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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조선은 대중성 있는 기자가 없다.”
경력직 취재 기자가 새로 들어온단다.
템즈(Temz). 당시엔 일부 게임 전문 웹진에서는 기자의 웹 활동 닉네임이 더 많이 알려진 케이스가 있는데 그런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인상은 좀 사나웠다.
젊었었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10년 전이었으니. 젊었을 적 그의 성격은 엄청나게 의욕적이고 또 불같았다. 그는 술을 엄청 좋아했다. 그는 삽시간에 술친구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밤중에 술에 취해 사무실에 들렸다. 오 밤중에 술에 취해서도 회사에 복귀하는 그도 대단했고, 새삼 그런 그를 회사에서 마주했던 당시 게임조선의 야근력도 대단했구나-싶다.
“게임조선은 대중성 있는 기자가 없다.”
그가 술자리에서 던진 화두는 파격적이었다.
옳은 얘기였지만 그렇다고 왕도는 없는 얘기였다. 더구나 몸속 꽉 찬 직구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시에 내일 누구 하나 짐 싸려고 그러나 싶을 정도로 심한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
사실 지금까지 쭈욱 돌이켜보면 그때 그 사람들 다 싸서 나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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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런 자리는 평생 가져가자.”
그는 업으로는 선배였고, 나이로는 형이었다. 생각해보면 그와는 참 많이도 다퉜다.
그의 성격이 좋으냐, 나쁘냐 떠올려보면 사실 후배 입장에서는 고약한 편에 속했는데 평소 발끈하는 성질을 생각해보면 그와 시시때때로 다투고도 십 년을 같이 일했다고 하면 아마 믿지 못할 사람이 많을 터다. 실제로 업무가 완전히 갈라진 초기에는 몇 년 간 말 한마디 없이 지낸 기간도 길었다.
어쩌면 계속 다투어 왔기 때문에 십 년을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한 회사, 한 사무실, 한 부서에서 십 년. 뻥 조금 보태면 학업을 빼면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낸 셈.
이것과는 별개로 회사 내에 그가 마음 터놓고 지낼 대상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가 장으로 있던 취재부는 이직이 잦았고,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를 어려워했다.
술자리를 좋아하던 그가 야근 이후 가볍게 술 한잔하자고 권할 상대가 사무실에 없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겠지. 그래서 더 내근 부서와 자주 자리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이런 자리는 평생 가져가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는 회사 내 술자리에서는 말이 별로 없는 편. 정확히는 분위기를 지켜보는 편이었는데. 구석에서 짠-만 받아주며 조용히 있던 그는 항상 술자리 끝에 전봇대 한켠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모든 감정 뒤로하고 찡할 수밖에 없지. 그는 이런 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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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일로 쪽팔리기 싫어서.”
그는 힘든 시기에 편집장을 맡았다. 급격한 인원 확충으로 회사에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많아졌었고 전문가랍시고 뽑았지만 서로 다른 분야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한 이들 간의 불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분쟁 아닌 분쟁, 분열 아닌 분열로 시니어급 이탈도 많았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새는 바가지. 최근까지도 계속 골칫거리였다. 그의 임기 내내 몇 번이나 팀이 물갈이 됐는지, 매년 팀 리빌딩을 PT로 준비했어야 하는 그의 스트레스 얼마나 극심 했을 지 사실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오랜 지론과 달리 안하무인에 쌈닭 같았던 첫 인상에서 슬램덩크 북산 안 감독님 같은 파격적인 변신에 성공했다. 그 큰 사례로 적어도 그가 사무실에서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특히,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는 '홋홋홋, 아주 좋아요. 백호 군.' 하고 칭찬해 넘기기 일쑤였다.
“형 잘 참네. 예전 같으면 다 뒤집어엎고 한바탕했을 거 같은데.”
“그런 일로 화내면 쪽팔리잖아. 내가 선택한 일로 쪽팔리기 싫어서.”
그 이유로 단순히 업계 선배임을 떠나 회사의 방향을 책임지는 한 사람이 됐기 때문에 개인이 벌인 일에 개인이 가진 화를 표출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서 들어온 회사, 자신이 가르치고 행한 일로 벌어진 일들에 스스로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얼핏 보면 호구였다. 그리고 잘 보이는 곳에 안주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밖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지도 모르겠다. 나와 자주 다투는 건도 그 비슷한 일들이었으니까. 그가 준비 없이 허망하게 떠난 이후 그의 롤을 일부 대신하고 있다 보니 그가 무슨 심정이었을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더라.
그래도,
차라리 원래 성질대로 한껏 성질부리는 그를 봤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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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너희가 나 먹여 살려.”
십 년을 일해도 사무실 비밀번호도 제대로 못 외우던 그와, 십 년을 일하고도 카메라 들고 밖에 나가길 귀찮아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더부살이를 했다. 그는 천성이 바깥양반, 난 안사람 역할이 잘 맞았다.
오랫동안 부서도 달랐고 신경 써야 하는 분야 자체가 달랐다.
서로 간에 오해도 많았고, 그만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만한 사항도 많았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서로 간에 눈치 볼 것 없이 대화가 편해지고 말이 많아졌을 때 즈음 그는 이미 생불(生佛) 모드였는데,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선문답을 자주 했다.
그는 참 긍정적이었다. 우리가 1층 경비실을 밀고 토스트집을 차리겠다고 해도 뭐든 잘 될 거라고 했다. 우리가 평생 가도 모를 식견이 있어서 긍정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부터 그는 우리가 하는 일에 태클을 거는 법이 없었다. 우리가 진짜 뭐라도 해내 줄 것처럼 대했다.
“형, 우리 이제 뭐해 먹고 살아?”
“올해는 내가 책임질게. 내년에는 너희가 나 먹여 살려.”
그것이 그의 굳은 믿음이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그는 살을 뺀다고 하더니 살을 뺐다. 요리를 배우겠다고 하더니 요리를 곧잘 해서 가져오고, 한때는 직접 담금주를 빚어 숙성한 독한 술을 나눔 하더니, 어느 날은 한정판 굿즈를 여럿 구해 나눠주기도 했다. 당시의 그는 사적인 면에서는 뭐든지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할 일을 다 하면, 다른 이들도 자신의 일을 다할 것이고 회사는 결국 좋은 길로 가고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찾을 것이란 원더랜드적 생각이 강했다. 필요 없는 잔가지, 노는 일손은 다 쳐내야 한다는 나와는 사뭇 다른 가치관이었다.
우린 아직 그가 추구하던 방향의 끝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 방향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움직이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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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제 네 글 다시 시작해야지.”
서로 간에 업무적 영역를 넘거나 서로의 일에 있어서는 섣불리 말을 보태는 법이 없었으므로 십 년을 같이 했어도 회사 동료보다는 술친구에 가까웠다. 정확하게는 낮술 친구. 점심 반주로 7~8병씩 까고 사무실에서 까무러치는 사이가 아마도 흔치는 않겠지.
늘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양반이 유독 자책이 많았던 날. 안주는 아마 굴전. 막걸리를 마시다가 배부르다고 소주로 바꿨었지 싶다.
“이번에 생각해본 게 있는데, 너도 이제 네 글 다시 시작해야지”
난 당시 이전 책임자와의 불화를 이유로 기명으로 기사를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확장 중이었던 신규 사업도 중요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너무 오래 쉬고 있었던 지라 어쨌든 싫다고 했더랬다. 그날도 술이 술을 불렀다.
목격자에 의하면 벌건 대낮에 태평로 한복판에서 남자 둘이 두 손 맞잡고, 서로 엉엉 울며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니 둘 다 서로 어지간한 고해성사를 했던 모양이다.
우린 늦게나마 그가 기획했던 리뷰 코너를 시작했다.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니, 그가 너무 일찍 떠났다. 그는 1편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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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술자리는 2018년 종무식이 마지막이었다.
생일이 1월 1일인 탓에, 카톡 한번 살갑게 보냈으면 될 일을 한 번도 제때 생일 축하를 해준 적이 없는데,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기대해 마지않던 어벤져스:엔드게임의 결말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좋아하던 와우 클래식은 재미있게 즐기고 있는지,
지금 그곳에서도 레고와 베어브릭스는 계속 모으고 있는지,
그가 직접 담아 선물해준 ‘삼지구엽초’ 담금주는 그 뒤로 열린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남은 술을 전부 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