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전문지에서 기자는 크게 취재와 커뮤니티 영역으로 구분된다.
취재 기자가 말 그대로 게임산업 전반을 취재하는 영역에서 역할을 한다면 게임에 깊게 파고들어가 '인게임(in game)' 쪽 공략과 게임 정보를 생산하는 분야는 커뮤니티 기자의 몫이다.
요즘도 게임 커뮤니티 기자를 꿈꾸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공략집이 없으면 게임 구매도 망설였던 시절,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까, 이 사람을 게임을 왜 이렇게 잘 알까- 궁금했던 그때는 실제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말 그런 일에 로망이 있었다.
여기에 와서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과 실제로 게임을 하고, 회의에서는 게임 이야기를 한다. 무슨 게임은 뭐가 재미있고, 뭐가 재미없고, 무슨 직업은 뭐가 사기고, 이게 문제고, 쟤를 잡으려면 뭘 조심해야 하고를 치열하게 토론한다.
그리고 그것은 콘텐츠가 되고, 심지어 그로 인해 월급도 나온다. 번듯한 직장이 된 셈이다.
게임은 이제 일이 됐고, 정보 전달은 의무가 됐다. 정보를 생산하고, 생산한 정보를 정리하고... 월간 잡지를 보며 꿈꾸던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게임이라는 것이 내 일이 됐다.
이제 선배들과는 제법 장난도 치고, 후배들 앞에서 화도 내는 짧다면 짧고, 많다면 많은 시간을 보낸 입장에서, 우리의 보금자리인 게임조선 창간 15주년을 맞이하여 혹시나 게임 기자를 꿈꾸는 분들을 위해 게임조선의 24시간을 소개한다.
AM 09:00~09:20 출근. 업무 준비
아침 9시 출근. 여느 직장인들이 다 그렇듯이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무실이 엘리베이터 없는 최신식 건물 5층/6층에 있다 보니 대부분 출근 인사는 "아이씨, 헉헉. 안녕하...크헙"
자리에 앉으면 밤새 당직의 눈을 피해 올라온 일괄적으로 광고글을 삭제를 한다. 광고 봇은 우리 기술력을 항상 앞서나가기 때문에 아무리 대단한 방어 라인을 구축해도 언제나 손이 많이 간다. 이따금 수동으로 광고하는 광고꾼들은 조금 안쓰럽다.
기자 각자의 노하우를 앞세워 밤새 전해진 소식들을 찾는다. 하루 중 가장 치열하게 전화 불이 나는 시간도 이때, 요즘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사화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해 있어서 웹서핑만으로도 상당한 정보를 얻게 된다.
AM 09:20~10:00 티타임 겸 미팅
선배 기자들은 회의엔 일부러 조금 늦게 참석한다. 다만, 1분이라도 담소를 나눌 시간을 주는 것이 출근 스트레스가 심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
당직으로부터 전날 특이사항을 듣고, 타이틀별 이슈를 체크한다. 게임 기자들이 모인 만큼 소재가 독특하다. 누군가 엄청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거나, 갓 오픈 베타를 시작한 게임에서 만렙 유저가 나왔다거나, 그러다보면 게임 내 클래스에 관한 문제가 불거질 때도 있고, 같이 게임을 즐기는 기자들이 있다면 여기서 언쟁이 붙는다.
누군가는 정보 파악이 늦어서, 누구는 누락된 업무가 있어서 혼나는 사람이 생긴다. 하지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하는 자리에 싫은 소리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싫은 법. 이 글을 보는, 오전에 꼭 혼나는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 넌 진짜 좀 문제가 있다.
AM 10:00~11:00 업무 시작 및 부서 협의
기본적으로 '사이트'를 관리/운영하는 일을 겸하다 보니 이를 위한 각각의 부서가 존재한다. 유저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이트 관리자이기도 한 게임 기자들은 각자 진행에 필요한 업무를 위해 부서장들을 만나봐야 한다.
신규 기능에 대한 얘기일 수도, 이벤트 페이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목적에 맞는 기능이나 일정을 체크하게 된다.
보통 게임조선이 만나야 하는 업체들은 1시간 거리. 외근이 있는 인원은 이 시간에 출발한다.
아, 혹시 티타임에서 두들긴 인원이 있다면 데려다가 기분 풀어주는 일도 빼놓을 순 없겠다. 이 시간에 유머 사이트나 연예 뉴스보다 걸리면 작살난다.
AM 11:00~12:30 특이사항 없음
업무의 연장.
전 날 술을 마신 사람이 있다면, 이쯤 술이 깨기 때문에 알콜이 증발되며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한다.
한달에 2번 충전되는 부식(각종 과자 및 라면, 음료 등 군것질거리)이 가장 많이 나간다.
취재/미팅을 나간 인원은 첫 업무를 시작한다. 질린 회사 밥 안먹어도 되니 이점도 충분하다.
PM 12:30~13:30 점심 메뉴 선정
점심은 주로 근처 식당에서 하게 된다. 미리 얘기된 식당에 기록만 해두는 정산 방식. 한식, 분식, 중식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사무실 밀집 지역, 나름 맛집 구역이라는 북창동과 무교동을 끼고 있지만, 매일 1~2끼 먹다보면 이도저도 다 질려서 그냥 제일 가까운 분식을 주로 찾는다.
위에서 군것질을 한 사람들도 똑같이 먹는다. 그래서 게임조선에 입사하면 체중+15kg 패시브가 적용된다.
커피는 각자 삼삼오오. 비용 처리를 해주지만, 눈치 보여서 잘 사용 안한다. 탕비실에 비치된 커피와 음료수가 가장 잘 팔린다. 레쓰x 빼고. 동수야, 레x비 먹지도 않는거 그만 좀 주문해라.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는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도, 탁구를 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전 업무 시간 중에 일과 관련 없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이 시간뿐. 그마저도 눈치 보인다. 가끔 중요한 타이틀이 테스트를 하는 집중 시간에는 야근이 많기 때문에 오침 시간을 추가하여 더 쉴 수 있다.
PM 13:30~16:00 업무 집중 시간
업무 집중 시간.
보통 밥 먹고 나면 졸립기도 하고, 왠지 자유 시간의 여운이 남아서 바로 집중을 못하는 인원이 있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순찰이 필요하다. 이 시간에도 유머 사이트나 연예 뉴스보다 걸리면 작살난다.
점심 시간을 피해 잡은 오후 미팅이 있을 때는 지금쯤 출발한다. 이따금 시간을 일부러 애매하게 잡아서 점심 시간에도 잠깐 눈 붙이고, 외부 미팅을 잡아 이동 시간에도 1시간 꿀잠을 청하는 코스를 선호하는 인원이 많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준다. 일 안된게 있으면 야근시키면 되니까.
PM 16:00~16:30 오후 티타임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강제로 갖는 티타임. 오후 티타임은 금일 진행사항 체크가 우선. 또한, 이 시간까지 벌어진 이슈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점은 게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게임조선에서는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 이전까진 낮에는 주로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용자들이 많았다고 한다면, 최근 몇년 새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학생 이용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그 만큼 사이트 내에서 이슈 발굴 및 확산이 빠르다.
대부분 빡센 일정에 진척 사항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대부분 혼난다.
PM 16:30~18:00 업무 집중 시간
혼났으니 정신 차리고 일한다.
이 시간만큼은 유머사이트나 연예 뉴스를 보다 걸려도 혼내지 않는다. 어차피 업무 보고 시간에 트집 잡아서 혼내면 되기 때문.
소화력 좋은 인원들이 저녁 먹을 거 생각 안하고 부식을 흡입한다.
PM 18:00~19:00 업무 마무리
실질적인 마무리. 업체와 진행할 수 있는 일은 이 시간 이후에는 불가능해지므로 마무리가 필요.
내부 콘텐츠 생산은 금일 내 마무리가 가능한 업무 우선으로 진행하게 된다.
일을 끝냈든, 못 끝냈든, 6시 반이 지나면 업무 보고를 하게 된다. 진행한 업무가 많은 인원은 짧고 간단하게 핵심만 딱딱 보고하지만, 뚜렷하게 진행된 것 없고 마무리가 안된 인원들은 시시콜콜한 것을 다 만들어 보고한다. 마지막으로 깨지는 시간.
PM 19:00~20:00 퇴근 못해서 저녁 식사
저녁 식사를 먹고 야근을 계속할 것인지, 저녁 식사를 먹고 퇴근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식사를 안해도 된다. 앞서 소화력 좋은 인원들은 저녁을 또 먹는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저녁에는 반주를 하는 일이 많은데 야근하러 남았다가 저녁 반주에 취해서 6층 휴게실에서 좀비로 발견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PM 20:00~00:00 애정껏 근무
야근은 대부분 사이트 관리 위주거나 시기를 타지 않는 콘텐츠 마무리용.
온라인 게임 CBT(비공개테스트)가 대부분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서 테스트를 위해 남는 일이 제법 있으며, 갓 오픈한 게임의 흐름을 보기 위해 남는 일도 많다. 급하게 작성해야 하는 이슈나 소식이 있다면 그 역시도 주요한 업무 중 하나.(결국 이러저러한 이유가 다 야근)
저녁 시간에는 특히, 퇴근하고 본격적인 광고에 열을 올리는 투잡형 알바가 대거 유입되므로 상황에 따라 '사이트 관리' 측면의 당직을 서게 된다.
야근이지만, 이 시간에는 주로 인게임 콘텐츠 다루거나 사이트에서 직접적으로 유저들의 피드백을 얻는 일이기 때문에 성향에 따라 굉장한 사명감을 발휘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흔히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로 받아들이게 되면 '재미가 없다.', '즐길 수다 없다.' 라는 말이 있다. 크게 틀리지 않은 얘기지만, 그래도 이 일은 좋아하는 것을 일로써 접하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
재미있는 게임이든, 그렇지 않은 게임이든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다. 게임을 했으니 리뷰를 쓴다거나 필요한 정보를 생산해야 하는 것이 일로써 뒤따라올 뿐.
뭔가 생각한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게임을 하고, 글을 잘 쓰는 것만이 아니라 사이트 관리자로써의 역량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이트에 방문하고, 글을 쓰는 유저의 응대만이 아니라 우리가 작성한 콘텐츠를 잘 보여주기 위한 구성 기획이나 여러 홍보 포인트를 잡아내는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 DB(데이터베이스) 나 툴(Tool) 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여기도 엄연한 회사. 자신이 생각한 일들을 잘 진행하기 위한 회사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상당 수 게임을 좋아하는 신입 기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들이 이런 부분.
그래도 게임을 좋아하는(게임 기자를 꿈꾸는) 여러분들은 참 다행이다. 일은 배울 수 있어도 재미는 배울 수 없었던 적이 더 많았으니까.
[박성일 기자 zephyr@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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