'과 '선셋' 전장을 제외 처리했다. PRX 측에서 놀랍세도 1세트 전장을 '어비스'로 선택하여 정면 승부를 예고했고 DRX는 망설임 없이 '로터스'를 골랐고 PRX가 자신감을 내비치는 '아이스박스'가 돌아오기 전에 게임을 끝나겠다는 심산으로 '바인드'를 넘겨받았다.
DRX가 사전 예상대로 로터스에서 기선제압만 확실하게 된다면 스윕을 노려볼 수 있는 구성이었고 만약 잘 풀리지 않더라도 세트 승패를 주고 받으며 동률만 기록해도 PRX가 가장 약하다는 '어센트'까지 끌고 갈 수 있어 기선제압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양 팀의 키 플레이어로는 플래시백(조민혁)과 다바이(할리시 루샤이디)가 꼽혔다. 분석데스크에서는 스탯 상의 특이점보다는 에이밍 이상으로 다양한 요원 풀을 소화할 수 있는 숙련도를 통해 양 팀에서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의 다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들어볼 수 있었다.
■ 1세트 '어비스'
1세트부터 PRX는 요원 조합에서 감시자 포지션을 일절 배제하고 네온과 피닉스라는 더블 타격대를 기용한다. 특히 사이트 침투 측면에서 감시자 하나로는 사각을 전부 커버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선공을 잡은 상태에서 밀고 들어가면 뚫는 힘은 파괴적이지만 반대로 공수가 바뀌었을 때 뒤가 없는 리스크가 위험요소였다.
실제 경기 양상은 사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팀 모두 오멘을 A사이트에 배치하고 미드와 B사이트에서만 힘싸움을 주로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사이퍼에게 루트가 포착되면 허무할 정도로 PRX가 쉽게 쓰러지고 뚫리기만 하면 그대로 DRX가 쓸려나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후반 라운드에서 수비조인 PRX가 수비적으로 플레이하여 스파이크 공방까지 갈 생각이 없다는 듯 도서관 방향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나오며 DRX의 동선을 크게 제한했고 이 과정에서 피스톨 단계에서 3연속, 4연속 킬을 기록하는 섬띵(일리야 페트로브)의 무결점 플레이로 스노우볼이 크게 굴러간다.
이로 인해 자금력의 차이로 DRX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사이트를 뚫어낸 폭시나인(정재성)의 캐리로 승리를 기록한 17라운드 외에는 DRX가 패배를 누적하며 7:13 스코어로 PRX측이 스무스하게 1세트를 따낸다.
■ 2세트 '로터스'
PRX 측에서 1세트와 비슷한 테마로 요원을 조합하며 감시자를 제외하고 피닉스를 제트로 대체하는 정도면 비슷한 기조를 유지한 반면 DRX는 플래시백에게 체임버를 쥐어주며 크레딧을 끌어써서라도 헤드헌터를 사용해 피스톨 라운드를 확실하게 따내면서 스노우볼링을 막겠다는 의도로 PRX 이상의 공격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당 전략은 1라운드부터 제대로 어그러졌다, 베인(강하빈)의 페이드가 섬띵의 제트를 원탭으로 끊어낸 것 까지는 좋았으나 C루트에서 다바이를 미끼로 던져주고 찡(왕징제)의 네온이 베인과 플래시백을 전부 쓸어담는 PRX의 고육책에 말리면서 피스톨 단계를 PRX가 완승으로 끝냈고 이후 라운드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PRX 측이 라이플을 모두 온존한 탓에 체임버의 기용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
그나마 후반 라운드에서는 피스톨 단계부터 DRX는 연승을 따내며 조합의 의미를 살려 8:8 스코어까지 따라붙는 모습을 보여줬다.
허나 17라운드에서 마인드프릭(애런 레온하트)의 오멘이 장거리 어둠의 장막을 치며 B사이트를 막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블러핑을 걸고 네온이 체임버를 끊어내고 오히려 상대 연막을 뚫고 들어가 오버드라이브로 남은 4명까지 쓸어담으며 올킬을 해버리는 캐리로 전의를 완전히 꺾어놓는데 성공한다.
이후 1세트와 비슷한 양상으로 모든 라운드를 PRX 측이 쓸어담으며 2:0까지 세트스코어 차이를 벌린다.
■ 3세트 '바인드'
양 팀 모두 이전까지의 세트와는 다르게 팀의 색깔을 살리기보다는 바인드 전장에 최적화된 게코-바이퍼-레이즈로 조합을 재편한다. 그 와중에 PRX는 이번에도 포세이큰(제이슨 수잔토)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요루를 채용하는 강수를 둔 것이 눈에 띄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포세이큰의 요루는 아쉬운 선택이 됐다. 개인의 기량은 MVP를 따낼 정도로 출중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기만과 기습을 통한 정보전 능력이 무색할 정도로 쌍끌이 포지션인 찡의 레이즈가 ACS가 가라앉으며 침묵해버린 것이 컸다.
반면 DRX는 그동안 잠잠했던 마코(김명관)이 엄청난 활약으로 세트 승을 견인하며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특히 매치포인트인 23라운드에서는 2:5의 수적 열세인 교전 상황에서 연막 내부에서 오직 사운드 플레이에 의존한 블라인드 샷으로 3명을 처리해버리고 궤도 일격으로 심리전을 건 뒤 다시 연막 안으로 상대를 끌어오는 강심장 플레이로 5명을 전부 잡아내며 MVP로 선정됐다.
■ 4세트 '아이스박스'
이전 세트들과는 다르게 양 팀 모두 평이한 요원 조합이 나왔다. 그 와중에 DRX는 그동안 조합의 핵으로 사용하던 클로브를 내리고 게코를 넣으면서 연막 하나를 빼는 대신 체급과 교전력을 끌어올리는 선택을 했다.
이를 통해 DRX가 이전 세트들과는 달리 클러치에 의존하지 않고 정면 힘싸움에서 PRX를 압도하는 양상이 여럿 나왔고 4:3 상황에서 PRX가 먼저 타임아웃을 걸고 작전 회의를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해당 전략에 대해 PRX는 패스트 오퍼레이터를 확보하여 타격대에게 밀어주는 방식으로 화답한다.
DRX 측은 클로브를 기용한 시야 차단과 동선 제한으로 정돈된 플레이 전략에만 최적화된 움직임을 보여줬기 떄문에 이른 타이밍에 비상식적인 기동성과 원탭 게릴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취약점을 노출하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전에 특화된 PRX 특유의 플레이를 벤치마킹하여 베인, 마코, 버즈를 차례로 미끼로 던지고 플래시백-폭시나인이 쓸어담는 패턴으로 점수를 뒤집어 2:2 스코어로 맞추는데 성공한다.
4세트의 MVP는 통산 1,000킬을 달성한 폭시나인에게 돌아갔다.
■ 5세트 '어센트'
PRX는 사이트가 2개라는 전장 환경을 레이나-레이즈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하버를 가져왔고 반면에 DRX는 어느정도 안정성을 중시한 조합을 구성한다.
PRX 측에서 엇박자로 개별 돌파를 시도하던 이전까지와 다르게 하버의 만조 타이밍에 한꺼번에 치고 들어가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줬으나 DRX 측에서 오히려 만조가 깔리면 먼저 뚫고 나가면서 핵심 스킬 하나를 효과적으로 무력화하는 파해법을 제시했고 양각을 담당하는 마코와 버즈(유병철)이 환상적인 호흡으로 조이기를 성공하며 4:1까지 라운드 스코어를 가져간다.
특히 DRX는 교전력이 굉장히 좋아지며 자신감이 생겼는지 9라운드, 11라운에서는 크레딧을 충분히 들고있음에도 굳이 피스톨을 들고 승리하면서 절약왕을 기록하는 여유를 보여줬고 13:7로 마지막 세트를 가져가며 패패승승승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