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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조선통신사] 소닉 유전자? 과학, 의학에서 화제가 된 게임 관련 작명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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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소닉 헤지호그 단백질에 대해 알고 있는가?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름에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듯 이 단백질의 이름은 세가의 간판 비디오 게임 시리즈 캐릭터인 초음속의 파란 고슴도치 '소닉 더 헤지혹'에서 유래한 과학, 의학 용어다.

과학자들이 초파리를 통한 연구 과정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한 개체의 몸에 돌기가 솟아난 것을 보고 고슴도치가 연상된다는 의미에서 3개의 단백질에 고슴도치의 영문명인 '헤지호그(Hedgehog)'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이 엉뚱한 작명의 시작이었다.

하버드 의과 대학의 발생유전학자 클리포드 타빈은 새로 발견한 헤지호그 유전자군의 작명에 실제로 존재하는 고슴도치인 인디언 헤지호그, 문랫 헤지호그, 데저트 헤지호그의 이름을 제시했다.

하지만 타빈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던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로버트 리들은 새로 발견한 유전자에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지시를 거부하고 세가의 게임 캐릭터인 '소닉 헤지호그'의 이름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1994년 당시 SHH(소닉 헤지호그 단백질)의 발견을 알린 뉴욕타임즈 기사

소닉 헤지호그 단백질은 포유류의 수정 과정에서 두뇌, 사지와 같은 주요 기관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지라 그 인지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때문에 위와 같은 작명 과정이 딸이 플레이하고 있던 게임 내지는 딸이 보고 있던 만화인 소닉에서 유래했다고 와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그 실상은 그냥 겜덕이 흥미 본위로 게임 용어를 가져다 붙인 사례였던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 같은 하버드 의과대학의 연구진 중에서는 소닉 헤지호그 유전자의 억제하는 새로운 물질에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빌런 캐릭터 이름에서 유래한 로보트키닌(Robotnikinin)을 붙이는 맞불(?)을 놓기도 헀을 정도인데 놀랍게도 과학, 의학에 게임 관련 이름을 가져다가 붙이는 사례는 고작 여기서 끝이 아니다. 특히 포켓몬스터 덕후(통칭 포덕)들은 이 방면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유로사이언스의 2008년 8월호는 피카츄린의 발견을 가장 큰 화제로 뽑았다

첫 번째 사례로 소개할 피카츄린(Pikachurin)은 안구에서 빛을 인식하는 망막의 신경 회로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이름이다. 2008년 7월 오사카 바이오 사이언스 연구소의 후루카와 타키하사의 연구팀이 존재를 밝혀낸 신물질로 우리의 눈이 받아들인 빛의 정보를 신경세포에서 인식할 수 있는 전기신호로 바꾸고 있어 가장 유명한 전기 포켓몬인 피카츄의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아마도 팀 전원이 일본인이었고 피카츄가 귀여우니까 이러한 작명 과정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일까? 피카츄린은 커피에서 유래한 카페인처럼 원본이 되는 단어인 피카츄에 접미사인 '-lin'을 붙이는 정도의 선에서 일사천리로 이름이 지어져고 정식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아이로닥틸루스의 화석,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 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됐다고 한다

쥐라기 후기 유럽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익룡 아이로닥틸루스(Aerodactylus) 또한 포켓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국의 포켓몬스터 현지화의 명칭에서는 아이로닥틸루스와 관련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법한 사람이 많은데 이 작명 역시 양덕의 소행이기 때문이다.

아이로닥틸루스의 원본은 '프테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익룡을 모티브로 한 1세대 화석 포켓몬이다. 작명에 대해서는 외부에 발표할 때에는 바람과 손가락을 의미하는 Aero와 Dactyl을 조합했다고 밝혔고 실제로 원종인 최초의 익룡 프테로닥틸루스의 존재 때문에 익룡 이름에 '닥틸'이 들어가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 프테라의 영문명이 아이로닥틸(Aerodactyl)이었다는 점


실제로 구글에 아이로닥틸루스의 영문명을 검색하면 어원이 되는 아이로닥틸로 교정을 시도한다(...) 

프테라는 사실 어딘가 나사 빠진 기술 배치와 특성 때문에 실전 성능은 썩 좋은 편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성도 지방 챔피언인 목호가 사용하는 프테라는 당시의 플레이어는 배울 수 없었던 '스톤샤워'를 익힌 특수 개체였고 자속 보정을 받는 스톤 샤워에 줄줄이 나가떨어진 기억을 가진 초보 트레이너들이 워낙 많았던지라 성능과 별개로 인지도는 제법 좋은 편이다.

그 때문인지 아이로닥틸루스의 존재가 처음으로 발표된 2014년 당시 포켓몬 관련 팬덤에서는 아마 이 익룡을 처음 발견한 사람 또한 2세대 포켓몬스터를 즐기면서 프테라에게 두들겨 맞아본 경험이 있는 포덕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논문의 저자 크리스찬 캐머가 공개한 불바사우루스의 복원도

불바사우루스는 2017년 초 존재가 밝혀진 단궁류 디키노돈의 새로운 종에게 부여된 학명이다. 최초 발견자인 크리스찬 캐머와 로저 스미스는 논문에서 이 생물의 넓적한 머리 형상을 보고 라틴어로 넓적하게 퍼진 물건을 의미하는 bulbus와 도마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Saurus을 조합하여 불바사우루스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이름도 실은 아이로닥틸처럼 특정 포켓몬의 영문명과 거의 일치한다. 바로 1세대 풀타입 스타팅 포켓몬인 이상해씨의 영문명이 다름 아닌 불바소어(Bulbasaur)기 때문이다.


이상해씨는 잎날가르기를 사용했다!

오히려 불바사우루스는 이름을 포켓몬에서 따왔다는 면에서 아이로닥틸보다 더욱 확실한 증거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불바사우루스의 정식 명칭은 불바사우루스 필록세론(Bulbasaurus phylloxyron)으로 필록세론은 긴 송곳니와 강한 턱 힘을 이용해 땅을 파헤치고 풀을 뜯어 먹는 종의 식습관에서 기원하여 잎을 깎는다는(Leaf Razor) 단어를 그리스어인 phyllos와 xyron으로 전환하여 조합한 결과다.

그런데 Leaf Razor는 이상해씨의 초중반 주력기인 잎날 가르기의 영문명 Razor Leaf의 어순만 역전시킨 결과다.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 수준이 아니라 확신범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종의 어원을 설명하는 논문의 내용들. 표면적으로는 종의 생태만을 묘사한 이름이지만 그 실상은...




물론 항상 위의 사례들처럼 과학, 의학계의 새로운 발견에 게임 관련 작명이 순순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는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새로 발견한 유전자에 POK Erythroid Myeloid ONtogenic factor, 줄여서 POKEMON(...)라는 이름을 붙이려 했으나 Pokemon USA에서 포켓몬스터의 이름이 나쁜 의미로 사람들에게 퍼지고 인식될 것 같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Zbtb7으로 이름을 변경한 해프닝이 있기도 했고 위의 작명들도 실은 학계에서 학술지 내지는 개인의 칼럼을 통해 이런 중요한 연구에 저런 황당한 이름을 붙여도 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관심을 끌기 힘들고 일견 딱딱하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과학, 의학 용어에 겜덕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있는 것을 무조건 단점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겜덕이 우연히 쑥 훑어본 이름 중에 피카츄린, 이상해씨사우루스라면 으레 한 번쯤은 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나 흥미를 가지고 돌아볼 확률이 높을 테니까

기자 또한 이런 식의 게임 관련 작명으로 생긴 사소한 관심이 특정 연구에 대한 투자 유치의 형태든 새로운 과학, 의학자의 탄생이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로 야구 소재 비디오 게임에 자신을 등재하고 싶어 실제로 야구 선수가 되어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던 이가와 케이의 사례처럼 새로 유전자와 종을 발견하여 포켓몬 내지는 마리오, 젤다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미래의 이공학도가 우리 주변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신호현 기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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