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3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하스스톤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블리자드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준 동시에 리그오브레전드, 오토체스 등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많은 게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에서는 여전히 밀리와 래더 게임이 현역으로 굴러가는 국민 게임으로서의 위상이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 발표 이후 많은 팬들이 워크래프트의 리마스터를 기대해왔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워크래프트3 원작과 확장팩을 합쳐 현세대에 맞게 새로 만든 그 작품 워크래프트3:리포지드(이하 리포지드)가 정식으로 발매됐다.
그러나 처음 기대와는 다르게 리포지드에 대한 실제 반응은 시원치 않은 것을 떠나서 비판 내지는 조롱에 가까운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메타 크리틱 점수는 10점 만점 기준으로 평작 이하라는 4.2점을 받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으며 게이머들은 수시로 사기당했다고 자조하거나 리포지드와 관련된 짤방을 쏟아내며 웃음벨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17년의 시간을 넘어 돌아온 리포지드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점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일까? 게임조선에서는 워크래프트3:리포지드를 직접 플레이해보고 느낀 점을 가감 없이 적어보려 한다.
■ 나무에만 집착한 나머지 숲을 보지 못한 캠페인
대외 홍보용 이미지로 자주 쓰였지만 실제로 리포지드 게임 내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장면 = 리포지드 공식 홈페이지
리포지드를 예약하거나 당일 구매한 사람들은 아마 대다수가 더욱 매력적으로 변한 '캠페인'이라는 요소에 주목했을 거라 생각한다.
일단 베타 테스트 당시 돌았던 루머와 달리 확실히 캠페인 내용에는 변화가 있었다. 원본과 달리 미션이나 컷신에서는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유닛이 사라졌고 맵의 구성이나 전개도 확실히 현재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한 정사(正史)에 맞게 고쳐졌다.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것을 의식한 것인지 현지화도 굉장히 잘 된 편에 속한다. 일단 원본인 '혼돈의 지배', '얼어붙은 왕좌' 당시 문제가 되던 오역이나 일부 호전적인 캐릭터가 지나치게 상대를 존대하는 기묘한 말투는 전부 바뀌면서 위화감이 사라졌으며 몰입감은 높아지고 전개는 훨씬 매끄럽게 바뀌었다.
쓸데없는 오브젝트가 있거나 북쪽에 진입로가 있는 오류가 있었던 원판과 달리 리포지드판 미션은 고증에 훨씬 충실하다 = 게임조선 촬영
워크래프트3의 대표 발번역 사례로 아주 유명한 '누구, 저요?' 를 포함해 많은 부분이 교정됐다 = 게임조선 편집
성우 배치 또한 생각 이상으로 치밀했던 게 눈에 띄었다. 로데론의 왕자, 죽음의 기사 시절의 아서스와 이를 유혹하는 초대 리치 왕 넬쥴 등 대다수의 성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열언을 펼친 성우들이 그대로 배치됐다.
심지어 워크래프트3 캠페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대 리치왕 등극 시네마틱에서 단 한마디뿐인 '우리는 하나다' 대사를 녹음하기 위해 넬쥴과 융합한 2대 리치 왕 아서스의 성우로 유명한 '성완경'을 불러다 녹음을 했을 정도니 그 성의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정도다.
그 와중에 시네마틱 영상에서조차 자막 깨짐이 보이는 게 킬링 파트다 = 게임조선 편집
하지만 후술할 단점이 앞서 말한 장점을 전부 가려버리는 모양새다. 우선 리포지드를 통해 처음 워크래프트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빈번히 발생하는 자막 깨짐 현상이나 캠페인 미션을 불러온 직후 계속 패배 처리하여 초기 화면으로 되돌려보내는 오류가 시작부터 감점 사유가 될 여지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 개선된 부분이 많다고는 했지만 이는 애시당초 워크래프트 사가를 엄청나게 파고든 팬들이 아니라면 의식하기 힘든 미시적인 포인트에 불과하다. 오히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적극적으로 설정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내용을 추가하거나 변경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 추가된 시네마틱 영상과 엔딩 클립 = 게임조선 편집
아서스와 일리단의 대결로 알려진 '오랜 기다림의 끝'과 같이 새로 추가된 일부 시네마틱의 경우 인게임 모델링으로 투닥거리던 원판보다 낫긴 하지만 2020년 작품이라고는 보기 힘든 그래픽 퀄리티와 연출이 안 좋은 의미에서 압권이었고 그 분량도 많지 않았다.
즉, 리포지드의 캠페인은 올드팬에게 어필을 시도했지만 그 완성도가 대단치 않았고 그렇다고 신규 유입 유저를 위한 배려나 노력도 부족했다는 소리다.
■ 17년의 간극의 그래픽은 어디로?
더욱 선명하고 강화된 그래픽을 장점으로 내세운 리포지드의 트레일러 내용 = 리포지드 공식홈페이지
캠페인의 사례를 보면 다시 게임을 만든 리포지드가 확실히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리마스터로 보기에 이 작품은 2% 이상의 부족한 점이 엿보인다.
일단 그래픽과 모델링은 확실히 나아진 부분이 있긴 했다. 애시당초 2003년 작품과 최신작을 그래픽으로 비교하는 것부터 일단 말이 안 되고 데포르메가 가미된 카툰에 가까웠던 원작과 달리 실사에 가까운 느낌을 주려는 리포지드는 방향성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샷을 보며 전체적인 색감이 무거워졌고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은 방패에서 불안감을 느꼈는데 = 리포지드 공식홈페이지
하지만 이쪽도 결국엔 애매한 완성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원작과 호환을 고려한 탓인지 엔진 자체를 완전히 엎어버리는 수준의 격변은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어설픈 8등신화와 스케일 업을 중심으로 한 그래픽 개선은 불쾌한 골짜기 현상만 유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고 해상도는 최대 1680 X 1050으로 권장 사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필요한 만큼은 보여 줬다, 이 이상의 해상도로는 보여주지 않는다 = 게임조선 편집
심지어 일부 유닛의 초상화나 스킬 연출의 경우에는 오히려 퇴보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지 못한 퀄리티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나이트엘프 파수대 일꾼 '위습'의 초상화는 원판에서는 반투명한 유닛 모델링에 도깨비불 비슷한 광원 효과를 그럭저럭 잘 끼워 맞춰 자연의 정령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신비로운 느낌을 잘 살려냈지만 리포지드를 기준으로는 그냥 푸르딩딩한 빛을 뿜어내는 머리귀신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스랄'은 무너져가던 오크 호드를 다시 세운 선견자이자 현명한 대주술사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초상화로는 그저 둔하고 멍청한 인물로 보이도록 그려놓았다.
기괴하게 표현된 스랄과 위습의 초상화 = 게임조선 편집
그 와중에 일부 초상화는 업그레이드나 스킬레벨에 따라 디테일한 부분이 바뀌며 진짜 쓸데없이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 게임조선 편집
스킬 연출은 두말할 것도 없이 원작이 압승이다. 갈퀴발톱의 드루이드(드루이드 오브 탤런)가 사용하는 주요 메즈기 회오리바람(사이클론)은 대상을 완전히 무력화하며 이리저리 흔들어놓던 다이나믹한 연출이 강화되기는커녕 정적으로 돌아가는 회오리바람 위에서 유닛이 대기모션을 취하며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검을 휘둘러 그 힘만으로 폭풍을 만들어낸다는 설정을 가진 검귀(블레이드마스터)의 궁극기는 폭풍 이펙트가 거의 사라져 검을 들고 빠르게 빙빙 도는 모습만이 남았다.
사실 칼날폭풍(블레이드스톰)은 원작에서 주위를 초토화시킬 것만 같았던 연출에 비해 실제 효과 적용 범위가 굉장히 좁은 편이었고 회오리바람은 강렬한 이펙트 때문에 눈이 피로할 수 있어 가시성을 위해 조정을 거쳤다고 실드를 쳐주고는 싶지만 이 때문에 굳이 호평받던 이펙트나 연출을 약화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타격감마저도 영 좋지 않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히오스 1승을 외치고 있다.
좋지 못한 타격감과 연출을 거론할 때 도매금으로 팔려나가는 히오스가 리포지드 덕에 재평가를 받을 정도다 = 게임조선 편집
■ 지켜지지 않은 약속, 컷신과 유즈맵
허위 광고임에도 아직도 내려가지 않은 캠페인 트레일러와 스토리 관련 추가 내용 = 리포지드 공식홈페이지
이전에도 기사를 통해 언급한 내용이지만 유저를 기만한 것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새롭게 개편된 4시간 이상의 게임 내 컷신은 물론 디아블로 이모탈 사태로 홍역을 치른 2018년 블리즈컨에서 리포지드를 유일한 희망으로 앉혀놓았던 스트라솔름 정화(Culling) 미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관련 기사 보기: 알고 보니 리스킨드? 워크래프트3:리포지드 캠페인 리메이크 취소 논란
뿐만 아니라 무한한 사용자 지정 게임(통칭 유즈맵)이라는 문구 또한 거짓이었다.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와 달리 기존 맵과의 호환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언질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텍스처가 깨지거나 빈번하게 크래시가 나고 있으며 오히려 일부 유즈맵의 경우 제3자 콘텐츠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조항 때문에 사용이 막히게 된다는 관측이 나왔다.
물론 블리자드가 아닌 타사의 상표권, 저작권과 관련된 부분은 확실히 회사 간의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라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만큼 워크래프트3의 오리지널 소스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월드 에디터의 강화가 이뤄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업그레이드되지 않았으며 이 또한 선전과는 다른 내용을 담게 된 것이다.
실제로는 인터페이스와 월드 에디터 그 어떤 것도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다 = 리포지드 공식홈페이지
심지어 위에 언급된 내용은 대부분 베타 테스트 당시 전부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바 있는 내용들이다. 원래 2019년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가 4분기 되서야 발매 연기를 공표했음에도 현재 퀄리티로 나왔다면 시간이 부족했다는 변명은 하면 안 된다.
리포지드가 장점이 아예 없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장점을 찾기 위해서는 눈을 까뒤집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현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다.
서론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대부분의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불호 쪽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에게도 대체로 악평을 듣고 있다. 그나마 높은 점수를 주는 리뷰어들도 '그저 완벽하다'고만 하거나 '불쌍해서 10점 줬다'는 식으로 비꼼에 가까운 이유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게이머들이 이 작품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오로지 '리포지드(Reforged)'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들은 1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통해 바뀌고 재정립된 설정을 말끔하게 정리해주고 2020년에 맞는 퀄리티로 리메이크된 워크래프트3를 즐기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2년을 기다렸다. 실제로 2018년 블리즈컨에서 공개된 체험판은 그런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체험판만 못한 퀄리티의 물건이 정식으로 발매됐고 기다려온 사람들은 속칭 호구가 됐다. 이런 베타 테스트판에 가까운 물건을 발매했다면 허위 광고한 부분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리던가 아니면 추가 업데이트로 이를 진실로 만들 필요가 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이 있다면 워크래프트3는 스타크래프트:리마스터와는 달리 최근까지 업데이트가 이뤄지고 있는 게임 중 하나라서 개선의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는 부분이다. 이런 미완작에도 성심성의껏 현지화와 마케팅을 하고 있는 한국 지사와 리포지드를 예약구매한 유저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면 블리자드는 빠른 시일 내에 게임을 개선하여 기대에 부응하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