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에서는 슈퍼스타 페이커(이상혁 선수)에 대항할 수 있는 차세대 미드 주자가 누굴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오간 바 있다.
그 중에서 2015 시즌 두각을 드러낸 미키(손영민) 선수는 강력한 메카닉을 기반으로 고점을 찍을 때는 페이커조차도 찍어누르는 라인전 능력을 보여주고 불리한 상황에서조차 절대 몸을 사리지 않으며 플레이메이킹을 시도하는 도박사와 같은 면모 덕분에 '주사위형 미드', '사행성 미드'라는 별명과 함께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그런데 돌연 해외로 진출했던 미키가 한국 LCK 무대로 다시 돌아왔다. 과연 최근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게임조선에서는 미키 선수를 만나 근황과 함께 LCK에 복귀한 이유를 물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다 = 게임조선 촬영
Q. 오랜만에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최근 어떻게 지냈는지 들어보고 싶다.
그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긴 휴식을 취하면서 스트리머 활동을 했다.
솔직히 여기서 은퇴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APK 프린스에서 재입단 제의가 와서 이대로 이룬 것 없이 은퇴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이야말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프로 생활에 도전하게 됐다.
Q. 한국, 중국, 북미, 유럽을 모두 거쳐 본 흔치 않은 선수인데 어떤 지역이 가장 좋았던 것 같나?
환경 자체는 미국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숙소도 그렇고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하는 편이다. 한국은 비교적 헝그리 정신으로 팀을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북미에서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일정도 굉장히 여유로웠다.
물론, 자율을 강조하는 만큼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 게 관건이었다. 자유 시간이 많으니 이 시간에도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들이 보통은 좋은 성적을 냈다.
Q. 이번에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APK 프린스로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것이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은퇴를 고려하며 스트리머 생활을 하고 있던지라 FA 공시도 안 했고 따로 팀을 물색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 은퇴한 '프로즌'(김태일) 선수의 말마따나 프로생활에 지쳐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APK에서 여러 번 러브콜이 왔다. 몇 번을 고사했음에도 김산하 감독님이 포기하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후회가 남지 않겠냐고 많이들 조언해줘서 은퇴를 하겠다는 결심이 흔들렸다. 그래서 은퇴 직전까지 내 마지막을 한국에서 불태우고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에 재입단 요청에 응했다.
APK 프린스가 2부 리그인 챌린저스에 있던 시절 잠시 미드로 활동한 바 있다 = 게임조선 편집
Q. 2019 시즌 중 APK 프린스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떄와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일단 숙소나 연습실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다. 선수단도 전체적으로 밝아진 느낌이다.
팀 컬러는 비슷했던 것 같다. 예전에도 '퓨리'(이진용) 선수가 있던 바텀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고수했는데 지금도 '하이브리드'(이우진) 캐리 위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 같다.
Q. 아나키-아프리카 프릭스 시절부터 함께한 영혼의 듀오 '익수'와 1년만에 다시 만났다.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익수'(전익수) 형은 같이 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즐겁고 하이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예전부터 '되든 안 되든 지옥으로 돌격한다'는 내 플레이스타일에 추진제가 되어주고 있어 시너지가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물론 거침없이 돌격하는 플레이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플레이메이킹을 시도할 때 적어도 콜이 갈리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경우도 적지 않았기에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선수간의 색채가 맞는는 게 팀 호흡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Q.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현재 팀의 장점은 무엇인가?
팀 자체의 분위기가 항상 들떠있다. 이게 언뜻 보면 집중력의 결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프 더 레코드를 들어보면 느낄 수 있듯이 이길 때 느끼는 행복함은 프로 생활에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게임을 답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LCK에서 지고 있는 팀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쭈그려져 있지 않고 싸움을 걸 수 있다는 건 다른 팀에서 따라올 수 없난 APK 프린스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만 무언가를 시도하면 그냥 게임을 집어 던지는 '구멍'으로 취급받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다 같이 들어가는 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합숙 생활 하루만에 기존 선수들과 위화감 없이 섞여들어가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 게임조선 촬영
Q. 이번 서머 시즌 팀 성적을 주관적으로 예상해본다면?
전혀 예측이 안되는 팀이다. 진짜 모르겠다. 스프링 시즌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이브리드가 엄청난 캐리력을 가지고 있어서 잘할 땐 젠지, 디알엑스 같은 강팀도 모두 잡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나키-아프리카 프릭스 시절엔 보통 내가 캐리 역할을 수행했는데 최근 스크림을 하면서 하이브리드의 캐리에 업혀가며 '이런 게 버스에 탄다는거구나'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웃음)
Q. 현재 로스터에만 등록된 미드라이너만 4명이다. 자신의 강점을 어필해본다면?
되게 진부할 수는 있는데 경험이라는 게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내 스스로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무렵 임팩트(정언영) 선수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
노장 선수가 피지컬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전황을 컨트롤 하는 능력은 경험에서 나오는 거라 신인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재 APK 프린스의 다른 미드 선수들과 나를 줄세우더라도 경험에서 나오는 관록만큼은 내가 앞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현 LCK에서 자신이 미드 라이너 중 몇 위 정도라고 생각하나? 그 이유도 들어보고 싶다.
주관적으로라도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가 좀 어려운 것 같다.
솔직히 말한다면 오랜만이라서 내가 LCK 레벨에서 얼마만큼 통할지 확신이 없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옛날에는 이런 질문에 거침없이 막 지르곤 했는데 지금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질러야할 것 같고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경기를 통해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Q. 예전에 사용한 제드, 아리와 같은 나만의 필살기를 따로 준비해둔 게 있나?
전략전술적인 문제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있다.
사실 이런거는 없어도 있다고 하는 게 다른 팀들이 의식하게 만들 수 있으니 그렇게 답해야 하는 사안이다.(웃음)
Q. 예전 애칭인 '사행성 미드'로 불린 자신의 고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가 없었다. 어떤 선수도 주사위에 엮이면서 기복이 있다고 듣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마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APK 프린스 유니폼을 입고 임하는 마지막 프로생활에 대한 열의를 밝혔다 = 게임조선 편집
Q. 서머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들어보고 싶다.
지금 나 자신이 프로선수 생활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고 실제로도 커뮤니티나 업계에서 평가가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의 대부분 '지금와서 뛰는게 무리 아니냐'고들 한다.
그런데 차라리 그런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게 좋다. 그렇게 낮은 기대치를 품고 나를 봐준다면 오히려 그런 평가를 단숨에 뒤집을 기회라고 생각하기에 마지막 남은 프로 생활을 최대한 오래 지속하고 멋지게 끝내기 위해서라도 실력을 갈고 닦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 한국에 있을 때보다 팬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항상 응원해준 팬분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는 '늘 고맙고 LCK에 와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서 행복'하다 말씀드리고 싶다.
프로게이머로 산다는 게 경기를 이겼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도 좋아하는 팬들이 있다는 데서 얻는 기쁨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