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는 지난해 블리즈컨에서 게이머들의 기대와 상반되는 발표로 많은 뭇매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2019년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로 시작해야만 했다.
이러한 악평을 의식한 결과인지 2019년 블리즈컨에서는 상당히 힘을 줘서 콘텐츠를 보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아직까지 여론이 완전히 되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2019년 이후 발매가 예정된 작품들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받을만한 요소가 많다.
■ 워크래프트3:리포지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커스텀 맵인 DOTA를 시작으로 AOS 장르의 전성기를 연 워크래프트3의 리마스터작인 '워크래프트3:리포지드(이하 리포지드)가 2020년 1월 발매를 앞두고 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발매 시기가 상당히 늦어졌고 그 와중에 캠페인의 메인 스토리 흐름을 정사가 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맞춰 수정하지 않고 원작의 오류를 그대로 안고 간다거나 컷신 수정도 없을 것이라는 루머 때문에 평가를 상당히 깎아먹었다.
실제로는 4시간 이상 분량의 컷신이 새로 제작되는 등 루머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 리포지드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리포지드는 일반적인 리마스터 작품처럼 그래픽과 음성만 고치고 게임성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미 리포지드에 맞춰 래더 게임환경을 고려한 1.31 밸런스 패치가 이뤄졌고 개별 유닛은 크기만 키운 것이 아니라 모델링부터 질감까지 아예 새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영웅이라도 각기 다른 외형을 하고 있거나 여성형이 존재하는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개선된 번역과 한국어 음성 더빙이 들어간다는 점도 기대해볼 만한 부분이다. 기존 번역에서는 캐릭터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기초적인 영문 지식 부족으로 인해 '누구, 저요?(Who, Me?)', '덮개를 벗겨!(Take Cover!)'와 같은 뉘앙스가 오역이 더러 발견되고 끝내 고쳐지지 않았으나 이번 리포지드는 이미 베타 버전을 통해 개선된 결과물이 확인됐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2, 오버워치 등을 통해 검증된 블리자드 코리아의 현지화는 충분히 신뢰가 가능한 영역이라 봐도 무방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들리던 익숙한 음성과 개선된 번역은 스토리의 전달력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 리포지드 공식 홈페이지
■ 디아블로4
2019년 블리즈컨은 카운트다운이 4초에서 멈추더니 디아블로4의 시네마틱으로 오프닝을 하는 파격적인 강수가 나왔다. 이모탈 대신 4편을 맞닥뜨린 대부분의 팬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열광했고 이번 블리즈컨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행사라는 말을 꺼냈을 정도다.
막(Act) 형식으로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던 전작과 달리 오픈 월드 형식이 됐고 탈 것 시스템과 함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도입되는 등 변경점이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2편과 캐릭터와 시스템이 매우 흡사한 모습인데다가 디아블로 시리즈의 전통인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잘 유지하고 있다.
입장렉과 함께 플레이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두리엘의 공포는 재현될 필요 없다 = 디아블로4 공식 이미지
물론 전작 5막에서 '일기장'을 통해 열심히 떡밥을 살포한 릴리트를 차기 확장팩이 아닌 후속작의 메인 빌런으로 밀어낸 것이나 기획이 두 번 갈아엎어지면서 2018년에 디아블로4 대신 이모탈을 봐야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게임의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몇 번이고 프로젝트를 뒤집어 엎는 것으로 유명한 블리자드 특유의 장인 정신을 반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개발자 인터뷰에서도 급조한 프로젝트가 아니고 개발을 진행하는 내내 하루라도 빨리 발표하고 싶었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다.
이야기만 들어도 얼마나 개발자들 입장에서 속이 탔을지 알 만하다 = 블리즈컨 2019 당시 인터뷰 내용
더군다나 이번 디아블로4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바로 CD프로젝트레드 출신인 '세바스찬 스테핀'이다. 천만 장이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린 '위쳐3'와 2020년 최고의 기대작인 '사이버펑크 2077' 개발에 관여한 핵심 인력 중 하나였던 만큼 그 기획력과 게임성은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위쳐 시리즈와 사이버펑크 2077 개발을 담당했다면 절로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 링크드인 직원 정보 캡처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어둠땅
격전의 아제로스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역대 확장팩 중에서도 가장 평가가 안 좋은 작품이었다. 클래식이 현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주된 요소인 얼라이언스-호드 진영 간의 분쟁을 메인 테마로 내세웠지만 스토리 텔링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실바나스 윈드러너의 손에서 놀아난 것으로 밝혀졌고 그 강력하다는 고대 신조차 아즈샤라와 거래한 그녀의 안배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엔딩을 장식했다.
콘텐츠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신규 유저 유입을 위한 압축 작업은 사전 정보 조사가 부족했는지 레벨 스케일링을 제대로 하지 않아 숱한 전장을 넘어온 역전의 용사들이 정예도 아닌 지나가던 잡몹들을 상대로 1:1 혈투를 벌이고 전작에서 악명을 떨쳤던 유물력 노가다는 무작위 획득까지 가미된 아제라이트 방어구에서 개악되는 것으로 방점을 찍었으며 느린 업데이트로 시간을 끄는 것은 덤이었다.
그만큼 이번 블리즈컨에서 공개된 어둠땅에 기대를 걸고 있는 와우저들이 많다. 일단 시나리오 집필진의 편애가 너무 심해 메리 수 논란이 나올 정도였던 실바나스 윈드러너는 확실한 악역 포지션으로 내세워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하여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게 확실한 동기 부여를 했다.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합심해서 노스랜드로 실바나스를 레이드 간다고 하니 리분이 생각나는 전개다 = 어둠땅 공식 트레일러
죽음의 기사는 특정 종족만 선택할 수 있다는 제한을 풀었고 제작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전설 아이템과 이전 확장팩의 전설 아이템을 형상변환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되는 등 적어도 차기 확장팩은 유저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내용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심지어 유물력 시스템을 삭제하고 쐐기돌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주간 보상이 무작위 획득이 아닌 선택지 형식으로 바뀌고 굳이 쐐기돌이 아니어도 어둠땅 관련 콘텐츠라면 주간 보상 획득 조건을 만족할 수 있어 최고 레벨 달성 이후에는 숙제에 가깝다는 평을 듣던 지루한 반복 플레이 양상도 사라질 확률이 높다.
어둠땅의 주요 시스템 변경점 소개 = 블리자드 공식 포럼
■ 오버워치2
오버워치를 즐기는 팬들은 이번 블리즈컨 이전까지 1년마다 시즌 한정 이벤트인 '기록 보관소'로만 풀어내는 지지부진한 전개와 미디어 믹스로만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스토리에 대해 대부분 회의적인 시선으로 전망을 관측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시네마틱과 연출 그리고 세계관에 매료되어 이 게임을 시작한 유저의 수가 적지 않은 만큼 이는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직까지 오버워치 본편에서는 솜브라가 실낱같은 단서를 잡은 탈론의 배후 세력 정체는커녕 블랙워치의 내막이 밝혀진 '응징의 날'에서도 오버워치의 진짜 해체 원인은 결국 끝까지 묘사되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서 모든 사건의 중심부에 있는 저 눈동자 마크는 무슨 세력인 것일까? = 솜브라 배경 이야기 영상
당연히 이번 오버워치2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캠페인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웠으니 유저들이 알고 싶어했던 내막은 금새 밝혀질테고 오버워치2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오버워치 조직과 크게 연관이 없던 세력도 2차 옴닉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 또는 공조를 한다는 전개를 펼쳐 스토리에서 겉돌던 영웅들이 중심에서 활약할 여지가 생겼다.
오버워치와의 공조로 제대로 전투복을 갖춰입은 루시우 = 오버워치2 공식 이미지
뿐만 아니라 트레일러에서 소전, 에코가 직접 출연하면서 보다 활발한 영웅 출시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신규 영웅들의 추가는 1편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당연히 PvP 위주로 플레이하는 1편 유저 입장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며 별도의 영웅 임무 추가로 게임 내 PvE 콘텐츠로 모든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등 잘 짜여진 설계도 돋보인다.
첫 공개는 폭풍의 서막 아케이드였지만 결국 정식 영웅 추가는 2편이 먼저다 = 오버워치2 공식 이미지
블리자드 = 제공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